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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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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풀과 나무 친구들' 카페지기 이영득 씨

풀꽃과 사귄 10여년, 꽃요일마다 바람난 여인

  • 기사입력 : 2012-08-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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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득 씨가 도라지꽃을 가리키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시내버스 통학 힘겨웠을 때
    아버지가 알려준 산길 걸으며
    자연스레 풀꽃과 가까워졌어요

    두 아이의 엄마 된 후
    자연 이야기 들려주려
    풀꽃 익히기 시작했어요

    1999년 풀꽃모임 시작해
    일주일에 한 번씩
    산과 들, 숲으로 찾아가죠

    신춘문예 동화 당선 후
    글 엉터리로 쓰지 않기 위해
    자연 공부 더 열심히 했어요

    길동무들과 꽃모임 갖고
    풀꽃 만지고 느낀 일상
    자연일기에 담아냈죠

    숲은 스승 같은 존재랍니다
    힘이 부칠 땐 위로해주고
    가야 할 길 일러주지요


    ‘지기’란 ‘그것을 지키는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라고 사전은 적고 있다. 문지기, 산지기, 청지기 등으로 쓰인다. 그럼 인터넷 카페를 지키는 사람은?

    물론 카페지기다.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말이긴 하지만, 머지않아 국어사전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릴 것이다.

    동화작가이자 숲 생태 교육자인 이영득(48) 씨는 다음 카페 ‘풀과 나무 친구들(cafe.daum.net/flowerville)’을 지키는 카페지기다.

    그런데 자신은 물론이고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녀를 카페지기라 하지 않고 풀꽃지기라 부른다.

    카페지기와 풀꽃지기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지기’는 같은 말인 동시에 다른 말이기도 하다.

    다시 국어사전을 들춰 보자.

    ‘지기’는 접미사로 사용될 뿐 아니라, ‘자기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의 명사로도 쓰이고 있다. 바로 지기지우(知己之友)다.

    그렇다면 풀꽃지기인 그녀를 ‘풀꽃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겠지만, ‘풀꽃의 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녀는 매주 꽃요일에 풀꽃을 만나러 산과 들, 숲으로 달려간다. 1주일에 한 번씩 풀꽃을 만나러 가는 날을 그녀와 꽃모임의 길동무들은 꽃요일이라 부른다. 벌써 10여 년째다. 횟수로 치면 700여 회다.

    집이 있는 김해 인근은 물론, 승용차로 2시간 남짓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거제와 통영,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는 경북의 오지, 해발 1500m 내외의 가야산과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그리고 이보다 훨씬 높이를 더한 지리산 등이 그녀와 길동무들이 풀꽃과 노니는 놀이터다.

    그녀는 꽃요일이 아니더라도, 문득 풀이 보고 싶고 꽃이 그리워지면 집을 나선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인터넷 웹사이트 ‘꽃지기의 꽃누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숲으로 간다.

    누군가는 이런 그녀를 두고 ‘바람난 여자’라고 했다. 하루라도 풀꽃을 보지 못하면 안달하는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풀꽃을 보고, 만지고, 느낀 것을 카페의 ‘풀꽃지기의 자연일기’에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가장 최근에 쓴 자연일기를 펴 보면, 어느 날 그녀는 새벽 4시 30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

    꼭두새벽부터 부산을 떤 것은 하눌타리 꽃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 녀석은 해만 뜨면 꽃잎을 오므리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애들은 벌써 꽃잎을 오므렸다. …꽃에서 쉬는 아이(곤충)도 있다. …꽃잎을 닫아 섭섭하면 하나 골라보라며 개머루가 옆에서 온갖 보석을 내민다. 하나만 고르긴 쉽지 않아 덩굴째 담아 왔다.”

    이날 그녀가 눈에, 카메라에, 그리고 가슴에 담아 온 풀꽃은 하눌타리와 노랑하눌타리, 개머루 외에도 순비기나무의 꽃, 부산꼬리풀, 계요등, 배풍등, 구기자 꽃, 부처꽃, 그리고 호박꽃이었다.

    자연일기는 일반인들이 쉽게, 또 숲 해설가 등도 풀꽃을 하나라도 더 배워 갈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풀꽃지기 이영득이 자연일기에 풀꽃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는 새, 그녀가 꽃님이라 칭하는 길동무들과 카페 회원 등은 ‘풀꽃’ ‘나무’ ‘버섯/이끼’ ‘숲속 친구들(곤충/동물)’ 란에 흔적을 남긴다.

    그녀는 자연일기에 담긴 글과 사진 중 일부를 추려 ‘숲에서 놀다- 풀꽃지기 자연일기’를 지난달 펴냈다,

    풀꽃 친구야 안녕?(2004년), 할머니 집에서(2006년) 등 자연을 담은 동화와 주머니 속 풀꽃도감(2006년), 내가 좋아하는 풀꽃(2008년), 주머니 속 나물 도감(2009년),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2010년) 등 본격적인 풀꽃책에 이어 그녀가 10번째 낸 책이다.

    풀꽃과의 인연은 그녀에게 운명과도 같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부산으로 전학 온 그녀는 시내버스 통학에 여간 고역을 치른 게 아니었다.

    “하루는 속이 매스꺼워 운동장에 앉아 있는데, 괭이밥이 보이지 뭡니까. 잎을 몇 장 뜯어 먹었죠. 시골에서 먹은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나면 속이 조금 편안해지는 거예요.”

    딸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챈 아버지는 걸어서 학교를 오갈 수 있는 산길을 가르쳐줬고, 딸아이는 그 산길에서 풀꽃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무서웠죠. 어떤 때는 서러워서 길바닥에 앉아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양지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보던 그런 꽃이 널려 있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산길을 걸을 때 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제대로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을 뉘우치며 풀꽃과 자연을 익히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이 땅의 작은 어른이 된 자신이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을 했다.

    풀꽃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녀는 마침내 ‘풀꽃모임’을 시작했다. 1999년이었다.

    “풀과 꽃에 대한 책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야생화와 관련된 책을 구해 보니 어릴 적 보던 들꽃이 거기에 그대로 있잖아요. 그 꽃들의 이름을 알게 됐을 때, 작은 흥분을 느꼈어요.”

    지난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공모전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녀는 “글을 엉터리로 쓰지 않기 위해 자연에 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펴낸 ‘주머니 속 나물 도감’과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나물에 관한 책이다. 풀꽃 나들이에서 때로는 나물을 해 먹을 요량으로 한 줌 뜯어오기도 한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나물을 뜯으시는 것을 많이 봤죠. 지금 생각하면,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는 법을 아셨던 것 같아요. 씨앗을 퍼트려야 할 것은 그대로 두고, 또 다른 사람이 가져가야 할 것도 남기셨죠.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저도 한 듯 만 듯 흔적이 나지 않게 나물을 해요. 자연의 가치를 알아주고, 자연이 나누어 준 선물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풀꽃을 찾아다니다 보면, 집안일에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갔다.

    “풀꽃을 만나러 가는 꽃요일은 평일이에요. 그러나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은 다하려 애를 썼어요. 산과 들에 나가면 조금이라도 더 풀과 꽃과 대화를 나누고 싶죠. 그러나 애들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또 다르잖아요. 아쉽지만 귀가를 서두르죠. 애들 생각에 주말에 들어오는 강의는 모두 사양했고요.”

    우문을 던졌다. “수많은 꽃 중에서 그래도 무슨 꽃을 가장 좋아하나요?”

    “다 예쁜데,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쑥부쟁이예요. 풀은 강아지풀이고요.”

    그녀는 ‘숲에서 놀다- 풀꽃지기 자연일기’ 머리말에서 ‘때론 풍경 같은, 때론 배경 같은, 때론 언덕 같은, 때론 양식 같은, 때론 엄마 같은, 때론 친구 같은, 때론 영화 같은…숲’이라고 썼다.

    여기에 더해 그녀에게 풀꽃과 숲은 ‘기적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숲에 나가 보면 그래요. 발아래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도, 땅속에서 싹이 올라오고 또 곤충들이 거기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가 무심코 내려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수많은 신기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또 숲은 때로는 스승 같은 존재다. 사람의 숲에서 생활하다 힘에 부친다고 생각이 들 때, 그녀는 숲에 가서 위로를 받는다. 큰 나무 밑에 가면 더욱 그렇다.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하지 않아도, 숲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알아듣고, 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것 같아요.”

    글=서영훈 기자 float21@knnews.co.kr

    사진=성민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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