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박명숙(시인)
- 기사입력 : 2012-08-23 01:00:00
-
귀뚜라미가 돌아왔다
못갖춘마디로 운다
허물 벗은 첫 소절이 물먹은 어둠을 파고든다
낯익은
울음을 만날 때도
모노드라마로 운다
가슴에 목젖을 묻고
초사흘 달처럼 운다
덜 여문 곡절들이 풀씨보다 쌉싸름하다
가다가
낯선 울음 채이면
귀청을 딸각, 끄기도 한다
- 박명숙 시집 <은빛 소나기>에서
☞ 계절에도 꼭짓점이 있다면 오늘을 기점으로 정상에서 한 계단씩 내려가는 기분일테지. 그건 점점 빛을 잃어간다는 뜻일 게야. 더위도 한때 계절이 지닌 열병이 아닐까? 오늘은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 귀뚜라미가 밤의 등에 업혀와 울어대기 시작할 터. 마지막 가는 그 열병에 푹 앓아눕자.이제 선선한 바람 불면 계절의 젊음은 어느덧 지나가리라.
아! 가을은 저렇게 올 것인가?
‘물먹은 어둠을 파고들며’ 못갖춘마디로 우는 귀뚜라미가 문을 두드린다니. ‘가슴에 목젖을 묻고 초사흘 달처럼 우는 귀뚜라미’. 덜 여문 풀씨처럼 쌉싸름한 맛이란다. ‘낯선 울음 채이면 귀청을 딸각’ 끈다는 귀여운 귀뚜리, 공감각적 이미지를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김진희(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