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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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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복날 유감-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12-08-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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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산 어귀 푸성귀 무성한 남새밭 구석에 홀로 묶여 있던 개가 없어졌다. 남새밭 주인 남자가 말복 날 잡아먹었다고 한다. 산보 갈 때마다 눈인사를 나누었던 유난히 눈빛이 선하던 그 개가 채 반년도 못 살고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니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식으로 죽은 개가 수십 마리에 달한다니! 개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개의 자리에 그 개처럼 묶여 있는 강아지를 보면 당장 동물보호센터에 신고를 해버릴까! 아무도 몰래 강아지 목줄을 풀어줘 버릴까! 궁리를 했지만, 말년에 친정아버지께서 병중에 계실 때 보신탕을 드시고 힘을 내시던 기억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더 이상 그런 식으로 희생되는 개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남자의 남새밭으로 갔다.

    남자는 “개는 개일 뿐이다. 내가 밥을 굶긴 것도 아니고 때리고 학대한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희로애락을 아는 죄 없이 어진 생명을 최소한의 사랑도 자유도 박탈해놓고 일말의 연민도 가책도 못 느끼는 저 남자의 정서의 뿌리는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복날 개를 잡아먹었던 우리 선조들의 풍습 때문인가? 풍습이란 그 당시의 환경에 적응하는 지혜의 일종인데 그것이 언제 어디서나 당연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계절도 없이 채소나 과일이 넘쳐나고, 한 집 건너 치킨집 고깃집이 진을 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먹어서 죽는 지금 시점에서 고단백의 닭고기나 개고기를 먹는 복날 풍습은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한 대학에서 생체실험으로 고통받다 죽어간 실험용 쥐를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냈다는 방송기사를 보고 크게 감동받은 적이 있다. 인간의 무병장수를 위해 수많은 쥐들이 연구실에서 산 채로 몸이 찢기고 약물 중독의 고통에 시달리다 죽어갔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그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해 감사하고 위로하는 일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우리 지역 대학에서 시도했다고 하니 같은 지역민으로서 가슴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은근히 자부심마저 느꼈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생각하면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것은 어머니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다. 그것은 태어나서 열심히 살아서 먹잇감이 되어준 식물과 동물들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무심히 먹는 달걀 한 알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 달걀이 운신도 못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잠도 못 자는 스트레스 속에서 낳은 것이라면 어쩌면 지금 우리는 먹는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닭만 그렇겠는가! 몸무게를 효율적으로 늘리기 위해 고기를 조립하는 기계 같은 꽉 낀 공간에서 꼼짝달싹도 못하는 수많은 가축들. 우리는 그들의 몸으로 우리의 식욕본능을 채우고 생명을 이어가면서도 그들의 노고와 희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찜통 같은 무더위가 찾아왔다. 더위의 불쏘시개 같은 복날이 오면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 슈퍼마켓에서까지 영계백숙 재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닭 먹는 복날을 외치고 있다.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닭 코너로 모여드는 사람들. 저처럼 무심히 대량생산을 부추기고 동조하는 행위들이 푸성귀를 키우듯 개를 키워서 잡아먹는 남새밭의 그 남자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복날은 없어져야 한다. 복날을 인간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가축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가축의 날’로 정하면 어떨까. 그날만이라도 인간의 손에 의해 죽는 가축이 한 마리도 없는 날 말이다. 이렇게 되면 애먼 바닷고기나 푸성귀들이 불만을 터뜨리겠지만 아무래도 그들은 인간의 손에 발이 묶이고 날개가 묶인 동물만큼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은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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