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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⑬ 유홍준 시인이 찾은 삼랑진역과 만어사

유홍준 시인과 찾은 삼랑진역과 만어사
물푸레나무 잎같이 쬐그만 여자는 그 역을 떠났을까

  • 기사입력 : 2012-08-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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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삼랑진역은 경부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곳이다. 삼랑진역은 또한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의 시발역으로 쓸쓸함과 애틋함을 품고 있다.
    동해 용왕 아들이 변해 생겼다는 미륵돌.
     
    밀양 만어산에 있는 통도사의 말사인 만어사.
    고기들이 변해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萬魚石).
    가오리 꼬리 모양의 미륵돌과 동전.



    삼랑진은 경전선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삼랑진에서 광주송정역까지 급할 것도 더딜 것도 없이 간다. 삼랑진은 조금은 쓸쓸한 곳이다. 삼랑진은 기차를 갈아타는 곳이고, 삼랑진은 어떤 것 하나를 놓아 보내는 곳이다. 삼랑진은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 또 하나의 물줄기를 만드는 곳이다. 그러니까 만나는 곳이고 헤어지는 곳이고 그래서 쓸쓸하고 애틋한 곳이다. 삼랑진은 손바닥만 한 읍내고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갈 때마다 간절하다.

    삼랑진은 시인 오규원 선생의 고향이다. 10년 전쯤 나는 미친 듯 시에 간절해 있었고 무언가에 몹시도 굶주려 있었다. 그때 나는 경전선을 탔고 삼랑진엘 갔고, 밀양을 지나 청도쯤에서 졸시 ‘복숭아밭에서 온 여자’를 썼다.

    시인 오규원(1941.12.29~2007.2.2)의 본명은 오규옥(吳圭沃)이다. 삼랑진읍 용전리 직전마을에서 태어났다. 시인 오규원은 아직도 이 땅의 많은 시인들에게 가슴 짠한 기억이고 추억이다. 이 땅의 내로라하는 시인 소설가들이 그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그의 ‘현대시 작법’으로 처음 시를 배운 많은 이들이 결코 적지 않다.

    나는 삼랑진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선다. 역사는 새로 지어져 깨끗하지만 플랫폼에 서 보니 예전 느낌 그대로다. 저만치 그 옛날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해 주던 급수탑(등록문화재 51호)도 덩굴식물에 온 몸이 휘감긴 채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아직 젊었을 적에 시인도 아마 이쯤에 서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애틋해했으리라.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오규원 ‘한 잎의 女子’ 전문



    무릇 인간의 삶이란 그리움과 기다림과 포기와 온갖 잡념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것. 예외 없이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

    삼랑진 어디에도 시인의 흔적이란 없다. 네 번을 물어물어 찾아간 시인의 고향. 직전마을 앞 언덕엔 도로공사를 하는지 엄청난 흙더미가 파헤쳐져 쌓여 있다.

    나는 마을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인기척이라곤 없는 마을회관의 문을 열었다. 슬리퍼 몇 켤레가 흩어져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바둑판을 앞에 두고 있는 이가 둘, 들여다보는 이가 하나, 그리고 목침을 베고 돌아누운 이가 하나다.

    시인 오규원 선생의 생가가 어디냐고 물어도 이구동성 모르겠단다. 오규원? 살아계셨으면 나이가 칠십이 갓 넘었다 했더니 그중 젊은 분이 모로 돌아누운 이를 흔들어 깨웠다. 누구……오규원? 글쎄, 모르겠단다. 바둑을 두던 이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이것저것을 묻더니 아, 옛날에 여기 오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누구누구네 집안이고 저기 어디어디라고 위치를 알려준다.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그가 일러주는 대로 찾아간다.

    허망하다. 대한민국의 시인 오규원의 생가가 이렇다니!

    카메라를 준비했지만 나는 사진 한 장도 못 찍고 직전마을을 벗어났다. 찍을 것도 없거니와 찍어서도 안 될 것 같은 어떤 억울하고 분한 심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나는 서울에 사는 이원 시인에게 전화를 넣었다. 젠장, 어디 푸념이라도 하고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두 번씩이나 전화를 넣어도 이원 시인은 끝내 받지를 않는다. 도대체 제자들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좀체 가시지 않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나는 씩씩거리며 차를 몰아 만어사로 올라갔다.

    魚飛山에 가면 물고기들이 날아다녔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산에 가는 것을 미루다 물고기의 등을 뚫고 나온 사리를 본다 물고기는 뼈를 삭여 제 몸 밖으로 산 하나를 밀어내었다 //

    날아다니는 물고기가 되어 세상을 헤매고 다녔다

    비가 쏟아져 내리면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정에서 푸덕이며 금과 옥의 소리를 낸다는 萬魚山과 그 골짜기에 있는 절을 찾아가고 있었다 -조용미 ‘魚飛山’ 부분



    어쨌거나 삼랑진 하면 만어사다. 일만 마리 물고기라 칭하는 만어산 암괴류는 천연기념물 제528호다. 이 돌너덜 지대 너머로 보이는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비 온 뒤에 하얗게 운무가 드리운 광경은 황홀경 그 자체다.

    만어사에 가면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택리지>에 실린 전설들의 실체를 만나 볼 수 있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 변해 생겼다는 미륵전의 돌은 신기하다. 미륵전 내부에서 본 미륵돌은 거대한 돌고래 모양인데 뒤꼍으로 돌아가 봤더니 가오리 꼬리 모양이다. 누군가가 그 꼬리 밑에 지폐들을 잔뜩 꽂아놓았다. 돈이다. 미륵돌에 붙은 수많은 동전은 물고기의 비늘이다.

    만어사를 돌아 내려오는 길, 나는 작은 돌 하나를 주워 암괴류의 물고기의 옆구리를 두드려 보았다. 쟁쟁쟁쟁, 물고기의 옆구리에서 맑은 종소리가 났다.

    도대체 이 시대에 시인으로 산다는 건 뭘까? 마음이 여린 제자의 손바닥에 마지막 시를 쓰고 죽은 한 시인을 나는 오래오래 생각했다.

    글·사진=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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