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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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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승산마을

富가 흐르는 마을, 氣 한번 받아볼까
LG 구인회, LIG 구자원, GS 허창수, 알토전기 허승효 회장 등
국내 굴지 기업인들 생가 12곳 밀집해 있는 ‘재벌 마을’

  • 기사입력 : 2012-08-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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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승산마을의 고 구인회 LG그룹 회장 생가.
    구한말 만석꾼 허준 선생이 살았던 ‘지신정’.
    구인회 회장의 부친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모춘당’.
    옛 지수초등학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창업주들의 고향인 일명 ‘재벌마을’이 경남에 있다.

    진주시 승산리 승산마을에는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과 LG그룹 고 구인회 회장, 효성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이 같이 책가방을 메고 다녔던 지수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구 회장은 이곳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초등학교 동기인 삼성 이 전 회장은 이 마을에 있는 매형(허순구 씨) 집에서 3학년까지 다녔다. 흥미로운 점은 인근의 의령 정암강에 가마솥을 닮았다는 솥바위(정암)가 있는데, 이를 기점으로 이병철 회장 생가, 구인회 회장 생가, 조홍제 회장 생가가 20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마을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면 풍수지리설에서 택지를 정할 때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형태로, 보양산 아래에 기업인 생가들이 밀집돼 있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는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과 LIG 구자원 회장, 쿠쿠밥솥 구자신 회장의 생가를 비롯해 GS 창업주 허준구 회장과 아들 허창수 현 회장 생가, 알토전기 허승효 회장, 삼양통상 허정구 전 회장 생가 등 국내 굴지 기업인의 생가 12곳이 있고, LG 구자경 명예회장의 외가, GS 집안 종가와 김해 허씨 대종중 재각도 있다.

    LG그룹의 구씨 일가와 GS그룹의 허씨 일가가 대대로 살아온 이곳 승산마을은 여느 관광지나 문화유적지처럼 잘 조성된 이정표나 간판은 없지만, 길게 이어진 흙담과 잘 관리된 품위 있는 한옥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자연스레 끈다.

    마을의 절반이 구씨 가문의 집이라면 나머지 절반쯤은 허씨 일가의 고택들이다. 500년 넘게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린 허씨 집안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학교를 세웠으며 엄청난 재산을 모아 승산마을을 영남 일대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으로 만들었다. 인근의 고성, 의령, 사천, 함안, 산청 등지에도 많은 농토를 소유해 승산마을 허씨 중에는 천석꾼이 10여 가구, 만석꾼도 두 집이나 있었다고 한다.

    정승처럼 쓸 줄 아는 미덕도 겸비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끼니를 대주고, 특히 구한말의 만석꾼이었던 허준(1884~1932) 선생은 만주 독립운동의 돈줄이었던 백산상회 설립에 기여하고, 800마지기의 토지를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고 비어 있던 경상도 영창을 채워주기도 했다. 현재 허준 선생이 살았던 지신정과 공적을 기록한 비석군이 애국적이고 인심 좋았던 부자 집안을 뽐내듯 서 있다. 이런 정신을 이어받은 GS그룹의 자손들은 지역과 상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근 압사리에 GS칼텍스 합성수지 공장을 건립하는 등 선대의 공덕을 이어가고 있다.

    구씨 집안도 원래 천석꾼 소리를 듣던 집안이었으나 구인회 회장의 조부가 30년 동안 관직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돕는 바람에 구인회 회장이 태어날 무렵엔 많이 줄었다고 한다. 1984년 출간된 구인회 회장의 일대기에 ‘(구씨 집안은) 큰 부자는 아니었고, 큰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허씨네가 재를 가지고 얼굴을 들고 있다면, 구씨네는 기를 가지고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는 구절이 있다.

    같은 집성촌에 사는 이성 집안인 데다 어느 한쪽이 크게 기울지도 않는 터라 양가는 대대로 겹사돈을 맺으며 인연을 쌓았다. 구인회 회장도 13세이던 1920년,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허만식 씨의 장녀에게 장가를 들었다.

    허만식 씨는 허준구 전 명예회장의 육촌형이다. 두 집안의 관계를 상징하는 곳이 지금은 구씨 일가의 재사로 쓰이는 건물 입구인 숙입문이다. 담장길 안쪽의 숙입문은 250여 년 전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이 혼인을 하면서 만든 신혼집이다. 두 집안의 인척 관계가 동업의 관계로 바뀐 것은 광복 이듬해 허만정 씨가 구인회 회장에게 사업자금을 내놓으면서 시작됐고, 그렇게 두 집안은 50년 넘게 동업을 유지해 오다 지난 2005년 LG와 GS그룹으로 분리했다.

    승산마을의 구씨와 허씨 일가의 고택들과 부자들의 옛 얘기에 흠뻑 취해 걷다 보면 지수면사무소 앞의 지수초등학교가 보인다. 이웃 송정초등학교와의 통폐합으로 폐교됐지만, 아직도 학교 정원에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과 LG그룹의 구인회 회장이 재학 시절 함께 심고 가꿨다는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아직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완벽히 갖추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들을 많이 배출한 이곳 승산마을에 한 번 들러 부자의 기운을 받아가는 것도 매력적인 관광이 되지 않을까.

    글= 강진태 기자·사진= 성민건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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