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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문수호 진주 한국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장

“위기의 수곡딸기, 경영마인드 접목해 수출농단 키웠죠”

  • 기사입력 : 2012-09-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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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호 한국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 회장이 진주시 수곡면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모종을 관리하고 있다. 문 회장은 “농업은 충분이 경쟁력이 있다”며 웃음을 짓고 있다.
    문수호 회장이 딸기 모종을 살펴보고 있다.



    선각자(先覺者)란 남보다 먼저 사물이나 세상일을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깨달음에서 한발 나아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선구자(先驅者)다. 세상에는 고쳐져야 할 것을 뻔히 알고도 짐짓 넘어가는게 다반사다. 그냥 모른 척하면 일신도 편하고, 그다지 손해볼 것도 없다. 또 그냥 모른 척한다고 누구 하나 비난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선구자는 편한 것과 손익(損益), 주변의 평가 등 당장의 힘듦과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 끝이 멀리 떨어져 있고, 헤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념(信念) 하나로 버티며, 끝을 향해 그냥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 한국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를 만들다

    문수호(49) 씨는 경영인이다. 이식을 앞둔 모종을 살피기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 비닐하우스를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농업인이지만, 생각은 항상 비즈니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를 경영인이라고 한 것은 그가 단지 한국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한 생산의 단계를 넘어 생산과 판매를 한 묶음으로 생각하고 이 모두를 활성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문 회장은 “딸기의 경우 생산과 판매가 따로 놀고 있었다. 특히 수출의 경우 농업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생산에만 얽매여 있었다”며 “모두가 생산과 판매가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는 이런 이유로 지난해 11월 발족하게 됐다.

    경남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가 전신으로 문 회장은 지난해 8월 이 단체 회장을 맡았다.

    문 회장은 “경남이 당시 수출딸기의 80%가량을 담당했다. 지역 딸기수출농가의 문제점이 곧 국내 딸기수출농가의 문제점이었다”며 “국내 딸기 생산과 유통이 어차피 상호 관련이 있기 때문에 경남에서 전국으로 판을 키운 것이다”고 설명했다.

    연합회가 결성되기 이전 딸기농가들은 수출유통업체들의 농간으로 인한 산지간 경쟁에 희생돼 왔다.

    가격을 농락당하고, 이로 인해 수익은 하락하고 한마디로 ‘몸만 고생하고 남는 것은 별로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농자재 구매도 산지별 개별구매로 인해 생산비가 상승했고, 시장정보 부재로 출하량 조절을 못해 손해를 봐야 했고,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어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문 회장은 “특히 수출된 딸기에 클레임이 걸리면 개인농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도 농업인으로, 딸기농업인들이 이대로 당하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산과 유통을 함께 해야만 풀 수 있는 일이었고, 연합회는 이런 일에 조직적이고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결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수출딸기생산자연합회에는 전국 18개 농단이 가입, 수출물량의 99%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전국이라 해봐야 경북 고령을 제외하고 도내 농단이 17개로, 경남이 주축인 셈이다.

    연합회의 사업 목적은 당연히 앞서 언급했던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문 회장은 “농자재 공동구매를 통한 원가절감, 농가수지 제고를 위한 출하가격 하락 방지, 현지 수입업자의 횡포 방어, 신규시장 공동개척, 재배·생산력 공조체제 구축 등이 기본 사업이다”며 “나아가 정부지원을 딸기수출농가와 연결하고 타 농산물수출단체와 협력체제를 구축해 딸기생산농가들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도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 팍팍한 세상, 고향에 돌아오다

    문수호 회장은 현재 자신이 딸기재배를 하고 있는 진주시 수곡면 원내리가 고향이다.

    진주시내에서 고교와 대학을 마치고, 보통의 경우처럼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애초 월급쟁이 체질이 아니었는지 3년도 안돼 사표를 써내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건설관련 업종으로 한때 돈도 많이 벌어 지역에서는 꽤 잘나가는 사업가로 얼굴을 알렸다.

    건설업이란 게 본래 부침이 많은 곳이다. 많이 번 대신 실패의 고배도 여러 차례 마셔야 했다.

    문 회장은 “어느 순간 인생이 마이너스를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업으로 얽히고설킨 사람과 도심생활에 지쳐 있었다”며 “더 이상 억지로 버텼다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때가 2000년이었다. 부모님이 터전을 지키고 있었던 게 그로서는 재산이자 큰 행운이었다.

    문 회장은 귀향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농촌 출신이면서 농업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힘들고, 돈은 안되고,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능력없는 사람들이 농촌에 남아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직접 몸을 던져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물론 딸기라는 특목작물이었기도 했지만 그동안 막연히 생각했던 농업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항상 쫓겼던 도시생활과 달리, 몸도 마음도 여유를 찾았고, 수입도 안정적이었다”고 말했다. 


    ◆ 경영을 시작하다

    고향에 돌아온 지 2년 뒤인 2002년 수곡덕천영농조합법인(진주수곡딸기수출농단)이 결성됐다. 자신도 감사를 맡아 곁에서 운영을 지켜봤다.

    하지만 전문성이 부족해서인지 2006년부터 법인 운영에 어려움이 닥쳤다. 경영이 악화되고 조합도 결집력을 잃었다.

    문 회장은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보다는 애향심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수곡 딸기재배는 30여 년을 이어 내려왔고 그 전통을 지켜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업을 하면서 체득한 경영을 접목시키는 순간이었다.

    지난 2008년 수출농단으로 재정비하고 자신이 회장을 맡았다. 기존 법인 역할에 더해 수출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제고에 힘을 쏟았다.

    조합원들과 함께 힘과 지혜를 모은 결과 수출물량과 수출액이 동시에 급증했다.

    첫해 400t(33억 원)이던 것이, 600t(50억 원)으로 늘었고, 현재 1000t(80억 원)까지 증가했다.

    국내 딸기 수출액 2500만 달러의 30% 이상을 점유하는 농단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문 회장은 “진주수곡딸기수출농단은 농산물법인의 모범케이스로 꼽히며 타 농작물단체의 주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생산자들이 조직화되고 여기에 경영마인드를 접목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고 밝혔다.


    ◆ 농업의 미래는 밝다

    문 회장은 “농업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단언한 뒤, “노력하기에 달려있지만 10원, 20원이 소중한 장사가 탄탄한 법이다. 큰 것만 보고 살아가는 것은 불안한 삶이다. 농업도 이제 합리적인 생산과 합리적인 경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딸기는 주요 수출국인 싱가포르와 홍콩 시장에서 반응이 좋다. 물량이 증가할 것이고 이는 농가 수익증대는 물론 내수가격의 불안정을 해결해주는 ‘가격지지’ 역할도 할 것이다”며 “FTA 또한 기회가 될 것이다. 보다 경쟁력이 있는 상품으로 난관을 뚫는다면 승산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딸기재배의 가장 큰 과제는 안정적인 생산기반 마련이다.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설현대화 사업이 시급하다.

    문 회장은 “생산량 증가와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한 기반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이는 딸기뿐 아니라 모든 특목작물에 해당되는 것이다”며 “생산 현장과 정부의 직접적인 소통채널이 필요하고 연합회가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고 밝혔다.

    문 회장의 경영 방식은 또렷하다. 운(運)이 아닌 예측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농업이 미래를 보장받게 하는 것이다.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분명 밝다. 앞만 보고 나아갈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씩….”

    글= 이문재 기자 mjlee@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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