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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⑭ 송창우 시인이 찾은 함안 악양둑방

추억 같고 꿈결 같은 향기로운 가을길

  • 기사입력 : 2012-09-0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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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과 합안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함안 악양둑방은 길이 아름답다. 악양둑방길을 걸으면 정자와 솟대가 나그네를 맞이한다.


    강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둑방길

    싸움소 두 마리가 타이어를 끌며 훈련을 하고 있다.


    남강변 백산 둑방길


    악양둑방 길 중간에 있는 풍차


    처녀뱃사공 노래비

    송창우 시인


    9월의 첫 하루, 문득 사내의 몸속 물들이 범람할 듯 출렁거린다. 사내의 몸속에 오래 갇혀 있는 물들은 흐르는 강이 그립다. 이런 날엔 강가에 가 두 발을 푹 적시고 서서 몸에 고인 물을 강으로 좀 흘려보내고 싶어진다. 말하자면 초가을 바람에 역마살이 도진 것인데, 그렇게 강을 찾아 나선 길은 여항산을 넘어 함안군 법수면으로 이어졌다.

    법수면은 물나라다. 정암나루를 지나온 남강은 법수들, 대산들을 흠뻑 적시며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물나라 사람들은 논에 스민 강물에 발을 적시며 한 생애를 살고, 늪지의 버드나무들은 강 한 줄기를 가지 끝으로 밀어올리며 한 세월을 흔들거린다.

    물나라에선 길도 강을 따라 굽이굽이 휘어진다. 길은 두 줄기 혹은 세 줄기로 나뉘었다가 다시 만나며 강을 따라 흘러간다. 그러다 팽팽히 당겨진 활처럼 남강이 의령 쪽으로 크게 휘어진 곳. 법수면 사정리에서 백산둑방길에 닿았다. 농로와 자전거길을 겸한 아침 둑방길은 안개에 살짝 덮여 있었다. 오른쪽으론 남강이 흐르고 왼쪽으론 백산 푸른 들녘을 펼친 길. 4㎞쯤은 됨직한 이 길은 드라이브를 하기에도 그만이지만 자전거를 가져왔다면 더 좋았을 길이다. 자전거가 훨씬 잘 어울리는 길이다. 집에 가는 대로 녹슨 자전거를 닦고 바람 빠진 바퀴에 가득 바람을 채워 넣으리라.

    백산둑방길을 지나고 함안 법수와 의령 정곡을 잇는 백곡교를 지나면 이제 악양둑방길이다. 악양(岳陽)은 중국에도 있고 하동에도 있고 함안에도 있다. 중국의 악양은 장강과 동정호가 만나는 곳에 있고, 하동의 악양은 섬진강변 평사리 들녘을 품고 있고, 함안의 악양은 남강과 함안천이 합류하는 곳에 있다. 그러고 보면 악양이란 물나라요 물마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마을을 상징하는 이름이 악양이니, 모름지기 물이 그리우면 악양에 한번 들러볼 일이다.

    독산마을 둑방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둑방길을 걷는다. 그새 아침 안개는 사라지고 강변의 푸른빛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아름답다. 강가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사실 사내는 이 강변의 아침을 밝히고 있는 푸른빛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 좀 진부한 얘기지만 어느 순간 수채화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는데, 눈에 펼쳐진 풍경이 그림이 아니라 진경이었으니 사내는 이 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심중에 걸어두게 된다.

    이제 막 빨강, 분홍, 하양, 노랑의 코스모스꽃들이 피는 둑방길 위로 가을을 찾아온 첫 기러기 행렬이 시옷시옷 날아간다. 그 아래로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을을 타는 한 사내가 걷는다. 사내의 몸속 배배 꼬인 길에도 강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아니 푸른 강 하나가 오장육부를 적시며 흘러 들어온다. 시원하다.

    둑방의 중간쯤 다다랐을까? 큰 풍차 하나가 색색의 바람개비들을 거느리고 서 있다. 풍경은 갑자기 오래된 다방의 흰 벽에 걸려 있던 유화로 바뀐다. 반 고흐의 풍차보다는 모네나 폴 시냐크의 풍차를 닮았다. 풍차 속에서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온다. 이 아침에 훌쩍 강을 찾아 떠나온 사내는 둑방길에서 풍차의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둑방 아래 한 집씩 일렬로 선 악양마을에서 태어났고 이제는 풍차를 관리하고 악양둑방길에 꽃씨를 뿌리며 산다. 사내는 풍차 안으로 들어가 여인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을 달게 마셨다. 아, 만약 사내에게 이 풍차가 주어진다면 사내는 틀림없이 이곳에서 풍차다방을 열었을 것이다. 멋지다.

    풍차가 있는 둑방길에서 강변으로 내려서면 풍경은 다시 한 폭의 동양화로 바뀐다. 강가의 풀숲에는 순한 암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풀숲 한 모퉁이 잘 자란 수수밭에선 할매가 수숫대를 베고 있다. 그리고 저만치 물가로 난 길에서 타이어를 끌고 두 마리의 싸움소가 흙먼지를 날리며 온다. 암소에 비해선 좀 거무튀튀한 싸움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이중섭의 소처럼 불끈 근육들이 꿈틀거린다. 이름이 ‘곰이’와 ‘봄이’라고 한 것 같은데, 사실 사내는 싸움소의 우람한 골격과 근육에 기가 눌려 이름을 물어보기는 했으나 제대로 듣진 못했다.

    물가로 난 길은 축축하고 미끄럽고 부드럽다. 길에는 방금 지나온 싸움소의 큰 발자국들이 찍혀 있고, 그 옆으로 싸움소를 몰고 가던 억센 남자의 발자국들과, 염소 발자국, 들고양이 발자국, 새 발자국들이 화석처럼 찍혀 있다.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물버들 숲에선 개개비가 울고, 이제 기러기들에 강변을 내어줘야 할 백로들이 버드나무 가지 끝에서 흔들리고 있다.

    사내는 길의 한가운데에서 눈을 감고 강변의 소리들에도 귀를 기울여 본다. 버드나무 잎사귀가 부딪히는 소리. 풀숲에서 우는 찌르레기 소리, 수숫대가 서걱거리는 소리. 수숫대를 찍는 할매의 낫질 소리, 암소의 울음소리, 수면을 폴짝 뛰어 오르는 물고기 소리, 갈대숲을 지나온 바람소리. 아직도 짝을 못 찾고 우는 매미 소리. 문득 짝을 찾기도 전에 저 매미의 울음통이 다 말라버리면 어쩌나 사내는 걱정이 된다.

    길은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옛 악양나루로 간다. 악양나루는 법수면과 대산면을 갈라놓은 강가에 있었다. 1953년 9월 부산에서 피란생활을 했던 악극단의 단장 윤부길(가수 윤항기, 윤복희의 부친) 씨도 일행을 이끌고 악양나루에 닿았다. 함안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향하던 저녁 무렵이었다. 그런데 일행을 태우고 강을 건너는 뱃사공은 앳된 처녀였다. 윤부길 씨는 처녀에게 뱃사공이 된 사연을 물었다.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 스치며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인 <처녀 뱃사공>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18번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내가 배운 첫 대중가요였던 <처녀 뱃사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은 악양나루도 사라지고 나루터가 있던 곳에 다리가 놓여 더 이상 없는 뱃길이지만, <처녀 뱃사공>만은 애틋한 사연을 품고 오늘도 지난한 세월의 강에서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젓는다.

    강 건너 마삭줄이 늘어진 바위절벽 위에는 숨은 듯이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악양루는 중국 3대 누각의 하나라는 동정호 악양루를 본딴 이름이다. 좁다란 오솔길과 바위틈을 지나 악양루에 올라서면 동정호 악양루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천하의 풍경이 펼쳐진다.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며 만든 물나라의 비경 속으로 하늘이 내려앉고 강변의 버드나무들이 늘어진다. 풍경은 시시때때로 변하는데, 아침나절의 풍경은 추억 같고 해질녘의 풍경은 꿈결 같다. 추억과 꿈결 사이로 난 낭만의 길은 수위의 높낮이에 따라 나타났다가는 물속으로 사라지곤 한다. 사내는 악양루 마루에 앉아 가지고 온 대금을 불어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사내는 이대로 한철을 그냥 눌러 살았으면 싶었다. 사내의 심중에는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새로운 그림 한 폭이 더 걸린다.

    /글·사진=송창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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