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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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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넝쿨째 굴러 온 당신- 김미옥(시인)

  • 기사입력 : 2012-09-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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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이라니….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다. 온갖 복을 주렁주렁 매단 복덩이가 굴러 들어온다는 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제목처럼 무언가 기분 좋은 일들이 마구 쏟아지길 기대하며 보기 시작한 주말연속극이다. 하지만 막상 굴러 들어온 것은 기쁘게 반기기만 할 수는 없는 시댁식구들이다. 우스갯소리로 ‘시(媤)’자가 싫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갈등과 마찰의 대명사가 된 시월드(媤宅과 world의 합성어)의 이야기란다.

    지구상에 최초로 가족이라는 생활구조가 생겨날 때부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시작됐다고 한다. 가족이지만 혈연관계가 아닌 두 여자의 대립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할 만큼 오랜 세월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가족제도에서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거의 주종관계에 가까웠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종속된,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일방적으로 강요해도 될 만한 위치의 사람이었다. 그러다 점점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여성들의 교육 수준과 사회적인 위치가 남성과 동등한 관계로 발전하면서 고부간의 관계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시어머니 세대의 무조건적 사랑이나 희생과는 달리 이유를 따져가며 자기의 생각을 또박또박 주장하는 신세대 며느리와의 급격한 사고 변화에 따른 고부간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진 셈이다.

    ‘넝쿨째 굴러 온 당신’에서도, 시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 불리는 시어머니인 청애와 인터넷 1세대이자 X세대인 며느리 윤희의 대립구도로 시작된다.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베푸는 청애가 윤희는 부담스럽기만 하고, 어른인 자기에게 예의나 배려 없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윤희가 청애는 얄미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전의 강도는 심해졌고 그때마다 가족의 중개로 화해를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고민을 하던 윤희는, 청애가 사줬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 입지 않았던 홈드레스를 입고 청애를 찾아가 ‘고부간의 협정서’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당돌하다고 볼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홈드레스를 입은 윤희의 모습에 마음이 풀린 청애도 거절하지 않고 함께 협정서를 작성했다.

    협정서 내용 중에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자’가 있다. 그리고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말하되 말하기 전에 상대방 입장에 서서 10초간 생각해보고 말하기’라는 단서를 붙였다. 난 이 단서에 밑줄을 긋고 싶다. 당당함을 매력이라 생각하는 요즘 사회에서 흔히 ‘당돌함’과 ‘당당함’을 구분하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봤다.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할 때 당당함이 돋보이고 진정성이 전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영화든 전시회든 함께 본다’는 조항도 있었다. 난 이 조항에서 쾌재를 불렀다. 모든 시어머니의 마음을 대변한 기발한 제안이지 않은가? 집안이 아닌 곳에서의 만남은 두 사람에게 또 다른 분위기를 조성해줄 것이다. 더구나 영화나 공연을 함께 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것이고 두 사람은 서서히 동지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조항을 더해 협정서를 마무리 지었고 두 사람은 손가락을 걸며 협정서대로 잘 지켜갈 것을 약속했다.

    이 약속이 잘 지켜질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가족관계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또한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고질화된 선입견이나 편견은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가족 모두가 마음을 열고 지혜를 모은다면 연속극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혼기에 접어든 사랑하는 딸에게 하는 당부이자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나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김미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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