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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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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박종구 월드비전 경남지부장

“동전 저금통에 빈곤아이들에게 나눠줄 사랑 채워주세요”

  • 기사입력 : 2012-09-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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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구 월드비전 경남지부장이 사랑의 빵 동전모으기 저금통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푼 두푼 모여진 동전들은 지구촌의 어려운 아동들을 위해 사용된다.
     




    직장에서 또는 가정에서 매일매일 곁에 두고 보고 있는 한 물건이 있다. 빵 모양의 작은 노란색 저금통이다. ‘생명을 구하는 사랑의 빵’ 저금통이다. 그냥 ‘빵 저금통’이라 불린다. 이 저금통은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있는 굶주린 아이들을 돕기 위해 1991년 처음 시작한 모금운동이다.

    빵 저금통을 매일매일 곁에 두고 나눠주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경남지부장을 맡고 있는 박종구(47) 씨다. ‘빵 저금통’을 하나라도 더 나눠주려고 거의 20년 동안 발품을 팔아오고 있다. 그는 “우리가 도와주면 그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빵 저금통은 그의 직업을 넘어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후원은 베풂이 아닌 지지하는 것

    지난 4일 마산회원구 합성동 월드비전 경남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박 지부장은 자신이 모금활동을 해오면서 느낀 인상깊은 말을 했다.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또한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도 한 명도 없다.”

    나눔에 대한 그의 신념이라고 한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도와달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다.

    박 지부장은 “어떤 사람은 남을 돕는 데 있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남을 즐겁게 하는 등 재능을 줄 수도 있다. 이런 게 나눔이고 나아가 구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88올림픽 이후 1990년대부터는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됐다. 작은 손길이지만 나눔과 구호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 서로가 함께하면 어려움은 줄어들고, 기쁨과 감동은 늘어난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생색내기 도움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최근 유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날까 모면하기 위해 기부 또는 도움을 주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 특히 도움을 주고 난 후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보면 도움을 받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부터 앞선다고 한다.

    박 지부장은 “도움을 주는 것은 베푸는 개념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지지해주는 것이다. 도움을 주고 생색을 내면 받는 사람은 심한 수치심을 겪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돕거나 자랑하기 위해 돕기보다, 그들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자발적으로 나서는 지도층이 많아져 도움을 주고받는 선순환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받는 입장에서도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3년 8개월 동안 모금활동을 하면서 감동을 주는 후원자도 많았다.

    박 지부장은 “진해 조이랜드 어린이집 원아 80여 명이 매월 1명당 1만 원을 후원하고 있다. 절반은 아이들이 내고, 절반은 원장님이 내고 있다. 방법이야 어떻든 어릴 적부터 나눔에 참여하고 나눔을 배워가는 아이들이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굶주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더 큰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같이 일하자” 말에 선뜻 선택한 길

    박 지부장과 빵 저금통과의 인연은 1994년에 시작됐다. 그때 나이 29세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있었는데, 변변치 못한 자신의 처지가 많이 부끄러웠다. 백수로 놀고 있을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취업은 어려웠고, 그래서 대구에 있는 월드비전(당시 선명회)을 찾았다.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기독교 신자인 탓에 그냥 관심이 끌린 것이다.

    당시 대구의 월드비전 책임자였던 지역복지관 관장은 종구 씨에게 복지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일해 보라고 했다. 물론 월급도 없는 봉사활동이었다. 남을 돕는 일을 한 번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관장의 말을 따랐다.

    도서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어느 날 복지관에서 이웃돕기 바자회가 열렸다. 의류업체로부터 팔지 못한 옷을 받아 9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행사였는데, 복지관장이 종구 씨에게 좀 거들어주라고 했다. 복지관장은 옷을 잘 파는 그의 모습에 반해 “월드비전에서 같이 일을 하자”며 입사를 제의했다.

    박 지부장은 “옷을 잘 팔아서 관장님이 월드비전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다. 결혼을 하려면 직업은 있어야 하고 해서 입사하게 됐다”며 “이전에 남을 도와주는 데 큰 관심이 없었는데 기관에 들어와 보니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런 데서 일하는 게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기억했다.

    월드비전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된 이후 폐품, 신문지 등 재활용품 수집·판매 등 잡다한 일을 도맡으며 대구에서 10여 년을 보냈고, 서울본부로 들어가 4년, 부산으로 내려와 1년을 지냈다. 이후 2009년 1월부터 월드비전 경남지부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거의 20년 동안 일해 오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 마음을 한 고비 한 고비 넘기다 보니 훌쩍 40대가 됐고, 이제는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며 박 지부장은 웃으며 말한다.

    “모금활동이라는 게 어차피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가져오는 것 아니냐. 그 사람이 스스로 돈을 꺼내도록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 너무 힘들었다. 그럴 땐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월드비전이 평생 직장일까 고민을 반복하다 여기까지 왔고, 40대가 되면서 가치로운 일이라 여기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는 빵 저금통과 평생을 함께하고픈 마음뿐이다.”


    ◆경남의 빵 저금통으로 3개 학교 선물

    경남에서 모은 빵 저금통으로 성과도 많았다. 경남도민들이 빵 저금통으로 보내준 동전은 모두 월드비전 경남지부가 베트남의 빈곤지역에 직접 가져간다.

    전달방식은 현금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희망을 키워줄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는 것이다. 올해 1월 초등학교 1곳을 개교했고, 내년 1월에는 초등학교 1곳과 유치원 1곳을 개교할 목표로 짓는 중에 있다. 경남에서 수백만 개의 동전들이 모여 베트남 굶주린 아이들의 희망을 짓고 있는 것이다.

    박 지부장은 “베트남과 인도 등을 가보면 아이들이 길바닥 같은데 앉아서 글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찌릿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의외로 밝다. 사진도 서로 찍으려고 한다. 이 아이들을 도와주면 분명 자립해서 발전할 수 있는 희망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부모들이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열정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보내고, 학교를 가더라도 환경이 열악해 공부할 여건이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처음에는 빵 저금통의 후원금을 베트남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직접 나눠주기도 했지만 그 부모들이 그 돈으로 마약을 구입하는 등 딴 곳에 쓰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월드비전의 목적인 ‘자립’이 이뤄지지 않아 지원방식을 지역개발 형식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빵 저금통이 모이면 기적이 생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아의 실상을 봐 온 박 지부장의 머릿속은 항상 어떻게 하면 빵 저금통을 더 많이 나눠줄 수 있을까 하는 갖가지 생각들로 북적인다.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7초에 1명씩 죽어가고 있고, 15초마다 물 때문에 사망하고,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수인성 질병으로 죽고…. 이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아 잠시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박 지부장은 “나눔은 꼭 물질적인 나눔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나눔, 재능 나눔, 돌봄 나눔, 이야기 나눔, 경험 나눔 등 다양하다. 나누어 줄 게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눔에 관심을 갖고 해외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는 데 참여하는 손길이 필요하다”고 재차 언급했다. 그는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000명의 사람에게 배불리 먹게 하고도 남았다는 설화가 있듯이 빵 저금통이 모이고 모이면 기적처럼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며 따뜻한 손길을 호소했다.

    박 지부장의 사무실에는 나눠주지 못한 빵 저금통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글= 김호철 기자 keeper@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월드비전은 =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의 전쟁고아, 부녀자 등을 돕기 위해 미국과 한국에서 설립된 국제구호개발 민간기구(NGO)다. 국내에서는 전국 47만 명의 정기 후원자를 확보하고 있다. 민간단체 중 가장 큰 규모다. 주로 긴급구호사업, 지역개발사업, 옹호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2006년 12월 설립된 월드비전 경남지부(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632-1)는 도민들의 후원금을 모아 베트남 난민들에게 집중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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