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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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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최진한 경남FC 감독

내 축구인생은 청춘… “둥근 공만 보면 설레요”
입학한 중학교에 축구부 없어 전학갔죠
진주고 시절 전국대회서 우수상 2번 받아 두각

  • 기사입력 : 2012-09-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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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디딤돌이자 좋은 멘토가 되고 싶다는 최진한 감독. 그가 축구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둥근 공만 보면 설레는 내 열정을 평생 그라운드에서 쏟고 싶어요.”

    꿈을 이루겠다는 열정으로 성공한 인물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더러 포기와 실패가 더 많은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올시즌 K리그에서는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 상위리그 8개 팀 중 3개 팀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상을 주지만 하위리그에서 최하위를 할 경우 2부 리그로 강등하도록 했다.

    올 시즌 스타 선수들을 내보내고 자칫 2부 리그로 강등될 수 있는 위기에 몰렸지만 기적처럼 경남FC를 K리그 상위리그에 올려 놓은 한 남자가 있다.

    경남FC 최진한(51) 감독이 주인공이다.

    혹자는 경남FC의 최근 성적을 보며 ‘최진한 매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축구에는 그냥 저절로 되는 건 없다. 우리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흘린 땀과 열정만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 처음 잡은 축구공, 아버지 고 (故) 최한주 씨는 나의 영원한 팬

    최 감독은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깡패(?)나 됐을 거라며 농을 던진다. 그만큼 그에게 축구란 자신의 인생에 전부이자 삶을 바꿔놨다.

    그는 “초등학교 때 육상을 먼저 했고 아버지가 축구를 워낙 좋아하셔서 조기 축구부터 시작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 꼭 축구를 먼저 한 뒤에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등교했다”며 “진주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입학한 중학교가 축구부가 없어서 진주중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는데 당시에는 같은 시내에선 전학이 금지였다. 할 수 없이 진양군의 한 중학교로 전학을 가 우여곡절 끝에 진주중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말했다.

    최 감독의 아버지는 그가 축구 선수가 된 이후부터 모든 경기를 관람했다. 그가 공을 잘못 차는 날이면 아침 식사 자리에서 어김없이 아버지의 축구 지도가 시작됐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최진한은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최 감독은 “아버지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축구장으로 오셔서 내 경기를 꼼꼼히 체크하시고 나의 몸 상태, 체력관리, 기술 등을 챙기셨다. 아침밥을 먹을 때면 꼭 내 플레이에 대해 평가하셔서 어떤 때는 물만 마시고 도망간 적도 있다”며 “이제 내가 자식을 키워 보니 난 아버지 반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 그 사랑 밑에서 자란 것만으로도 은혜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고 했다.

    그는 진주고를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했고 전국대회 우수상까지 받으며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을 발휘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연세대와 명지대에서 제안이 왔다. 하지만 “용꼬리보다 뱀 머리가 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최 감독은 명지대를 선택했다. 아버지의 선택은 옳았다. 1981년 명지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인정받은 최 감독은 국가대표까지 발탁된 것이다.

    최 감독은 “진주고 시절 전국 대회에서 우수상을 2번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명지대를 선택했다. 명지대에서 주전으로 뛰며 박종환 감독의 눈에 들어 대학 2학년 때는 국가대표 2진, 3학년 때는 국가대표 1진에 뽑혔다”며 “박지성 선수가 있기 전에는 내가 명지대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선수였는데 이젠 박지성에게 밀렸다. 하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후배가 나올 때마다 그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웃음을 짓는다.


    ◆히딩크 감독은 최 감독의 훌륭한 멘토

    대학 졸업 후 프로팀에 입단한 최 감독은 1992년 유공팀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그는 은퇴 직후 6년 동안 관동대 축구부 감독을 지내다 1999년 올림픽 대표팀 코치로 발탁됐다. 그리고 2001년 올림픽 코치를 연임하며 그는 히딩크 감독을 만나게 된다.

    최 감독은 당시 자신은 올림픽팀 코치라 히딩크 감독과 함께 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용감하게 히딩크 감독을 찾아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 배울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최 감독은 대표팀 트레이닝 코치로 일하게 됐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하는 전술은 정말 새로웠다. 체계적인 선수 관리, 계산된 체력 운동, 전술 등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며 “히딩크 감독이 나의 제안을 승낙해 그의 지근거리에서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41살에 만난 히딩크 감독 덕분에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삶이 변했다고 한다. 히딩크가 펼치는 전술, 훈련기법, 등을 매일같이 메모해 밤마다 공책에 옮겨 적었다. 최 감독이 모든 훈련 하나하나를 꼼꼼히 메모하니 히딩크 감독은 그를 대한축구협회의 스파이(?)로 오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난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 훈련 현장의 모든 것을 메모했고 히딩크 감독이 오해할까 봐 훈련복 바지 틈 사이에 수첩을 끼워 뒀다. 그러니 매번 수첩이 운동장에 떨어졌고 이를 본 히딩크 감독이 마음껏 메모하라고 배려해 줬다”며 “히딩크 감독과 함께했던 시간 동안 메모했던 것이 비망록이 5권이고 쪽수로는 700여 쪽이 된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그것을 잠언처럼 들쳐본다”고 말했다.


    ◆감독이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최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고 대구FC 코치 생활을 하다 스페인으로 유학 갔다. 그는 스페인 프로 축구팀에 있으면서 선진 축구 전술과 관리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2004년 유학에서 돌아와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전남에서 수석코치를 맡았다. 허정무 감독과 최 감독의 인연은 깊다. 최 감독보다 8년 선배인 허 감독은 첫 대표팀 룸메이트다. 당시 허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슈퍼스타였고 최 감독은 까마득한 후배였다. 허 감독은 자신에게 수석 코치를 맡기며 많은 권한을 줬다. 히딩크 감독에게서 선진 축구를 배웠다면 허 감독에게선 한국형 축구를 배웠다.

    최 감독은 “스페인 프로 축구에서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배울 수 있었다. 연수에서 돌아와 허 감독 팀에 들어간 것은 운이 좋았다”며 “허 감독은 한국 문화에서 선수단을 이끄는 방법부터 전술 구사 등을 자세히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서울FC와 인연을 맺어 2006년에는 서울FC 유소년 팀을 맡았고 2010년에는 서울FC 2군 감독을 맡았다. 그는 2군 감독 당시 현재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를 만났다. 손 선수 아버지와 최 감독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최 감독은 손 선수를 중학교 때부터 눈여겨보고 고등학교 진학과 FC서울 2군 훈련을 돕는 등 멘토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0년 12월 경남FC가 감독 영입 공고를 냈고 최 감독이 발탁돼 현재까지 경남 FC 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축구를 시작하고 40년 가까이 지나서야 감독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좋은 스승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좋은 감독이 된다면 좋은 선수들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진정성 있고 따뜻한 감독이 되고 싶다. 내가 어릴 때부터 그려온 지도자의 모습대로만 한다면 경남FC뿐 아니라 여러 선수에게 좋은 멘토가 될 것이다”고 했다.


    ◆고난은 경남FC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올 시즌 경남FC는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메인스폰서 STX가 매년 40억 원씩을 후원하던 금액을 대폭 삭감하고, 경남도청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코치진에게 사직서를 내게 했다. 그리고 2군 선수단도 없앤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경남FC는 설상가상으로 8월 들어 5경기를 남겨두고 1무 2패에 그치며 상위그룹 자력 진출 가능성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경남FC는 광주전 마지막 경기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우린 노는 물이 달라’라는 현수막과 함께 8위에 올랐다. 그것도 시도민구단 중 유일하게 상위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후원금 삭감, 사직서 문제만으로도 하늘이 노래졌는데 2군을 없애겠다는 말까지 나와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군을 없애는 만큼은 끝까지 반대했다”며 “경남FC와 같은 시, 도민 구단이 어린 선수를 키워 팀에 활용하기보다 다른 구단에 팔아버리는 파행적인 운영은 안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전반 광주에 선제골을 내주고 후반 7분 김인한, 18분 최현연이 동점, 역전 골을 터트리며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제주와 득점 없이 비긴 인천과 서울에 0대2로 패한 대구를 밀어내고 8위에 올랐다”며 “숱한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선수들에게서 ‘독기’가 생겼고 결국 남들은 다 안된다는 것을 해내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주장인 김병지 선수가 미팅할 때 ‘우리 이왕 놀 거면 위에서 놀자’고 했다. 경기가 끝나고 걸린 ‘우린 노는 물이 달라’라는 현수막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꿈이 있어 하루하루가 설렌다

    최 감독은 FA컵 우승을 꼭 하고 싶다고 밝혔다. 경남FC가 아직 FA컵 우승 경험이 전무하고 아시아챔피언십에 진출하면 팀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 20일 결승전 상대는 포항이다. FA컵 우승 경험과 전통의 강호인 포항을 만난 것이 껄끄럽지만 강팀에 강한 경남만의 축구를 보여 처음으로 아시아챔피언십에 출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 감독은 “포항과 올 시즌 상대 전적이 1승 1패다. 1패는 홈에서 졌는데 당시에는 김병지 선수가 뛰지 못해 아쉬웠는데 다시 포항과 붙으면 해볼 만하다”며 “경남FC가 아시아챔피언십에 진출하면 구단 홍보도 되고 수당도 있어 선수들 사기에 도움이 된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큰 경기 경험을 쌓게 해 그들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준비된 지도자다. 항상 손에는 메모지와 펜을 들고 무언가를 적는다. 연습 때도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메모해 선수들을 꼼꼼히 파악한다. 메모지에 적은 내용을 기초로 선수들에게 질책보다 대화를 통해 풀어간다. 최 감독은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이끈다.

    최 감독은 “팀이 시즌 중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겨 어수선한 상태에서 선수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축구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이 축구를 사랑해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며 “감독이 된 이후 좋은 감독이 무엇일까 생각할 때마다 승패에 민감한 감독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선수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나만의 힘이 아니듯 선수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디딤돌이자 좋은 멘토가 되고 싶다”고 속내를 밝혔다.

    글= 배영진 기자 bjy@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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