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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 박서영 시인의 추석 에세이

마당 채우는 보름달 보며 어린 날의 향수에 젖는다

  • 기사입력 : 2012-09-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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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영 시인




    뿔뿔이 흩어져 살던 자식들이 꽉 막히는 길을 뚫고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찾아 모여드는 추석이 내일모레다. 온 가족이 모이기엔 좁은 공간일지라도 부모님이 계시기에 고향 집은 늘 넉넉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향에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또 누군가는 올 추석에도 자식의 귀향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을지라도 마음은 모두 고향에 머문다. 박서영 시인의 추석 에세이를 통해 저마다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을 미리 만나본다. - 편집자 주



    곧 추석이다. 달력을 보니 주말이 끼어 있긴 하지만 개천절까지 쉬는 분들이 많을 듯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5일간의 휴식은 사람들을 설레게 할 것이다. 예전과 달리 추석연휴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하는 가족여행이라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실제로 추석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100만을 넘는다고 하니 추석풍경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시골 부모님은 오랜만에 자식의 얼굴을 보려고 햇곡식에 과일, 송편을 빚어놓고 기다리는데, 자식들은 여행을 간다며 훌쩍 비행기를 타버린다면 어떻겠는가. 넘치도록 풍족해진 세상의 풍경이 추석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이제 도시의 아이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형마트에만 가면 사계절 내내 먹을 것이 넘치고 ‘한가위’에만 특별한 것을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의 아이들은 결과물만을 보며 만족감을 얻는다. 추석 무렵 아이의 손을 잡고 들판에 나가 보라. 한 톨의 볍씨가 쌀이 되고, 나무에서 주렁주렁 과일이 익어가는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면 분명 아이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내가 추석 고향에 간다는 것은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뜻이다.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 고향이다. 요즘 읽고 있는 시집이 <백석문학전집>이다. <서정시학>에서 백석 100주년 기념으로 펴낸 책인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묘한 시집이다. 백석은 ‘고향’이라는 시에서 먼 타관인 함경도에 혼자 앓아 누워 있을 때 의원을 뵌 일을 술회하고 있다. 고향이 어디냐 물어, 평안도 정주(定州)라 하니, 그곳은 의원과는 막역지간인 아무개씨의 고향이고, 백석은 그 아무개씨를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고 대답한다. 그런 대화가 오간 뒤 백석은 의원의 손길에서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고 느낀다. 고향이 같다는 말 속에서는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정감이 들어있다.

    나는 유년을 시골에서 보냈다. 내가 사는 곳은 옹기종기 마을이 모여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곳이었다. 뒤는 산이었고 앞은 들판이었다. 어릴 때 마루에 앉아있으면 건너편 산등성이의 많은 무덤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석 무렵이면 무덤에 벌초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성묘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루에 앉아 그 모습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벌초는 자손들에겐 매우 큰일이다. 조상의 묘를 단장하면서 현재 자신의 삶을 조심스레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내 주변엔 아직 일부러 시간을 내어 벌초를 다녀오는 이들이 많다. 조상과 부모를 잘 모시는 분들은 대개 주변의 평판도 좋고 성품도 곧다.

    추석날 밤 올려다본 달은 마당을 다 채우고, 어린 내 마음을 다 채우고도 넘치는 달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보름달이 뜨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아버지는 어부여서 바쁜 농사철이나 명절이 되어야 집에 오곤 하셨다. 어느 날 밤에 멸치젓갈이나 생선 말린 것들을 들고 오는 아버지는 낯설었다. 평생 바다 위에서 살던 아버지가 어부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의 불편도 사실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집에서 소일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고구마밭에 나가 농약을 치는 바람에 어머니의 고구마농사를 다 망쳐버린 사건도 있었다. 초보농사꾼 아버지는 종종 어머니의 농사를 이렇게 망쳐 놓곤 했다. 작은 밭떼기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동안 자주 싸우셨다고 들었다. 팔순이 다 된 아버지가 텔레비전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은 세월의 무상을 느끼게 한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태풍 피해는 없는지 먼저 전화를 하셨다. 늘 먼저 안부를 물어오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면서도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늘 부지런하시다. 늘 빈둥거리는 나와는 달리 지금도 어머니는 단 하루도 쉬지 않는다. 간혹 안부전화라도 드리면 고추밭에, 고구마밭에 나가 일을 하는 중이시다. 어느 봄날엔 들판에 나가 혹시 딸이 오면 주려고 해쑥을 가득 캐어 냉장고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얼마 전엔 스마트폰으로 인해 생긴 해프닝도 있었다. 평소 연락을 잘 하지 않던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전화를 드렸더니 받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찍혔을 텐데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밤새 잠이 오지 않고 뒤척이다가 오후에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연락이 되었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전화기 너머에서 ‘니, 우나?’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 가슴이 북받쳤다. 막내아들이 사 준 최신 스마트폰 사용이 서툴러서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전화를 드려 스마트폰을 바꾸는 게 어떠냐고 하니, 사용법을 다시 배웠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아들이 사 준 선물이니 또 어머니께는 얼마나 소중할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알았다고만 대답했다.

    추석의 여러 풍경 앞에서 굳이 옛것만을 고집하라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 것이다. 삶의 모습들이 부모 세대들과는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양말 한 켤레를 건네주면서도 마음을 나눴는데, 이젠 서로 눈치를 보며 의례적인 물물교환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서로의 살림살이를 일일이 알 수 없지만, 작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 의미가 있다.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바쁘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태풍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과 경쟁에 일그러진 몸과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 그리고 이맘때쯤에는 웃자란 풀들도 잘라줘야 한다. 그래야 길이 보인다. 나는 한쪽 눈을 감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채 달려가는 건 아닐까. 한 손에는 심장을, 한 손에는 머리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그것들이 땅에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자. 추석이 다가올 무렵, 내가 스스로에게 조언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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