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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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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두 개의 문 - 問, 聞 -김지율(시인)

  • 기사입력 : 2012-09-2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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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問 2012년 6월 27일자 경향신문 1면. 월 15만 원의 노령연금으로 생활해 오다 동반 자살한 노부부의 유서 첫 문장은 이랬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향해 그토록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 문장을 본 그날은 하루 종일 우울하고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부모들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그리고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계신지?

    問 이성의 질주 끝에 인간이 도달한 것은 ‘광기’다. 삶의 불안과 공포, 두려움은 이성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1948년 이후, 50년 동안 껍데기 정치만 해왔다. 형식과 내용이 갖추어진 것은 겨우 15년밖에 안 된다. 고백을 하자면 내가 던진 표들이 두 번은 성공하고 한 번은 백지화되었다. 지금 나는 몹시 불안하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어떠신지?

    聞 그대는 그 소리들이 들리시는지? “난 내 나라 내 백성이 백 곱절 천 곱절은 더 소중하오.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명보다 내 백성이! 백 곱절 천 곱절은 더 중요하오!”,“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이 그대가 원하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루어 드리리다.”, “ 너희들에게는 가짜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진짜다!”. <광해>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동안 귀에 들렸던 말들이다. 인간과 사회는 위기의 순간에 비로소 진화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기회다.

    聞 진정한 정치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진정한 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모른다. 하지만 수직이 아니라 수평, 강자가 아니라 약자,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위할 줄 아는 철학과 믿음이 정치와 문학의 밑바탕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에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진정한 시는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이며 자세다’라고 말했던 사람은 시인 김수영이다. 이 말은 시를 쓰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든 스스로 처한 현실에 안주하지 말아야 하고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하려는 자기를 부정하면서 현실의 문제점을 파악해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시도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또 고백을 하자면 나는 매일 혼란스럽고 또 혼란스럽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야 한다. 온몸으로 흔들려야 바람을 알 수 있으니까, 그것은 내맡김의 자세다. 내맡김은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의지의 영역을 벗어나 끊임없는 인내를 통해 존재의 새로운 도래를 기다리는 능동적 자세이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계산과 지배의 의욕뿐 아니라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의욕까지 버린 후의 기다림의 자세다. 그러니 이 끝없는 불안 속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나와 당신이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길이라 부를 그날을, 그리고 외로운 커피와 웃긴 와플처럼 참 잘 어울리는 짝패들을,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따위 없어/ 네 몸이라는 여린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 보렴/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럼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 전문

    김지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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