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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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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일하며 사는 즐거움- 최숙향(시인)

  • 기사입력 : 2012-10-1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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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인들은 내게 ‘일중독’이란 말을 종종 갖다 붙인다. 문단에서 잔심부름을 곧잘 하고 술자리나 행사장에서 마지막 설거지를 담당했던 나의 발자취 때문에 행방이 묘연해졌을 때 찾는 이들의 전화를 바쁜 중에 늘 허덕이며 받았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 챙겨주는 고마움으로 ‘찬바람 날 때 한잔 하자’며 몽땅 미뤄 온 터인데 날씨가 쌀랑해지니 슬슬 걱정이 앞선다.

    나는 누구보다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다. 일을 할 수 있고, 일할 공간이 있고, 내 일에 신명나게 몰두할 수 있어서이다. 그래서인지 생산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다. 성취와 보람의 맛을 알아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찾고 열정적으로 도전과 모험의 세계를 즐긴다. 내 주위를 돌아보면 일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람, 생계에 급급해 일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 의욕은 있어도 마땅한 기회가 없는 사람 천지다.

    1997년 IMF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어느 순간부터 이웃들은 누구나 생활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누구든지 해외여행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가는 듯했다. 회사나 나라 차원에서의 기회도 많았다. 필자도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도입된 시점이라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지에서 연수를 받고 오는 기회를 누렸다. 그러한 나라 차원의 연수의 문도 점차 확대될 계획 단계에 있어 기회가 많은 선진국의 국민인 양 가슴이 뿌듯해졌고 애국심이 물컹물컹 살아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상당히 살 만해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살맛 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 곳간에 남아 있는 양식이 얼마나 되는 줄도 모르고 끓지도 않고 넘쳤던 소비생활로 빚어진 착각이었음이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하면서 드러났다.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질 거란 착각, 착각이 착각을 부르고 너도나도 앞서가는 바람에 서로서로 소비를 부추긴 대책 없는 살림살이의 결과였다. IMF를 기점으로 많은 반성과 변화가 있었고 다소 느슨해지던 직장인들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도 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직업을 갖는 일은 더욱 힘들어 보인다.

    오랜 공부로 지쳤던 딸아이가 힘든 입시의 관문을 거쳐 대학생이 되었다. 또 다른 경쟁세상이 시작되어 고등학교 때보다도 더 힘들다며 투정이 심하다. 대학은 젊은 날 환한 꽃무리로 피어나야 하는 꿈과 희망의 캠퍼스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고 캠퍼스에선 낭만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름다운 꿈들을 눈부시게 펼쳐놓을 틈도 없이 졸업 후의 확보되지 않은 직업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경쟁의 사지에 내몰려 우리의 젊은이들이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가는 모습이다.

    필자의 대학 시절엔 고등학교 때의 노력의 보상에 따라 졸업과 동시에 직업이 100% 확보된 대학도 많았다. 물론, 경쟁의 긍정적인 향상과 노력의 효과를 간과하는 발언을 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직업 경쟁률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그네들 말처럼 차라리 관문을 좁혀 뽑지를 말지, 이건 몰아쳐도 너무 세게 몰아친다. 노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노인 대상의 새로운 직업들도 생겨나겠지만, 길어진 수명만큼 노인들이 종사할 수 있는 직업도 필요해졌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일자리가 절실히 필요해진 것이다.

    누구나 직업을 갖고 요소요소에서 신명나게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는 살맛 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말로만 떠드는 직업의 귀천이 느껴지지 않도록 노동력의 양만큼 급여가 주어지는 세상이면 더더욱 좋겠다. 적성과 희망에 맞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노하우를 개발해내어 여러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세상 만들기는 한갓 꿈에 불과한 것일까!

    최숙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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