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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76) 황강 24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 일주문 지나니 고요한 부처 세계가 반기고…

  • 기사입력 : 2012-10-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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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광사터 부근에 있는 장수촌.
    해인사 일주문. 서예가 김규진이 쓴 ‘伽倻山海印寺’ 현판이 걸려 있다.
    약수암.


    천년고찰 가야산 해인사로 가는 길에도 가을이 물씬 내리고 있었다.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가는 길에는 산골 사람들의 삶이 묻어 있는 계단 논들이 이어졌다. 벼들은 농부의 땀에 보답을 하듯 태풍을 이기고 누렇게 황금들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손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계단 논이나 작은 밭은 자연미가 살아 있어 나그네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지만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그렇지 않다. 산길은 산굽이와 강물 따라 느리지만 아름답게 이어지며 행복한 어울림을 준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산과 들이 주는 가을을 따라가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 한쪽에 애잔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월광사터가 반겨준다.


    ◆장수촌·약수암= 월광사터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 혹은 태자로 전해지는 월광태자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그는 신라에 저항해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는데, 최후의 싸움터가 이곳이라고 야사로 전해온다. 지난 9월 답사기행 때 경북 고령에 가 보니 가야국 중에서 가장 강대국이었던 대가야의 역사가 화려하게 복원되고 있었다.

    월광사터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사이로 상륜부만 보이는 통일신라 쌍탑이 그나마 옛터를 지키고 있다. 월광사터 부근에 장수촌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넓은 터에 건물이 있었다. 입구 축대에는 예전에 있던 벽화를 지우고 다른 그림을 그려 놓았다. 넓은 마당으로 들어서니 원두막이 있고 한옥으로 지은 찻집이 있었다. 그리고 살림집이 있고 나무를 가공하는 작업장 건물이 있었다. 차나 한잔하려고 찻집으로 들어가니 주인이 없어 물었더니 요즘 흔한 용어인 셀프라고 했다. 주인은 문화재 기술자 서장수(56) 씨이고 장수촌의 의미를 물었더니 그냥 웃었다. 마침 건너편 월광사터의 애잔한 삼층석탑에 대해서 물었더니 원래 위치가 그곳이 아니라고 하며 탑만 국가 소유이고 나머지 주변에 있는 토지와 묘지, 나무는 개인 소유라고 했다. 여러 번 주변에서 땅 주인을 설득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수촌 찻집에서 약초로 담갔다는 차를 들고 나와 권하는 서장수 씨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틈틈이 불화를 그리며 목조건축을 하는 문화재 기술자이다. 현재의 장수촌 한옥이 자신이 틈틈이 지었고 벽화도 딸과 함께 그렸다고 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고 가야산이 포근히 안고 있는 해인사 약수암으로 향했다.

    지난번 약수암에 찾아갔을 때 주저 없이 점심을 주었던 보선 노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름날 절집을 화려하게 천상의 화원으로 장식하던 그 많던 꽃들은 계절 따라 지고 없었다. 원래 불가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은 사진이 실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번 약수암 순례 길에 점심을 먹고 나오다 절집 마당에서 시자 스님과 담소를 나누는 보선 노스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신문에 실렸다. 절집을 들어서며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노스님께서 매우 반겨 주었다. 점심 후에 가사 한 벌이 걸린 소박한 노스님 방에서 스님이 내주는 차를 마시고 있노라니 마음 가득히 평화가 찾아들었다. 많이 가진 것이 행복이 아니라 한 잔의 차에서도 큰 행복이 오는 것이라 여겨졌다. 약수암에서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오니 그새 푸르던 나뭇잎들이 노란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해인사 일주문·가야산 해인사= 해인사 성철스님 승탑과 다른 승탑군 지대와 묘길상탑을 지나면 당간지주와 연지가 있는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이다.

    문의 건축적 의미는 공간을 나누며 두 영역을 드나들 때 사용하는 건축구조물이다. 일주문은 사찰의 관문으로 핵심적 의미는 문의 구조나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 있는 위치에 있다. 사찰 초입에 있는 문을 보통 일주문이라고 하는데 일주문 현판을 달고 있지는 않다.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일렬로 서 있는 문’이라는 뜻을 새긴 것으로 문의 모양을 근거로 해서 지은 이름에 불과하다. 해인사 일주문에도 근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이 쓴 ‘伽倻山海印寺’ 현판이 붙어 있다.

    일주문의 형식이 꼭 사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원 앞에 있는 홍살문이나 조선시대 충렬효행을 기리는 정문도 일주문이었다. 일주문의 형식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일주문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바깥쪽은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고 문 안쪽은 현실 세계와 구별되는 신성하고 이상적인 공간인 셈이다. 불교적 개념으로는 일주문 밖은 차안, 또는 사바 세계에 해당되고, 문 안쪽은 피안, 또는 극락의 세계가 되는 셈이다.

    불교에는 불·법·승이라는 삼보가 있다. 즉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전하는 스님들이다. 따라서 삼보는 불교 존립의 근거이며 동시에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모든 불교도는 스스로 부처라는 완전한 인격을 성취하는 것이며, 부처가 갖춘 보편적 진리를 체현하며 승가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수행을 하는 것이다. 삼보는 불교의 핵심이요, 정점이자 바탕이다. 우리나라 삼보사찰 통도사는 석가모니 사리가 모셔져 있고, 해인사에는 석가모니 가르침을 기록한 팔만대장경이 봉안돼 있으며, 송광사는 고려시대 이후 16국사의 고승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해인사라는 절집의 이름에 깃든 정신은 무엇일까? 통일 후 신라를 지탱한 사상은 화엄정신이었다. 해인사는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신라 40대 애장왕 3년(802)에 순응과 이정에 의해 창건됐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인 화엄경에 ‘해인삼매’라는 말이 나온다. 화엄경의 세계관은 일심법계로 온갖 물듦이 깨끗이 사라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이다. 깨달음의 눈, 부처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일심법계이니 마치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잔잔해져 고요해지면 거기에 우주의 만 가지 모습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경지가 곧 해인삼매이다. 우리들 마음의 바다에서 번뇌라는 가지가지 물결이 일고 있는 것은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라는 절 이름에 깃들어 있는 진정한 정신은 해인삼매이자 부처가 이룬 깨달음의 내용이다. 즉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참된 근원이요, 본래의 모습이다. 사찰 이름을 통해서 해인사의 성격을 다시 확인해보는 것은 소중하고 고귀한 우리 문화유산을 순례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 건축으로 추측되는 일주문은 창건 당시의 자리겠지만, 조선 세조 3년(1458)에 중수한 후 다섯 차례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일주문 문턱을 넘으면 중간에 사전적 의미로 ‘해 주위에 보이는 붉은 노을’이라는 뜻의 ‘紅霞門’ 편액이 걸려 있는데 부처의 세계로 들어감을 뜻한다. 뒤쪽에는 혜선 박해근이 쓴,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도량이라는 뜻의 ‘海東第一道場’ 현판이 붙어 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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