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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19) 유홍준 시인이 찾은 함안 원북마을 어계(漁溪) 조려 고택

욕심부린 마음도 원망하던 마음도 다 내려놓다
생육신 조려 흔적 찾아 원북 가는 길은 가을걷이 한창

  • 기사입력 : 2012-10-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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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고향으로 내려와 세상과 인연을 끊은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 선생이 태어나고 여생을 보낸 함안군 원북면 어계 고택.
    일명 개구리 바위로 불리는 석정.
    경전선 폐선으로 추억 속으로 사라진 원북역 인근 철길.
    주나라의 충신 백이·숙제와 관련돼 있는 채미정.



    가을이 자꾸 낮은 데로 내려오고 있다. 낮은 데로 내려온 가을은, 사람의 가슴으로 쳐들어 와서 단풍이 된다. 낙엽이 되고 회한이 되어 이리저리 쓸려 다닌다. 가을바람을 따라 찾아가는 생육신(生六臣) 어계(漁溪) 조려(趙旅) 고택(古宅)…. 지긋지긋하고 꼴도 보기 싫은 정치판, 국민 대다수는 이 시대와 사회, 정치에 염증을 느껴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나 역시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함안군 군북면 원북마을을 찾아가려면 진주에서는 진성을 지나 사봉을 지나 작은 재 하나를 넘어야 한다.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계 고택을 잘 모른다. 책에서 배운 대로 어계 조려는 김시습(金時習), 원호(元昊), 이맹전(李孟專), 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과 더불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운동에 참여했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과는 달리 살아서 절개를 지킨 이들을 생육신이라 부른다.

    어계 조려의 흔적을 찾아 원북 가는 길은 가을걷이로 한창이다. 지방도 한 편에는 메주콩 깍지를 널어놓고 도리깨질을 하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나는 덜컥 차를 세우고 사진 몇 방을 찍는다. 햇빛가리개 모자 밑으로 아주머니의 입술이 계속 웃으신다. 욕심이 없이 잘 사신 얼굴이다. 가을 여행길에 이런 분을 만나면 목적이고 뭐고 주저앉고 싶어진다. 여기선 정치가 무슨 상관이며 학력이 무슨 상관이며 재산의 많고 적음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가을 농부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작다. 가을 농부가 수확한 농작물 앞에서 우리는 그저 감동하고 또 감격한다. 막 추수한 곡식을 만져보는 건 대단한 감동. 저절로 충만해지는 느낌이다. 대추나무의 대추는 한창 단물이 올랐고 감나무의 감은 빨갛게 불이 들어왔다. 가을에는 다 잘 보인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 들일을 나가지 못하시는 노인네들은 대문간에 앉아 아들내외가 거둬온 이런저런 곡식들을 갈무리하신다. 저 고달픈 광경이 여행자의 눈엔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니 웬일인가.

    원북마을 입구에서 곧바로 만나는 것은 채미정(菜薇亭)이다. 채미정은 고사리만 캐 먹고 살았다는 주나라의 백이, 숙제와 관련이 있다. 원북마을 채미정은 두 왕조를 섬기기 싫어 구미 금오산 아래 은거한 야은 길재의 채미정과는 조금 다르다. 산속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고 길 가까이 나와 앉아 있다. 채미정 난간을 붙잡고 나는 시선을 들어 멀리 가을들녘을 바라본다. 노란 벼논들이 이룬 풍경이 장관이다. 이전엔 나는 이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그걸 잘 몰랐다. 그 동안 나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왔다. 실컷 배불리 먹고 원망과 야유와 원성을 쏟아내며 살아왔다.

    채미정 오른쪽엔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개풍루(開風樓)가 있다. 바람을 여는 곳, 바람이 열리는 곳이다. 물로 눈을 씻는 게 아니라 바람으로 눈을 씻고, 바람으로 마음을 씻고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귀도 씻고, 눈도 씻고, 혀도 씻고 싶은데, 이 세상은 너무 깨끗하게 살면 안 된대나 어쩐대나. 하여간….

    영남과 호남을 잇는 우리나라 유일의 철도 경전선이 지난 23일 100년이 넘는 역사를 뒤로하고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경전선과 함께 이제는 추억 속의 역이 될 원북역에서 나는 조금 어슬렁거리다가 서산서원(西山書院)을 둘러보고 어계 고택을 향해 올라간다. 사실 어계 고택을 찾는 건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려는데 그 이유가 있다. 그간 나는 너무 막 살았다. 하지만 이 가을쯤엔 그 어지러운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리고 달래고 재정비해야지 않는가 말이다.

    누구라도 어계의 생육의 흔적 앞에서는 경거망동할 수가 없다. 욕심을 부린 마음도, 원망을 하던 마음도 다 내려놓고 제 발등을 가만히 내려다보게 되어 있다. 어계 고택 담장 옆에는 어계의 성정처럼 곧게 뻗은 노거수 한 그루가 있다. 얼마나 알들을 오지게 달고 있던지, 조려의 후손은 그 나무 밑에 그물망을 쳐놓고 떨어지는 열매를 거두고 있다. 아직은 조금 이르지만 한 열흘쯤 후면 저 은행나무는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장관이겠다.

    어계 고택엔 올 때마다 동행 없이 혼자다. 빈집이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빈집을 홀로 어슬렁거리며 반성하고 자책하는 기회를 가진다. 이것이 어계 고택에서 누리는 매력이고 덕목이다. 어계도 뒷짐을 지고 이 빈 마당을 돌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은행나무 잎 사이로 올려다보는 가을하늘이 눈부시다. 나는 대문을 나서 어계 고택 앞 개울로 간다. 개울 옆 배추밭에는 푸른 생명들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이 싱싱한 풍경 역시 멋지다. 아닌 게 아니라 가을에는 저절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되어 있다. 작은 개울 원북천, 이곳에 어계가 낚시로 소요하였던 곳, 석정(石亭)이 있다. 그 모양새가 흡사 방어산 자락을 향해 뛰어드는 개구리 같다 하여 일명 개구리 바위라고도 부른단다. 돌 개구리 등짝에 ‘석정’이라고 새겨진 글씨체로 미루어 나는 어계의 성정을 짐작해 본다. 아름답다기보다는 반듯하고 바른 글씨. 강직한 기품이 있어 보인다.

    나는 홀로 석정 주위를 왔다갔다 해보기도 하고, 짧은 실력으로 석정 위에 새겨진 열여섯 글자를 해독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개울 속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물고기다. 어계가 낚던 고기는 어떤 고기였을까? 이 작은 개울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생육신 조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송사리떼가

    개천을 누비고 있다.

    송사리는 떼단위로

    몰려갔다 몰려왔다 한다.

    잠도 떼단위로 자고 떼단위로 잠을 깬다.

    송사리에게는 我라는 것이 없다.

    너무 작아

    있다 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송사리는 혼자서 태어나고 혼자서 죽는다.

    송사리떼가

    개천을 누비고 있다.

    개천에 자기 그림자를 만든다.

    자기 그림자를 만들어놓고

    송사리떼는 어디로 갔나

    보자기만한 그림자 하나가 이리저리

    개천을 누비고 있다.

    -김춘수 ‘제36번 悲歌’전문



    대통령 후보를 따라 떼로 뭉쳐 따라다니는 송사리떼들은 꼴도 보기 싫은데 저 물 속 송사리떼는 왜 저리 예쁘다냐. 글쎄……. /글·사진=유홍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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