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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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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의 번창- 정푸른(시인·계간 ‘시와환상’ 편집장)

  • 기사입력 : 2012-10-2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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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어디에 있건 공기라는 탄력 있는 고치 속에서 숨 쉬고 몸을 부빈다. 우리의 폐 속에 공기를 들이고 내뱉는 생리적 현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숨을 이어감으로써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곡절을 가진 삶을 만들어간다. 숨은 우리의 몸이 시간과 세상에 길을 내는 본능적 방법이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의 생각 속으로 들이고 내뱉는 또 다른 공기가 있다. 바로 말(言)과 글(文)이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몸의 작은 세포들인 우리는 언어라는 공기 입자를 통해서 소통하고 관계하고, 사고한다. 말은 인간 각자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피돌기이며 심장 박동이다. 언어라는 피돌기가 얼마나 깨끗하고 원활한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혹은 우리가 굴러가고 있는 세상의 안색이 달라지지 않을까?

    세상은 지금 말과 글의 범람이다. 누군가를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웃던 시간이 인터넷 속으로 함몰되면서 순수와 예의가 사라지고 있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생각과 속내를 쏟아내는 140타의 외로운 중얼거림, 트위터를 보자. 인터넷이 휴대폰 속으로 들어오면서 오프라인보다 더 거대한 온라인 세상이 만들어졌다. 상대방의 얼굴을 살피고 쭈뼛거리던 우리의 말과 글은 표정과 감정이 거세된 채로 세상 속으로 바로바로 수혈되고 있다. 그 말들은 다시 우리의 생각과 생활 속을 돌아나가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배하고 흔들어놓고 바꿔놓는다.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와 동호회, 카페, 블로그들이 말과 글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장기(臟器)이기도 하지만 변이를 일으키는 세포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살아있는 오프라인의 대화는 우리의 귀를 통해 들어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잊혀진다. 그리고 소통하는 상대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더라도 회복할 수 있고 치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내뱉은 사이버 세상의 말과 글은 떠도는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저장되고 리트윗된다. 비밀번호에 잠겨있는 더 은밀하고 비릿한 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온라인에서는 일파만파의 상황이 순식간에 일어나며, 익명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누군가를 파괴할 수 있고, 완전히 격리해버릴 수도 있다. 우리가 들이쉬고 내뱉은 말의 힘과, 파괴력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상상 초월 그 이상이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타당하지 않을까? ‘말(言)을 얻는 자 세상을 얻으리라.’ 하지만 그 말의 혈행을 맑게 하고 힘차게 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들 자신이 내뱉은 말을 호흡함으로써 세상과 아름다운 길을 틀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또 얼굴도 보지 못한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

    이제 세상의 반쪽은 사이버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그 무형의 세상에서 우리는 더 오랜 시간을 뛰어다니고 숨 쉬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온·오프라인의 공기이며 혈액이기도 한 말과 글이 우리들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건 희망적이다. 때때로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면서 말을 더듬던 그때가 그립다. 하고 싶던 말도 가슴에 담아둔 채 시간으로 삭이던, 발효된 말의 맛을 혀끝으로 느끼고 싶다.

    문장 끝에 달려 있는 이모티콘 안에 담을 수 있는 감정의 깊이는 얼마만큼일까? 때때로 그것은 누군가의 피부를 관통한, 칼날 끝에 달린 작은 인형처럼 무심하고 무자비해 보인다. 우리가 지을 수 있는 웃음의 입꼬리는 작은 이모티콘의 검은 라인 안에 담기엔 깊고 크다. 세상은 우리의 더운 숨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진다. 당신은 지금 사이버 세상을 걷고 있는가?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자. 그것이 세상의 심장을 따뜻하게 데우는 시(詩)가 되고 위로가 된다. 우리 이제, 유창함을 버리고 가끔 말더듬이가 되자. 쭈뼛거리고 수줍어하는 더운 심장의 말더듬이가 되자.

    정푸른(시인·계간 ‘시와환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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