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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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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고성 어실마을서 20년째 전업시인 활동 동길산 씨

삶을 비웠더니 詩가 채워졌다
1985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7년 만에 그만둬
1989년 무크지 ‘지평’에 시 발표하며 등단

  • 기사입력 : 2012-10-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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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들이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시를 쓰고 싶다는 동길산 씨. 그가 마당의 평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동길산 씨가 작업실에서 LP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산골에 혼자 살면서 문학작품 활동에 전념해오고 있는 문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시와 산문을 쓰면서 전업 문인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동길산 (52·고성군 대가면) 시인. 그는 부산에서 자라나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입사해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조용한 산골에 들어온 지 벌써 20년째다. 제대로 밥벌이가 되지 않는 전업 문인으로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1989년 부산의 무크지 ‘지평’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한 동 씨가 산골에 들어와 시작에 몰두하는 이유와 그의 일상을 들어 봤다.

    ▲산골 시인을 찾아서= 고성읍에서 진주 방향으로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다 보면 대가저수지로 유명한 대가면사무소가 나온다. 대가면사무소에서 50m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왼쪽 길을 따라 산등선을 넘어서 꼬불꼬불한 길을 타고 10분 정도 가자, 다시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 주변으로 산이 있지만 높지 않아 아담한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동 씨는 이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10가구가 안 되는 어실마을에 살고 있다.

    그는 이미 20년 전인 1992년에 구입한 폐가를 개조해 자신이 좋아하는 수천 장의 LP로 가득 채우고 작품 쓰기에 적당하게 꾸며서 자신만의 작업공간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기자가 이곳을 찾아 집 마당의 평상에 앉아서 함께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이곳에 있는 것 자체로도 시심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그의 시나 산문을 통해 묻어나오는 느림의 분위기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내버스가 하루에 3번 운행될 정도로 외진 곳이지만 시인은 회사를 그만둔 후 정남향의 이 집을 마련한 것이 가장 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시 ‘남향집’에서 ‘여름엔 마루도 넘지 못하게 하는 햇살을/ 겨울엔 방까지 들이는 남향집/ 집에도 마음이란 것이 있어/ 추운 날 내 집에 온 손님/ 몸을 녹이고 가라고 방까지 들인다/… (이하 생략)’라고 노래하면서 자신의 집을 은근히 자랑한다.

    ▲산골로 들어오다= 대학 시절인 20살 때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로 고민을 많이 했다. 벤치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생은 크게 시간, 돈, 건강 3가지로 구성돼 있었다. 학생 때는 이 세 가지 중 돈이, 직장인은 시간이, 퇴직자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 자신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 씨는 대부분의 20대들이 좋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해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 시간 부자가 되자는 목표를 세운다.

    그는 1986년 대학을 졸업하기 앞서 1985년 12월 대기업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해 기획실에 근무하다 직장생활 7년 만인 1991년 11월 회사를 그만둔다. 자신의 목표 때문이었다. 퇴직 후 부산 기장 앞바다에서 낚시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일간지에 낚시터로 ‘고성 대가저수지’를 소개한 내용을 보고 1992년 5월 이곳에 출조를 오게 된다.

    주변 전망이 좋아 인근에 집을 구하려고 했는데 동네 목수가 더 좋은 곳이 있다며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안내해줬다. 차를 타고 집으로 안내를 받아 가던 중 산 위로 올라갔는데 산 위에 끝없이 펼쳐진 호수가 정말 마음에 들어 곧바로 퇴직금을 주고 폐가를 구입한다. 한 달 후인 1992년 6월 5일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을 모르는 데다 전화번호도 바뀌어 3~4일 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내면서 사람 목소리가 그리워 전화기를 들고 전화 안내음성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산골에서의 하루는 너무 지루해 한 달 내내 집에 머물지 않은 적도 있었고 이런 저런 행사로 집을 비우거나 술 생각이 나서, 사람이 보고 싶어 잠시 떠나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 들어와 10년 넘게 혼자 살다가 2003년 결혼 후에는 동갑내기 부인이 직장생활을 하는 부산과 고성을 반반씩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전업시인의 일상= 다른 수입이 없어 원고료만으로 생활하는 전업 문인인 그는 가능하면 몸을 안 움직이려 한다. 차도 없다. 몸을 움직이면 지출이 늘게 되고 일머리를 몰라 곧잘 불화(원하지 않는 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낮에는 주로 잠을 자고 밤에 작업을 하면서 보내려고 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의 하루 일과를 보면 오전 11시에 일어나 간단히 운동한 후 아침식사를 하고 마당에서 할 일이 없나 찾아보고 잠시 몸을 움직인다. 오후 2시 낮잠을 깨고나면 그 순간 정신이 맑을 때 독서를 하거나 작업을 한다. 오후 7시가 되면 저녁을 먹고 새벽까지 작업을 한다. 조명이 안 좋아 독서 대신 주로 글을 쓴다. 새벽 2~3시께 잠이 들어 5~6시께 일어나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고 이어 8~9시에는 가수 상태로 누워있다 오전 11시에 일어나 다시 활동을 한다. 가능하면 하루 절반을 자려고 한다.

    그는 깨어있을 때 주로 시 작업을 한다. 한 번 매달리면 오후 8시에 시작해 새벽까지 꼬박 하기도 한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시만 쓰고 산문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이곳으로 들어온 후 밥벌이를 위해 산문 청탁도 다 받아들인다. 처음 들어왔을 때 등단 3년 시인으로서 유명세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달에 원고 청탁 한 건 받기도 어려웠다. 시의 편당 고료가 5만 원 정도여서 한 달 생활비(10만 원)를 충당하기도 어려웠다. 돈도 안 되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어서 5년, 10년 단위로 전업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까 하는 갈등도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한길을 가면서 15년이 지나자 다른 마음이 안 생겼다고 한다. 이제는 한 달 고료가 문인 상위 1%(월 100만 원 이상)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는 젊은 문인이나 갓 등단한 사람에게 전업문인의 길을 걷고자 하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20년을 버티라고 충고한다.

    ▲시인의 이력= 그는 고교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해 책을 사보기도 하고 시작도 했다. 고교 시절 문예부장을 하면서 시를 몇 편 외우면 좋겠다 싶어 베껴봤다. 20회 정도 횟수를 거듭하면서 그 시의 장점과 아쉬운 점 등 시인과 생각이 충돌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자신의 시가 하나씩 자리 잡아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좋은 시를 보면 여러 차례 베껴보는 것이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대학진로를 앞두고 시를 쓰기 위해 국문과 선택도 생각했지만 문학은 즐기는 것이지 숙제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1980년 부산대 경제학과에 들어간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국문과 수업도 듣고 대학신문사에 있으면서 시 쓰는 열정을 계속 이어간다. 특히 1985년에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관련된 많은 시를 써서 1987년 ‘을축년 시초’란 시집을 낸다.

    1985년 12월 대기업에 입사해서도 처음 기획실 기획업무만 보다가 나중에 사보업무도 같이 보면서 원고 청탁 등을 하면서 부산지역 시인들과 교류를 통해 평소 자신이 쓴 작품들에 대한 평가와 격려 등에 힘입어 1989년 무크지 ‘지평’에 시 ‘바닥’ 등 10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당시 등단 매체는 신춘문예가 권위도 있고 선호했지만 자신은 이에 대해 신경도 안 썼고 초연하려고 했다. 어떤 것에 구애받지 않고 시 쓰는 것 자체를 즐기려는 그의 평소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등단 이전에 시집 한 권을 내고 등단 이후 ‘바닥은 늘 비어있다’(1995년), ‘줄기보다 긴 뿌리가 꽃을 피우다’(1997년), ‘무화과 한 그루’(2004년), ‘뻐꾸기 트럭’(209년) 등 4권의 시집을 발표한다.

    시집의 특징을 보면 1~2권은 도시, 3권은 도시와 시골의 공존, 4~5권은 시골적인 냄새가 묻어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특별히 지향하기 보다 독자들이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감동의 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어려운 시보다는 김소월 시처럼 쉬운 시를 지향하지만 쓰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는 “글 쓰는 사람은 사람마다 가진 지문처럼 자신의 문체를 가져야 한다”면서 “내 문체를 가져서 남과 다른 문학, 누가 봐도 그 사람이 쓴 시라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들레 씨앗처럼 날려온 나를 20년 동안 품어준 고성군 대가면 산골마을 어실에 글로써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의 앞으로의 계획이다.

    글= 이명용 기자 mylee@knnews.co.kr
    사진= 성민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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