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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고성 만화방초

예쁜 꽃들이 눈 맞춰 웃어주고 푸른 나무가 팔 벌려 안아주는 다정한 뒷동산

  • 기사입력 : 2012-11-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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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의 만화방초 초입에 자리 잡은 녹차밭.


    위부터 이고들빼기·꽃향유·차나무 꽃.



    문득, 동네 뒷동산이 생각날 때가 있다. 유년시절 벗이 그립거나, 옛 사랑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를 때, 그리고 지친 일상에서 쉬고 싶은 날. 그럴 때 옛 시골마을 뒷동산을 거닐다 보면 모두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시골의 대부분은 도시화됐고, 자연 그대로의 뒷동산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아쉬운 당신을 위해 비밀의 뒷동산 한 곳을 소개할까 한다.

    고성의 ‘만화방초(萬花芳草)’. 이름 그대로 만 가지 꽃과 향기로운 풀이 있는 곳이다.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동고성IC 옆으로, 꼬불꼬불 시골길을 따라 만화방초를 찾아 간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낡고 촌스러운 표지판이다. 분홍 배경색에 노란색 화살표로 길을 안내하고 있다.

    화살표를 따라 올라간 산길의 끝에는 녹슨 흰색 철문이 있다. 정문이다. 안내 표시도 있다. ‘문이 닫혀 있을 때는 사나운 개들(3마리)이 운동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개가 풀린 날인 것 같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표지판에 적혀 있는 휴대폰 번호로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를 탄 백발의 노신사가 나타났다. ‘왈왈왈왈’, 오토바이를 따라 개 두 마리가 크게 짖으며 따라 내려온다. 목소리는 사나운데 생김새와 덩치는 그리 사나워 보이진 않았다.

    문을 열어주는 주인을 따라 만화방초의 속길로 들어선다. 정문에서 3분여 차를 타고 올라가니 진짜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돌하르방과 솥단지, 연못과 쉼터, 그리고 아담한 황토집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넓은 녹차밭과 푸른 숲길이 숨겨져 있다.

    황토와 갈대로 지은 이 집은 주인 내외가 살고 있는 곳이다. 주인장 정종조(63) 씨는 부산에서 무역업을 했는데, 부모님이 남겨주신 이곳의 차밭과 산등성이에 꽃과 풀과 나무를 심으며 15년간 정성껏 가꿨다. 그리고 4년 전부터 사업을 모두 접고 이곳으로 들어와 둘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전체 면적이 19만8000㎡이고, 그중 차 밭이 6만6000㎡에 이른다. 나머지 13만2000㎡에는 야생화 1000여 종과 나무 6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만화방초는 걷기 좋은 길은 아니다. 잘 닦아진 길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정 씨는 모든 길을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조금 넓혀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 그대로의 농장’이 그가 꿈꾸는 만화방초이기 때문이다.

    초입은 녹차밭 단지로 조성돼 있다. 녹차 나무마다 흰 녹차꽃이 아롱아롱 매달려 있다. 정 씨가 꽃 하나를 따서 손 위에 놓아준다. 향이 상큼하고 달다. 녹차밭 사이 사이 꽃무릇 흔적이 보인다. 정 씨는 “약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녹차밭 사이에 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밭이 끝날 무렵 편백나무, 소나무 등 각종 나무들로 우거진 숲길이 등장한다. 오색의 낙엽이 바스락 바스락 발끝에 밟힌다. 발밑 곳곳에는 가을 야생화가 조용히 꽃을 피우고 있다. 들국화, 구절초, 노랗고 길쭉한 털머위, 향과 색이 진한 꽃향유, 연보라빛 쑥부쟁이 등 이름도 모를 꽃들이 천지다.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심히 지나칠 정도로 꼭꼭 숨어 있는 녀석들도 많다. 단풍나무는 색이 핏빛처럼 곱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높고 짙다.

    길을 걷는 내내 정문에서 만났던 사나운(?) 개 두 마리도 계속 따라다닌다. 덩치가 더 큰 녀석이 아들 ‘장수’, 작은 녀석이 아빠 ‘꽁돌’이라고 한다. 주인이 있어서일까. 경고와는 달리 얌전히 꼬리를 흔들며 안내꾼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게 귀엽다. 정 씨는 “이 아이들이 덩치가 작고 이래도, 얼마 전에 산장에 내려온 멧돼지를 잡은 기특한 녀석들이다”며 웃었다.

    만화방초의 한가운데쯤 들어왔을까. 나무 정자가 보인다. 정자 뒤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고, 길게 뻗은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게 이뤄져 있다. 정자 위에 올라서니 편백나무 향과 계곡 바람에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다. 정 씨는 이곳이 산림욕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라고 자랑했다.

    정 씨는 “만화방초는 봄, 여름, 가을 모두 색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라며, “봄에는 벚꽃과 녹차밭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여름에는 수국이 반딧불이가 어우러져 아름답고, 가을에는 꽃무릇과 단풍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사람들은 힘이 들 때 술이나 TV 등에 의존해서 스트레스를 푼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숲에서 마음 편히 노래 한자락 부르면 살아갈 힘이 생길텐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자를 지나 제법 깊은 산길을 따라 5분가량 올라가면 당동만도 볼 수 있다. 만화방초가 자리 잡은 곳이 백방산 기슭인데, 백방산은 270도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40분가량 걸려 한 바퀴를 다 도니 기분 좋을 정도로 숨이 찬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따라 걸으니 금세 숨이 안정됐다. 올라갈 때는 못 봤는데 곳곳에 장승, 돌하르방, 절구 등 옛 소품들이 눈에 띈다. 정씨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서 갖다 놓았다”고 말했다.

    만화방초의 이름은 김열규 교수(서강대 명예교수)가 지어줬다고 한다. 이름이 만들어지면서 개인 화원이었던 이곳이 공개된 장소가 됐다는 설명이다. 만화방초는 2007년부터 개방이 됐다.

    “처음에는 이곳을 사람들에게 공개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개인 공간이었죠. 사람들이 오면 훼손되잖아요. 벌써 텃새나 곤충들은 많이 줄었어요. 처음에는 지인들만 초대했어요. 김 교수님도 그 즈음 이름을 지어주셨고요. 그런데 지인들을 통해서 입소문이 나니깐 오겠다는 사람이 늘고, 그 사람들을 막을 수 없어서 한 팀, 두 팀 오게 되면서 그냥 개방이 돼버린 거지요. 김 교수님이 이름을 지어준 것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만화방초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열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 010-870-1041

    글= 조고운 기자·사진= 성민건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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