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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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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카페 천국- 유희선(시인)

  • 기사입력 : 2012-11-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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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밥 천국과 텔레비전 천국에 이어 또 다시 카페 천국이다. 아마도 이 천국시리즈는 얼마간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감히 경험할 수 없는 천국을 흔하게 쓸 수밖에 없는 역설을 생각해본다. 물론 여기서의 천국은 天이기보다 千에 가까울 수 있다. 양적인 수의 팽창은 우리가 그 문화에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다.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그 흐름에 휩쓸려가는 것이다.

    “그 여자가 있다던/ 보세 옷가게 앞을 지날 때도/ 그 여자는 거기에 없었다/ 그 여자가 마네킹의 팔을 들어 구겨진 옷을 입힐 때도/ 빨간 입술에 천 원짜리 김밥을 쑤셔 넣을 때도/ 새벽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없던 그 여자 // 어느 날 사라진 옷가게 자리에 커피집이 들어서고/ 그 여자를 닮은 마네킹 대신/ 우아하게 카푸치노를 든 여배우 그림이 서 있을 때야/ 나는 비로소 보게 되었다/ 완벽하게 사라진 뒤에야 보이는 여자를” 시인 문성해의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디 보세 옷가게뿐이겠는가. 우리 동네 카페 거리는 버젓한 주택들을 허물거나 리모델링해서 조성되고 있다. 집을 허물고 그들은 지금 어떤 집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 막 자녀들을 출가시키기 시작한 우리 세대는 서로서로 아파트 문을 터 놓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나 이젠 집이라는 공간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몇 십 년,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위한 누적된 피로가 집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일도,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드물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할 말은 넘쳐나고 우리는 거리에서 이를 대체하는 수많은 공간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앞질러가는 세상은 어딜 가나 내 집보다 고급스럽게 변천하고 있다. 계절과 상관없는 쾌적한 온도, 세련된 인테리어와 잡지, 노트북 등등 커피를 떠나서라도 카페라는 공간은 한동안 더욱 활짝 열릴 기세다.

    우후죽순 활짝 열린 이곳에서 다양한 풍경을 보게 된다. 멀지 않은 아파트단지 카페촌에서는 젊은 엄마들이 어린 아기를 데리고 삼삼오오 카페에 모인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어르며 그들의 이야기는 몇 시간째 이어진다. 주말이면 엄마, 아빠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에 오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젊은 아빠가 노트북에 열중할 동안 젊은 엄마는 아이를 소파에 눕히고 아무렇지 않게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한다. 싫증난 아이가 바닥을 기거나 바깥 문 쪽으로 들락거려 혹시 다치진 않을까 맘을 졸이게 한다. 어떤 가족들은 아예 흡연구역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왠지 이런 풍경들은 낯설게 느껴진다. 풋풋한 새댁들이 어느새 ‘아줌마’전선에 용감하게 합류한 건 아닌지…. 줄 세워 창가에 늘어놓은 축하 화분들이 금세 빛을 잃고 시들하듯 온몸을 뒤틀며 지루해하던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세상은 자꾸 집 밖으로 나오도록 부추긴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조금 더 큰 집을 소유하기보다는 순간순간 선택한 공간을 찾아간다. 집 앞에는 곳곳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고 주택가 뒷골목까지 파고드는 카페에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이 카페에서 마시는 수만 잔의 원두커피에 차츰 길들여지고 있다. 중독성 강한 커피의 힘을 업고 카페는 어디까지 뻗칠지 알 수 없다. 카페 천국이다. 우린 기꺼이 휩쓸려갈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이웃집에 모여 뜨거운 커피믹스를 나눠 마시던 때가 아득하다.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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