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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몸에 좋고 보기 좋은 집 (6) 거창군 거창읍 학산리 구례마을 표성흠·강민숙 씨 집

글 짓는 부부 ‘풀과 나무의 집’ 짓다

  • 기사입력 : 2012-11-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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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군 거창읍 학산리 구례마을 표성흠·강민숙 씨의 ‘풀과 나무의 집’은 최신형 내비게이션으로도 정확히 찾지 못하는 오지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노란 단풍잎 사이로 소담스러운 표 씨 부부의 집이 보인다.
    연못.
    표 씨의 작업실.
    지인들이 자비를 들여 세운 시비.
    표 씨가 집(왼쪽)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오른쪽 집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다.




    ▲ 오손도손 글쟁이 부부가 사는 집

    표성흠(65) 씨는 소설가다. 그의 아내 강민숙(63) 씨는 동화작가다.

    글쟁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산 지도 40년 가까이 되었다.

    거창군 거창읍 학산리 구례마을 금귀봉(金貴峰) 기슭에 이들이 사는 집을 남들은 ‘풀과 나무의 집’이라고 부른다.

    집주인은 사람인데 풀과 나무의 집이라고?

    호기심으로 표 씨 부부의 집을 찾아 나섰다.

    거창읍내를 가로질러 도착한 구례마을에서 표성흠 부부댁의 입구는 최첨단 내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는 미로 같은 입구를 따라가야 비로소 나타났다.

    겨우 찾은 집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분명 집인데 대문이 없다. 더 당황스러운 건 풀숲에 가려 집이 보이지 않는다.

    집 입구부터 곳곳에 시비(詩碑)들이 세워져 있고, 숲 속에 놓여 있는 원형 모형의 닭장에서는 금계(金鷄)와 일반 농가에서 키우지 않는 종류의 닭들이 이채롭다.

    이때 보라색 빵모자에 긴 흰 수염을 휘날리며 주인장 표 씨가 등장했다.

    그때야 안심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집 상당수가 덩굴에 덮여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풀과 나무의 집이라고 불리는 글쟁이 부부의 자연 속 집에 도착했다.


    ▲ 필요한 만큼만 집 짓기

    고등학교 때 산청에서 거창고로 유학 온 강민숙 씨는 학교 문학행사 때 초빙된 동문선배인 표성흠 씨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한다.

    지금의 집터에 있던 원두막 한쪽에 흙집을 짓고 신접살림을 차려 아이 둘을 키운다.

    거창에서 몇 년을 지내던 표 씨 부부는 돌연 서울행을 감행한다.

    표 씨는 학교 교사와 여행작가, 기자 등 지금까지 가진 직업이 33개나 된다. 출판사에 취직하고는 처음 맡은 일이 친구 글을 교정하는 것이어서 ‘배알이 꼴린다’고 불과 3시간 만에 직장을 때려치우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현상공모가 있으면 상금을 타기 위해 밤새 글을 써 투고하기도 했지만 성과가 나지 않았다. 소위 빵점 가장이었다.

    그러던 그의 글을 알아봐 주는 곳이 생겨나고 출판한 책들이 인기를 끌면서 인세만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서울 도시민 생활을 누렸다.

    표 씨 부부가 고향마을에 다시 돌아온 것은 지난 1997년.

    표 씨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고향 집에 잠시 내려온 것이 계기가 돼 그대로 주저앉게 됐다.

    당시 인세로 벌었던 꽤 많은 돈으로 과수원이던 옛 집터에 조그마한 통나무집을 짓기로 하고 건축업자에게 맡겼다.

    그러나 건축업자는 H빔과 쇠나무로 기둥만 세워둔 채 부도를 낸 후 잠적해버렸다. 통나무집이 하루아침에 쇠나무집으로 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좁은 공간 절반을 잘라 2층으로 만들고, 다락방을 넣은 것이다. 표 씨는 이곳에서 잠을 자거나 넓은 창을 통해 거창읍내와 한들을 내려다보는 호사를 누린다. 지금은 1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지만 2층 다락방은 그가 가장 아끼는 장소다.

    작업실 한쪽에는 표 씨 부부와 동화작가를 하는 딸 시정 씨의 저서를 한데 모은 가족책장이 있다. 표 씨가 지금까지 출간한 123권의 책 등 3명의 저서를 모두 합하면 220여 권에 달하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실패한 통나무집이지만 표 씨 부부의 집은 필요할 때 조금씩 증축하며 지금의 집으로 변모했다. 어머니가 재래식 화장실 이용이 어렵게 되자 처마를 달아내 방을 만들고 수세식 화장실을 넣었다. 마침 처남이 집을 짓는 데 일가견이 있어 원고료가 들어오면 한 칸씩 집을 짓기 시작해 5년에 걸쳐 화장실 포함해 5채의 각기 다른 공간이 완공됐다.

    그렇게 지은 집은 지금의 표 씨 작업실과 침실, 거실 겸 부엌, 화장실이 됐다. 최근에는 표 씨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는 거창 출신 신중신 씨의 책과 원고를 보관하기 위해 직접 공사를 벌여 미니 도서관을 만들었다. 작년에는 원고료를 타서 태양열을 설치해 난방비도 줄였다.

    표 씨 부부댁의 자랑은 과수원이던 땅을 널찍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잔디를 깔고 연못을 만들어 오리를 키우고 작은 공연장과 도서관, 아이들의 자연학습장까지 만들었다. 올여름에는 지인들이 가져온 땔감 가운데 큰 나무를 골라 혼자 끙끙거리며 아담한 정자도 지었다.


    ▲ 서울이 아니라도 살만하더이다

    표 씨 부부의 집은 계획적으로 전문가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필요로 짓다 보니 지금 곳곳에 비가 새는 등 허점 투성이다.

    이런 표 씨의 집터에 몇 해 전 어울리지 않는 새집이 생겼다.

    이들 부부는 일정한 수입이 없어 부인 강민숙 씨가 집터에 지은 사립문고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한 아이의 아버지가 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다 표 씨의 글을 읽고 마음을 다잡아 의사가 되었다며 찾아왔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묘하게도 표 씨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심근경색으로 생명이 위급한 표 씨를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긴급하게 후송해 살려 놓은 것이다. 이후에도 표 씨 부부댁을 자주 찾던 아이의 아버지는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새집을 지어 준 것이다.

    표 씨 부부의 집은 예술가들과 지인들의 사랑방이다. 정작 주인은 표 씨 부부지만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소에 자비를 들여 시비를 세운다. 벌써 16개나 들어섰다.

    다른 지인들은 주인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조경하기도 한다. 먹을 것도 직접 가지고 와서 해먹기도 한다. 이미 집 일부는 지인들의 것인 양 사용되고 있다.

    이들 부부는 10년 전부터 매달 문화답사를 해오고 있다. 처음 답사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대학에 다니거나 군대에 갔다. 표 씨는 고향에 내려와서 가장 잘한 일로 문화답사를 꼽았다. 이 때문에 표 씨의 집에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곳이다.


    ▲ 풀과 나무의 집 유래

    표 씨 부부의 집주인은 풀과 나무다(?).

    멋지고 뭔가 있을 것 같은 이름 아래에는 풀베기에 지친 표 씨의 게으름이 있다.

    한겨울을 제외하고 풀은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이 자란다. 표 씨도 처음에는 집 공터에 농사를 지었지만 풀이 너무 자라나자 감당을 못하고 그대로 방치했다. 집을 찾은 지인들이 집이 도대체 왜 이러냐고 핀잔을 주자 “우리 집은 풀과 나무가 사는 집이다. 이 집 주인은 풀과 나무다”라고 핑계를 댔다.

    글 쓰는 사람답게 구색도 갖췄다. 풀 초(艸)와 나무 목(木), 사람 인(人)이 한데 어우러져 산다는 의미로 차(茶)자를 써 차 마시고 쉬고 수양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붙여 ‘풀과 나무의 집’으로 당호를 정했다. 풀과 나무의 집이 탄생한 배경이다.

    사실 표 씨의 집은 건축물의 안전성이나 외관상 뛰어난 건축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끊이지 않는 그의 집에는 어릴 적 방 한 칸에 5~6명의 가족이 엉겨붙어 자던 따뜻한 가족 냄새가 나서 편하다.

    표 씨는 말한다. “집이란 신분에 맞게 사는 것이고, 제 편리하고 필요한 대로 살면 된다.”


    글=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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