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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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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41) 서양화가 권영석

굴 껍데기 깔린 거친 캔버스 위에
산이 있고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 기사입력 : 2012-11-1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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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화가 권영석 씨가 자신의 고향인 의령군 의령읍 상신마을에 지은 갤러리에서 뉴욕 진출에 대한 밑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미술에도 사대주의가 있습니다. 지역은 서울의 그림판을 따라가고, 서울은 뉴욕의 그림판을 따라가고, 이런 식이지요. 그러니 서울에서 잘나가는 작가들 뉴욕에 내놓으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왜냐, 우리나라 작가들이 자기들 엇비슷하게 따라한 걸 그들도 알거든요. 식상하지요. 식상함에서 벗어나려면 그들이 모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말곤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지요.”

    의령 소읍에서 뉴욕 미술계를 뒤흔들 원대한 꿈을 꾸는 권영석 작가. 그 당찬 포부를 들어보고자, 그의 17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의령군으로 찾아가봤다.

    ▲섬세한 질감의 비밀은 굴 껍데기

    갤러리에 들어서서 그림을 대면하는 순간 ‘실물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스친다. 도록에 수록된 사진이 완벽하게 담을 수 없는 느낌이 그의 그림에는 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작품의 면면은 더욱 돋보인다. 그 느낌을 뿜어내는 요체는 공교롭게도 굴 껍데기이다. 서양화에 난데없는 굴 껍데기라니? 권 작가는 맨들맨들한 캔버스가 아닌 굴 껍데기를 빻고 갈아 캔버스 위에 접합시킨 거칠거칠한 면 위에 그림을 그린다. 일정한 힘에 의해 깨끗하게 정제된 듯한 굴 껍데기의 섬세한 질감과 안정된 색감이 묘한 편안함을 준다. 그는 제1회 개인전을 가진 1990년부터 굴 껍데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남해안에 접한 중등학교에서 여러 해 교편을 잡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사는 바다가 되었다.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달빛 아래 하얗게 빛을 내는 무언가가 보였어요. 그 빛이 굴 껍데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이리저리 작품에 접목시킬 연구를 했지요.”

    ▲평생 버리지 못할 그만의 소재

    ‘질료와 싸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건축현장을 방불케 하는 그의 작업실을 직접 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말이다. 진흙탕 묻은 지저분한 굴을 씻어 일일이 바순 후 그라인딩 작업을 통해 여러 크기의 입자로 만드는 팍팍한 작업을, 그는 오랜 시간을 들여 홀로 해낸다. 이러한 공정을 거친 굴 껍데기는 아교로 캔버스에 붙여져 아크릴과 먹으로 채색된다. 500호가량의 대작을 할라치면, 희뿌연 가루가 풀풀 날리는 작업실 안에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중노동 아닌 중노동을 해야 한다. 이런 지난한 사투 끝에, 굴이 담기는 일회용 용기에 불과했던 굴 껍데기는 종이처럼 숨을 죽이며 권 작가에게 굴복해 값진 재료로 재탄생한다. “남해 미조, 설천, 석포, 곤양 등지를 방학만 되면 돌아다닙니다. 학기 중엔 움직일 수 없으니 작업량을 방학 동안에 확보하지요. 몇 포대씩 차에 한가득 싣고 옵니다.” 신기하게도, 그의 작품은 20년이 넘어도 변함이 없다. 아크릴과 아교, 굴 껍데기 모두가 산성을 띠며 통일된 조합으로 단단한 물성을 오래 유지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턴 그림 전체에서 풍겨오는 콘크리트 같은 투박함을 누그러뜨리고자 한지를 개어서 함께 접합한다. 오랫동안 그의 작업을 지켜본 정문현 전 경상대학교 교수는 “평생 굴 껍데기를 버리지 마라. 분명히 그 진가를 알아주는 날이 온다”며 제자를 응원했다. 권 작가는 한날 한시도 스승의 말을 잊은 적이 없단다. 그의 강인한 지구력은 스승의 무한한 믿음과 응원에서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위를 버리자 그림이 됐다

    질료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림의 소재로 넘어갔다. 화가들에게 가장 외람되고도 난감한 질문이라 할 수 있는 ‘대체 무엇을 그린 그림입니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의 작업실이 자리한 의령읍 상신마을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몇 장 보여준다. “제 그림이 추상화처럼 보이죠? 하지만 엄연히 구상입니다. 자연에서 보고 느낀 어떤 형체와 형체에 깃든 생명력까지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 장면을 옮기는 과정에서 표상보다 본질을, 형식보다 내용을 표현의 문제로 삼기에 추상적으로 보일 뿐이지요. 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산이 있고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답니다.” 그는 ‘작위를 버리자 그림이 되더라’는 선문답 같은 말도 덧붙인다. “조형적으로 예쁘게 나타내려고 애를 많이 썼죠. 그런데 그렇게 그린 그림은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건 그리는 게 아니라 꾸미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작업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뭘 그려야지, 이렇게 그려야지, 저렇게 그려야지 하는 욕심 자체를 놓아버렸지요. 그러자 어느 순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이 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작업한 그림이 진짜였습니다. 색감도 검정과 회색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빨강, 파랑, 노랑 등으로 다양해졌지요. 이 모든 것이 제 삶의 흔적이라 생각해 매회 개인전의 타이틀을 ‘生’이라 붙였지요.”

    ▲고향집 앞에 갤러리를 짓다

    그의 17번째 개인전이 열린 갤러리는 권 작가가 나고 자란 상신마을 고향집 앞에 자리잡은 그의 소유다. 이제 나이 50을 바라보는 현역 작가가 개인 갤러리를 가진다는 것은 한국 미술계에서도 매우 드문 일. 264㎡(80평) 정도의 적지 않은 공간에 높은 천장이 시원하게 뚫려 있는 갤러리의 이름은 ‘유앤아이 아트스페이스’. 2년 전 방학을 포함한 4개월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직접 지은 갤러리다. “절친한 형님과 둘이서 일했습니다. 바닥도 직접 깔고 조명도 달고요. 매일같이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일했지요. 돈이 떨어져 손을 놓기 직전에 작품이 팔려 자재를 사고 또 돈이 떨어지면 작품을 팔고 하는 식으로 지었어요. 막막했는데, 그럴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들, 주변 사람들 덕에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일어납니다. 특히 김상규, 정형주 친구는 심적으로 물적으로 작품활동을 많이 도왔습니다.” 갤러리는 전시가 있는 동안은 전시회장이 되고, 평소에는 작업실이 된다. 그는 조명 아래서 작업하기를 즐긴다. “조명이 주는 나름의 정취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완성에 영향을 미치지요.” 과연, 그의 말은 직접 작품을 보는 순간 알게 된다. 조명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굴 껍데기의 거칠지만 섬세한 질감이 드리우는 그림자도 작품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뉴욕의 문, 적어도 세 번은 두드려야

    그는 서양화를 그리는 사람임에도 선비같이 꼿꼿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다고 차갑지는 않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말미에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세파에 휩쓸려 다니지 말고 자신의 작업에 성스럽게 임해야 한다’는 일침을 놓는다. “게을러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자리에 있되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가 예술가지요. 그러려면 많이 외롭고 괴로워야 합니다.” 그는 현재 진주 봉원중학교에 재직 중이다. 새벽 3~4시에 일어나 작업실에서 한창 작업하다 동트는 것을 보고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새벽녘의 고요한 시간들이 그의 내면에 쌓이고 쌓여 영롱한 진주를 품듯 그는 다시 변화하고 있다. “내년엔 휴직계를 내고 뉴욕을 갈 계획입니다. 거기서 작업을 하고 발표도 하려고 합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또 어떤 영감이 저를 변화시킬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도전할 생각입니다. 적어도 3번은 도전해봐야지 않을까요. 제가 고군분투해 온 결과물이 그들에게 뭔가 새로운 것이라면, 그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고 오렵니다.”

    글=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권영석= 1964년 의령 출생, 경상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대한민국미술대전 3회 특선 및 9회 입선, 성산미술대전 대상, 개인전 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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