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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23) 송창우 시인이 찾은 통영

예술인들의 혼과 로맨스 품은 그리운 바다

  • 기사입력 : 2012-11-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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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망산에서 바라본 통영의 풍경. 통영은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예술인을 배출한 예향이다.
     
    조선 초기인 1604년 건립된 세병관.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모신 충렬사.
    해와 달을 품었다는 명정샘.
    싱싱한 해물이 풍부한 통영 활어시장.
    강구안에서 바라본 동피랑.
    벽화로 널리 알려진 동피랑.





    고성 지나 학섬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 뽑아 물고 통영 간다.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이 나고 자란 곳. 백석은 백석대로 명정골 처자와, 청마는 청마대로 시조시인 이영도와 아쉽고 그리운 로맨스를 만들던 곳. 천재 화가 이중섭이 그림 그릴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지는 해처럼 붉은 혼을 불사르던 곳. 그리고 백석의 표현대로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통영 사람들은 통영을 토영이라 부른다. 윤이상도 그랬고 박경리도 그랬다. 통영에 가시려거든 받침소리 이응일랑 푸른 바다 속에 던져버리자. 그리고 토영이라 부르면 밥상 위에 곰삭은 젓갈 하나가 더 올라오는 곳. 이런 비밀을 아는 나그네라면 이응받침으로 볼락젓을 바꿔먹고, 싱싱한 물고기 몇 마리를 덤으로 얻을 수도 있으리라.

    늦가을의 강구안엔 생선 마르는 냄새가 자욱했다. 그물망 위에 줄줄이 누워 햇볕에 말라가고 있는 가오리의 얼굴들은 통영오광대의 할미탈을 닮았다. 움푹 파인 눈에 양볼을 따라 줄줄이 난 주름살들. 오물오물한 입. 가오리의 얼굴에는 중앙시장에 좌판을 펼쳐놓고 일생을 물고기 배따는 일로 보낸 통영 할매들의 얼굴이 있다. 짭조름하게 간이 배인 채 말라가는 땀과 눈물과 웃음이 있다. 통영의 물고기가 맛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통새미 골목을 지나 소라고둥 같은 동피랑 길을 오른다. 나선형의 길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동피랑은 산비탈의 오래된 달동네다. 그래서 앞집이 뒷집의 창을 가리지 않는다.동피랑의 작은 집들은 바다로 향한 창을 하나씩 달고 있다. 그 창으로 달이 지고 해가 뜬다. 창을 열면 갯내음이 훅 들어오고 창을 닫으면 뱃고동 소리가 창을 두드린다. 그리고 다시 저녁이 오면 그리운 사람들을 기다리며 창들마다 별 하나씩이 뜬다.

    옛날 통새미 우물물을 지고 오르던 지난한 삶의 언덕배기는 근래에 들어 벽화로 유명해졌다. 벽화는 좁다란 골목 벽에도 있고, 대문에도 있고, 지붕에도 있고, 지붕 위에 덩그러니 놓인 물탱크에도 있다. 아니 마당가에 내어놓은 세간들도 다 벽화의 일부처럼 보인다. 부엌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도, 대문가 빼곡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강아지들도 다 그림 속의 풍경 같다. 그런 동피랑 꼭대기 집에서 만난 할머니는 여든 살이신데,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50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젠 한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엄두가 나지 않아서 온종일을 집에 머물러 산다. 통영에 살아도 못 견디게 통영 바다가 그리운 할머니다.

    동피랑을 내려와 홀로 거리를 지키고 선 벅수를 지나 세병관(洗兵館)으로 간다. 국보 제305호인 세병관은 통영의 중심이다. 세병관이란 이름은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에서 따온 것인데,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와 갑옷과 칼을 씻는다’는 뜻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계를 염원하던 조선 수군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1604년에 세워진 세병관은 우리나라 옛 건물들 중에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가장 큰 건물이다. 아름다운 단청으로 채색된 거대한 지붕을 받치고 있는 50여 개의 민흘림기둥들은 한 아름에 다 안을 수도 없을 만큼 장대하다.

    세병관의 붉은 기둥들 사이로 충무교회의 두 첨탑이 모인다. 그 옆으로 경쟁하듯 충무탕의 굴뚝이 하나 솟아있다. 그 아래가 청마거리다. 이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중앙동우체국이 나온다. 바람난 시인이 우체국 맞은편 2층에 살았다는 이영도 시인에게 날마다 사랑의 편지를 부치던 곳이다.

    우체국 정문 옆에는 청마의 시 ‘행복’이 새겨져 있고 그 옆에 붉은 우체통이 서 있다. 그러고 보니 편지를 부쳐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편지를 받아본 지는 더 오래되었다. 내게도 청마처럼 숨겨둔 애인 하나가 있었더라면, 그러면 긴긴 연서 한 통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숨겨둔 애인이 없다. 마음속 어디 그리움은 있는 것 같은데 그리움의 주인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창동 1길, 2길, 3길, 4길 그 미로 같은 비탈길들을 다 헤매봤지만 역시 애인은 없었다. 다만 어느 골목길 끝에서 쓰러져 가는 집과 마당을 가득 채운 에메랄드빛 하늘만 보았다.

    발걸음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통영의 언덕배기 끝 명정골이다. 통영의 진산 여황산이 판데목 바다로 한쪽 어깨를 늘어뜨린 곳. 명정골엔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모신 충렬사가 있고, 잎사귀마다 바다가 들앉은 동백나무가 있고, 하늘을 품은 새미가 있고, 시인 백석의 쓸쓸한 사랑 얘기가 있다.

    명정골은 충렬사 돌계단 아래에 있는 명정샘에서 온 이름이다. 해를 품는 일정과 달을 품는 월정 두 새미가 있어 이를 합쳐 명정(明井)이라 불렀다. 전설에는 한 새미만 팠을 땐 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한 새미를 더 파니 양쪽 모두에서 맑은 물이 솟았다고 한다. 아마도 새미 옆 서피랑의 언덕배기에 하나 둘 집들이 서고, 해무 낀 아침마다 통영의 사람들이 새로 태어난 것은 그런 음양의 조화가 깃들었던 까닭이리라. 명정골 옆 서문 고갯마루에 살았던 박경리는 ‘김약국의 딸들’에서 이 새미의 풍경을 이렇게 그려 놓았다.

    “충렬사에 이르는 길 양켠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아지랑이도 감도는 봄날 핏빛 같은 꽃을 피운다. 그 길 연변에 명정골 우물이 부부처럼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음력 이월 풍신제를 올릴 무렵이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 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

    그 젊은 처녀들 중에는 백석의 첫사랑 박경련도 있었으리라. 1935년 유월 어느 날, 당시 조선일보 기자로 있던 백석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통영 처녀 박경련을 만났다. 그 뒤로 그리운 병을 앓게 된 백석은 그녀를 만나러 통영을 세 번이나 오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얼마 뒤 사랑했던 여인은 가장 친했던 벗에게 시집을 가고 시인 백석에겐 외롭고 높고 쓸쓸한 흰 바람벽만 남았다.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 ●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백석, <통영 2>중에서



    시인 백석이 그리운 사람은 만나지도 못하고 쓸쓸히 앉아 있었던 충렬사 돌계단에 나도 웅크리고 앉아 본다. 해는 저물어가고 바람은 쌀쌀하다. 문득 쌀쌀함과 쓸쓸함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충렬사 오래된 동백나무에서 하나 둘 동백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겨울이다.

    /글·사진=송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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