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박흥석 마산 영신원 부원장

그의 이름은 ‘아버지’… 아들딸은 외로운 아이들
1959년 초등 2학년 때 부친이 고아원 설립
총무 맡아 20년간 1000여명의 아이들과 생활

  • 기사입력 : 2012-11-27 01:00:00
  •   
  •  
    소외된 이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는 박흥석 부원장. 그가 원생들의 공부방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박흥석 영신원 부원장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원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박 부원장의 사무실에는 어머니 조점이 여사의 사진이 걸려있다.


    6·25전쟁은 대한민국을 폐허로 만들었고, 수많은 고아(孤兒)를 낳았다. 전쟁이 끝난 대한민국 길거리 곳곳에는 파괴된 건물 사이사이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만들어낸 공명으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전투 중에, 피란 중에 부모와 가족이 사망한 아이들이 모여든 전국의 고아원은 벼랑끝에 서서 실낱같은 삶을 갈구하는 애처로운 아이들의 집합소였다.

    1951년 ‘전쟁 베이비’로 태어나, 전란 이후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다, 중년의 나이에는 복지시스템의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의 아버지로 활동하고 있는 아동복지 실천가 박흥석(62) 마산 영신원 부원장을 최근 만났다. 박흥석 부원장은 올해 1월 31일 열린 경남사회복지협의회 정기총회 보궐선거에서 제13대 회장에 투표로 당선돼, 복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자 출신이 경남의 사회복지를 아우르는 단체의 수장이 되는 이례적인 사례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 부원장으로부터 어린 시절 자신이 목격했던 고아들의 힘겨운 실상 등 사회복지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고아들과 한솥밥 먹으며 고아처럼 자라다

    박흥석 원장은 전쟁고아와 빈곤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부친이 마산시 대내동에 만든 고아원인 ‘마산 영신보육원(지금의 영신원)’이라는 곳에서 평생 ‘외로운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마산 영신보육원은 지난 1959년 3월 1일 마산시립보육원 김소득 원장이 박 부원장의 부친인 박기창(1995년 12월 작고) 선생에게 설립을 제안하면서 생겨났다. 시립보육원 형태로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 줄 수 없고, 재단법인 형태로 운영하면 외국의 많은 보조를 받아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김소득 원장의 제안을 당시 사업가였던 박기창 선생과 어머니 조점이 (2002년 6월 작고) 여사가 3년간 고민하다 전격 수용한 것이다.

    설립 초기 마산 영신보육원에는 6·25전쟁 중 1·4후퇴 때 미군정에 의해 서울에서 보내진 아이 36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때 마산 지역에는 인애원(설립자 조수옥), 신생원(설립자 김영호), 백양원(설립자 정도금) 등 12개의 고아원이 있었고 시설당 60명 정도가 수용돼 있었다.

    부친이 고아원을 설립할 때 박 부원장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하지만 박 부원장은 초등 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전국 각지서 수용된 아이들과 고아원에서 함께 숙식하며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오전 6시 30분 고아원에 새벽종이 올리면 예외없이 마당에 집합했고, 예배를 본 후 집단체조와 공동 식사시간에도 참여해야 했다. 아침 집합시간과 식사시간에 늦게 나가면 벌까지 섰다. 고아원 아이들과 자식을 똑같이 키우려는 아버지의 엄한 공동체 교육관 앞에서 초등생 아들의 어리광은 통하지 않았다.

    고아원 식당 조리사 아주머니들이 지어주는 보리밥과 입에 맞지 않는 반찬은 어머니가 예전에 차려주는 쌀밥과 고깃국을 더욱 그립게 했지만, 원장의 아들이라고 ‘특혜’를 누리는 것은 생각지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중학교 때는 원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자 자신도 한 번도 못 갔다. 고교 1학년 때 원생들과 수학여행을 한 번 가보고, 2~3학년 때는 경비가 없어 또 불참했다. 공동체 교육을 강조했던 부친이 원생들을 두고 아들 혼자 수학여행 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박 부원장은 “어쩌면 저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아버지의 시설운영 철학을 보여주기 위한 공동체의 희생양이 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하지만 부지런한 원생들과 친구들을 보면서 나 자신도 자극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로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다

    박 부원장은 고아 친구들과 함께 유년기·청소년기까지 보낸 뒤 1976년부터 1995년까지 20년간 영신보육원의 1000여 명에 달하는 아이들과 동고동락했다.

    그 기간 동안 부친으로부터 공동체 생활과 공동체 교육의 중요성을, 어머니로부터는 무한한 사랑의 헌신적 실천을 몸소 배웠다.

    이후 박 부원장은 1996년부터 16년째 마산종합사회복지관장을 맡으면서 아동복지뿐만 아니라 노인·여성·다문화가정 등 종합복지서비스를 펼치는 책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영신보육원 총무 20년, 마산종합사회복지관장 겸 영신원 부원장 16년의 세월은 박 부원장의 복지안목을 이미 국가 정책입안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지역사회 선배 복지사로서 후배들을 챙기는 위치에까지 오게 했다.

    영신원 박년자 원장과 박 부원장 자신의 시설운영·복지실천 철학인 ‘지역주민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복지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걸고, 클라이언트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복지대상자의 경제적 빈곤예방과 자활능력 배양, 더불어 함께하는 지역주민 협력의식 고취, 사랑나눔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젊은시절부터 노력해 왔고, 지금은 경남복지계의 책임있는 선배로서 후배들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경남대, 창원대, 창원전문대(지금 문성대학), 창신대 등지서 지난 15년간 겸임교수를 맡을 때는 후배들에게 사회복지 실천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밤늦도록 강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아동·청소년과 가족관계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인터넷·게임 중독, 음란물 범람, 스마트폰 중독 등 현대 사회문제와 그 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학교·사회교육기관을 찾아가는 상담사들에게 혼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주문하는 등 선배 사회복지사로서 지역사회 문제의 상담과 진단,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아원에서 아동양육시설로 변모한 영신원의 53년을 목격한 박 부원장은 지금 양육받는 아이들의 ‘임시 아버지’로서 소홀함이 없도록 늘 겸손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예전의 전쟁과 빈곤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는 달리, 1997년 IMF 이후 경제적 문제로 실직, 도산, 압류, 그로 인한 도망으로 부모들과 헤어져 살기 때문에 부모를 만나고 싶은 애틋함이 더 큰 아이들에게 더 부드럽게, 더 낮게, 더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래서 박 부원장은 아버지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많은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적 욕구와 불만을 찾아 마산종합사회복지관 프로그램으로 연결시키고, 가족 문제에 대한 진단과 서비스 프로그램을 연계해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영신원 아이들은 모두 소중한 나의 아들과 딸”이라는 박 부원장은 “우리 사회의 미래자원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 용기를 심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더 큰 복지경남을 위해 향해사가 되다

    박 부원장은, 도내 사회복지에는 아동, 여성, 장애인 등 사회복지에 관계되는 직능별 단체의 역할과 조직의 협력관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지역복지를 위해 협력하고 단합해서 한목소리를 내고, 함께하려는 협력체계 구축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노력의 결과물은 결국 ‘지역 행복지수의 향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박 부원장은 경남복지의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올 초 경남사회복지협의회 회장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출사표를 내면서 경남복지기금 조성과 복지사의 근무여건 개선, 복지장학금 지급, 경남사회복지센터 설립, 찾아가는 복지경영컨설팅 서비스 제공, 복지인재은행 구축,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시민 복지교육 강좌개설, 복지인의 처우와 위상강화, 해외 복지시설과 자매결연 활성화, 1사1시설 상생협력 강화를 주창했다.

    당선 이후 경남복지계의 30년 숙원사업이었던 경남사회복지센터를 최재호 전 회장이 예산을 확보한 데 이어, 실제 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 부원장은 언론을 통해 복지기관의 비윤리적 뉴스가 터져나올 때 맥이 빠진다고 실토한다.

    전체 사회복지 시설·기관들이 정말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고 있는데, 몇 년에 한 번씩 터지는 ‘미꾸라지 법인’의 과오로 인해 전체 사회복지사와 시설들이 매도당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박 부원장은 “우리 복지사들과 법인들은 지역사회로부터 주어진 과제를 묵묵히 풀어나가야 하고,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며, 지역주민을 섬기는 마음을 가지면 순간순간 찾아오는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초심을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행·불행의 담장 위를 걷고 있는 클라이언트들이 전문적인 사회복지사의 상담과 치료, 문제해결로 행복이라는 울타리로 들어올 때 느끼는 희열은 어느 직종도 가질 수 없는 복지사들만의 특권이라고 박 부원장은 설명한다. 그래서 사회가 어려울 때 복지사들이 협력하고 노력해서 춥고, 소외되고, 병들어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대상자들을 찾아내 이들의 삶의 행복을 지켜주는 게 곧 우리의 행복이라 여기면서 이 일에 매진하자고 후배들에게 강조했다.

    박 부원장은 취재 말미에 연말연시를 맞아 우리 사회에 한마디 던지고 싶다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은 정부가 지원해주는 예산만으로는 운영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아동·노인·장애인 등 추운 동절기 시설 생활자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각계 여러분들의 지지와 도움을 진심으로 간청드립니다”.

    글=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 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조윤제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