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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24) 배한봉 시인이 찾은 김해 장유폭포와 장유사

가을 끝자락 단풍계곡에 서성거리는 겨울

  • 기사입력 : 2012-11-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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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시 장유면 대청계곡에 있는 장유폭포. 산비탈 나무들이 마지막 단풍의 불길을 활활 태우고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입증하는 절로 잘 알려져 있는 장유사. 장유사를 둘러싼 깡마른 겨울나무는 산문을 닫아걸고 화두에 몰입한 선승 같다.
    장유화상 사리탑과 장유사 대웅전 용머리 사이로 보이는 장유 신도시 풍경.





    가을 끝자락, 김해시 장유면 대청계곡은 단풍옷을 홀딱 벗기 직전이다. 계곡입구에 들어서자 산비탈 나무들이 마지막 단풍의 불길을 활활 태우고 있다.

    뭐든 한창때도 대단하지만 마지막 판은 정말 겁나게 무서운 법. 단풍도 그렇다. 신현정 시인이 “지나가는 누구들이 무수히 입을 맞추고 가지 않은 다음에야/ 저리 황홀해 할 수가 있겠는가/ 숨이 막히도록 퍼붓는/ 입맞춤에 입맞춤에/ 혼절, 혼절, 또 혼절.”(‘야 단풍이다’)이라고 노래했던 딱 그대로다. 숨 막히는 그 단풍 불길 속에서 장유폭포 시린 물소리가 성큼 여행객을 마중 나온다. 냉기가 팍팍 밀려온다. 아무도 없다. 여름 내내 물가 나무그늘을 따라 돗자리를 깔고 텐트를 친 피서객들로 가득했던 곳. 폭포 물소리만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장유폭포는 모더니스트에서 참여 시인으로 변모한 김수영이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폭포’)고 했던 의미를 알려주는 것 같다.

    김수영은 폭포를 소시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선구자적 인물로 비유하고 있다. 부정적 현실과 타협해 안주하려는 삶의 태도를 비판하는 “고매한 정신”이 바로 폭포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폭포를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으로 비유한 이형기는 폭포의 모습을 통해 현실적 고통에 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이형기, ‘폭포’ 부분

    평범한 서민인 우리 삶은 자주 쓸쓸하고 아프고 괴롭고 적막해진다. 삶은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래는 오리무중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벌어진 틈은 자꾸 넓어진다. 기댈 데가 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폭포를 통해 삶을 재발견하고, 또 삶의 출구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나는 폭포 물소리 뒤로하고 산길을 오른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파고든다. 이 길은 장유사(長遊寺) 가는 길. 장유사까지는 십 리가 조금 넘는다.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외길. 도로 폭은 자동차 한 대가 지나다닐 정도로 좁지만 포장이 되어 있고 제법 경사가 심하다. 길은 오를수록 점점 만산홍엽이었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많은 낙엽을 안고 있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자들은 대체로 삶을 돌아보고 지난 일을 반추하는 사람들이다. 몇 걸음 앞서 걸어가는 저 중년의 여행객 두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나는 잠시 센티멘털한 기분을 느낀다. 태양과 바람과 구름을 삼키고 장렬히 온몸을 투신하는 나뭇잎들 때문에 땅 속 어둠 빨아들이며 죽지 않는 나무뿌리. 죽지 않는 뿌리 때문에 매년 나고 죽는 나뭇잎들. 바람에 쓸려 길가에 모인 낙엽을 밟아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구르몽의 시 구절을 불러온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덧없이 버림을 받고 땅위에 있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녘 낙엽 모습은 쓸쓸하다

    바람에 불려 흩어질 때

    낙엽은 상냥스레 외친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그리하여 바람이 몸에 스며든다

    -Remy de Gourmont, ‘낙엽’ 부분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이 구절이 좋아 중고등학교 때 노트 뒷장에 옮겨 적고 삽화를 그려 넣곤 했었지. 어느새 나는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부풀어 낭만적 애수에 젖던 소년시절로 돌아가 있다. 낙엽을 보며 인생을 관조했던 시적 의미를 감상적으로 이해했던 소년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참 올라가며 돌아보니 길은 거대한 뱀 같다. 낙엽 진 산꼭대기로 꿈틀대며 올라가는 거대한 뱀. 아니다. 이 길은 법계(法界)로 가는 길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길이다. 맞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을 들려주는 길이다. 고통과 괴로움, 쓸쓸함까지 벗어놓고 가는 길이다.

    장유사에 도착하자 만산홍엽의 시간은 깡마른 알몸으로 서 있다. 탈골의 나무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대청계곡 입구 장유폭포에서 보았던 단풍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여러 새가 울었단다/ 여러 산을 넘었단다/ 저승까지 갔다가 돌아왔단다”(‘단풍놀이’)고 했던 서정춘 시인이 이 풍경을 봤다면 어떤 짧은 명편 하나를 뽑아냈을까. 장유폭포의 단풍이 장유사의 단청빛깔 같다면 깡마른 나무들은 산문을 닫아걸고 공안(公案)에 몰입하고 있는 선승 같은 느낌이다.

    장유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입증하는 절로 잘 알려져 있다.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長遊和尙)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씨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세웠다고 한다. 절 뒤에 장유화상사리탑(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1호)과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駕洛國師長遊和尙紀蹟碑)가 나란히 있다.

    사리탑에 경배를 하고 돌아서서 하늘을 본다. 흰 구름 몇 점이 흘러갈 뿐 새파랗다. 새파란 하늘 아래 대웅전 지붕의 긴 용마루 끝에 얹힌 용이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만 같다. 사리탑과 대웅전 지붕 사이로 보이는 첩첩 산 능선 겹쳐진 골짜기도 승천할 것만 같다. 그 너머 아스라이 장유 신도시가 보인다.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코앞에 성큼, 서성거리는 겨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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