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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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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직은 외롭고 먼- 이고운(수필가)

  • 기사입력 : 2012-12-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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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역, 혼자 이사를 왔다. 빚진 것도 없는데 야반도주하듯 서둘러 왔다. 사라졌던 옛 진주객사가 진주역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보기엔 웅장하고 뿌듯하다. 하지만 이웃이 없는 외딴곳이라 풀이 붙지 않는다. 완공이 다 된 것도 아닌데 가라니까 왔다. 방송매체로야 좀 알리긴 했지만, 열차랑 친한 사람들 귀에라도 들릴 만큼 기적이라도 길게 몇 번 울리고 왔어야 했다.

    이사 온 날, 옛집을 찾았다가 길을 몰라 택시를 탔다고 화를 벌컥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작, 미안한 일을 예로 들면, 저쪽 동진주 월아산 밑에 산다는 금산댁이다. 늘 양쪽 손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순천행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단골네다. 새 집 큰 기둥을 잡고 경험담을 하소연한다. 이사 온 지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며칠 전, 금산댁이 아침 6시 30분에 시내버스를 탔다. 8시 50분 순천행 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동진주에서 진주역으로 가려면 초전에서 직행하는 버스가 있다지만, 대체로 몇 번 환승을 해야 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에 시간 넉넉히 집을 나섰다.

    “진주역으로 가려면 여기서 몇 번을 타야 합니까?”

    “이 차 뒤에 따라오는 차가 바로 가요.”

    초전에서 내려 뒤차를 타면서 기사님에게 진주역으로 가느냐고 확인했다.

    “예, 갑니다.”

    그런데 차는 서진주로 달렸다. 역은 남진주에 있다는데, 기사님에게 물었다. “어? 헌 역? 새 역?……” 기사님는 역이 이사 간 생각을 미처 못 했다고 했다. 어디로 전화를 걸어 역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내고서야 여고 앞에 내려주었다. 건너가서 타면 바로 간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화를 참으며 일러주는 번호를 탔다. 그런데 차창에 서북쪽 풍경이 자꾸 지나갔다. 기사님에게 또 물었다. 아침 등굣길이라 학생들을 싣고 학교로 바로 가야 하기 때문에 진주역에는 못 간다고 했다. 차는 숫골로 나동으로 논밭을 지나 뱅뱅 돌아갔다. 역으로 가도록 정해져 있는 버스였는데 등교시간이라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경상대학 앞에서 또 갈아탔다. 결국 8시 45분에 새 역에 도착했다. 제대로 갔으면 불과 30여 분밖에 안 걸렸을 거리를, 돌아 돌아 두 시간이나 걸렸다. 아, 머나먼 진주역이었다. 열차는 출발 5분 전, 화가 나고 몸은 지치고 시간은 아슬아슬했다.

    아침에 혼이 났으면서도 오후에 금산댁은 순천에서 진주행 5시 20분 열차를 탔다. 아무래도 버스보다 아늑하고 편안한 열차의 매력에 끌려서다. 차창 밖 풍경 감상도 버스와는 영 다른 이미지가 좋아서다. 책이나 신문을 읽기에도 좀 좋은가. 또 자주 다녀야 시내 지름길을 익힐 것이었다. 진주역에 내렸다.

    근데 저 금산댁이 어떻게 가지? 아직 정비가 안 된 컴컴한 정류소에 차가운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금산까지 바로 가는 차가 없어 몇 번은 환승해야 될 거라고 택시 기사가 눈치를 살핀다. 빤히 보이는 산모롱이 하나를 돌아 내려야 하는 환승 대신 특별 무료셔틀 버스라도 있으면 모를까, 뭣 땜에 시간 낭비 돈 낭비에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듣고 보니 할 말이 없다.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다. 곧 KTX가 들어와 진주라 천리길을 서울로 쌩쌩 실어 날라야 하는데 어디에서 환승, 또 환승해야 새 역으로 가는지 진주시내 사람들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마냥 외롭고 멀기만 하겠는가.

    허허벌판, 아직은 이웃도 없다. 사람이나 역이나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순전히 타의적인 존재 아닌가. 승객이 없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역사책에 있는 옛 객사처럼 머잖아 이 새 터에도 사람들 붐비고, 서울로 호남으로 기적소리 바쁘게 오고가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아직은 텅 빈 역사 앞 광장을 밝히는 외등이 쓸쓸하기만 하다.

    이고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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