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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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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27) 배한봉 시인이 찾은 함안 칠북면 장춘사

오래된 절 약수 한 모금서 느끼는 ‘참사랑’
‘한국 좋은 물 100곳’에 선정된 약수 유명

  • 기사입력 : 2012-12-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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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에 소재한 장춘사. 이 곳에는 ‘한국 좋은 물 100곳’ 중의 하나로 선정된 약수가 있으며, 약수를 마시고 불치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다.
    장춘사 약수의 푸른 이끼가 약수터의 생생력을 보여준다.
    가람 배치에 품격을 더해 주는 무설전 앞 소나무.
    대웅전 앞에 놓인 5층 석탑. 현재 4층만 남아 있다.
    일주문 왼쪽 대나무와 오른쪽 단풍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조사전 옆 돌계단을 올라가면 약사전을 만날 수 있다.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장춘사(長春寺). 절 마당에 들어서자 오로지 적막뿐이다. 목탁소리도 없다. 몇 사람 여행객이 다녀갔지만 내다보는 스님도 없다. 절간 기왓골을 타고 바람소리 물소리만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어쩌다 간간이 울어주는 풍경소리마저 없었다면 이 적막 흩뜨릴까봐 나는 한 발자국 걸음조차 내디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절에는 한국의 좋은 물 100곳(韓國名水百選) 가운데 하나인 약수가 있다. 1987년 한국자연보호협회 등이 선정했다. 장춘사 약수를 먹고 불치의 병이 나았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데 인근 창원이나 김해에서는 의외로 이 약수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장춘사가 인근 도시에서 채 1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시끌벅적하지 않은 이유이다.

    장춘사 약수의 효험에 관한 이야기는 까마득한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흥덕왕 때의 고승인 무염국사(無染國師, 801~888)와 그의 제자 덕원스님에 대한 전설이 그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스토리텔링이 아주 잘돼 있다. 스토리텔링은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구연동화도 스토리텔링의 하나다.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흥미를 가질 만한 재미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곧 스토리텔링이다.

    스무 살 제자 덕원스님은 극심한 등창과 위염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무슨 약을 써도 낫지 않았다. 쾌유를 기도하던 스승 무염국사는 병마에 시달리는 젊디젊은 애제자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때 새 한 마리가 유난히 맑은 음색으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새가 지저귀는 곳으로 가보니 땅에 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무염국사가 그곳을 지팡이로 찔러보니 샘물이 솟았다. 그 샘물을 덕원스님에게 먹이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

    제자를 아끼는 스승의 극진한 마음이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전설을 완성했을 것이다. 물은 생명과 등가를 이룬다. 불가에서는 모든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사대(四大·地水火風) 가운데 하나로 물을 꼽는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우리 몸의 80~90%를 차지하고 있는 물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오늘날에도 그 효험을 좇아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의 약수터를 찾고 있다. 1000년도 한참 더 지난 이야기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으니 장춘사 약수 이야기는 성공한 스토리텔링이 분명하다.

    신라 고찰 장춘사는 568m의 무릉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산 아래 입구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5리쯤 올라가야 한다. 이 산길을 오를 때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좁은 자동차길이 나 있지만 설렁설렁 휘적휘적, 오솔길 낙엽을 밟으며, 산비탈의 나무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산 능선과, 하늘을 보며 걷는 재미는 도시의 길을 걷는 것과는 다른 쏠쏠함이 있다.

    쉬엄쉬엄 1시간쯤 걸어 올라가면 대숲길이 나오고, 뒤이어 한자로 무릉산 장춘사(武陵山長春寺)라고 쓴 편액(扁額) 걸린 자그마한 일주문이 여행객을 맞는다. 일주문 왼쪽에는 대나무가 푸른 댓잎 소리로 귀를 씻어주며 서 있고, 오른쪽에는 소설 대설 다 지난 겨울인데도 단풍나무가 여전히 붉은 단풍손을 흔들고 있다. 나무문짝에는 사천왕 그림이 있다. 나무문을 보자 문득 당시기사(唐詩紀事)에 실린 가도(賈島)의 퇴고 이야기가 생각난다. 만약 이 문이 닫혀 있다면 나는 밀(推) 것인가 두드릴(敲) 것인가. 微微笑笑.

    가람에 들어서면 팔작지붕 건물인 대웅전(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6호)을 기준으로 맞은편에 5층 석탑(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68호)과 무설전(無說殿)이 있고, 왼쪽에 조사전이 있다. 조사전 왼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약사전이 나온다. 약사전 불단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을 모셨다.

    고려 후기의 5층 석탑은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고, 높이는 390cm이다. 탑신의 몸돌은 평면이 모두 사다리꼴이 되도록 윗면의 폭을 좁혔다. 이는 층수가 올라감으로써 생기는 상승감에 따른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 수법으로 장춘사 5층 석탑이 가진 특징이다.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멀리서 처마를 보니 마치 기러기가 창공을 날아가는 듯하다. 보름달밤에 보면 가히 절경일 것이다.

    무설전은 종무소와 나란히 붙어있다. 무설(無說)이라는 말은 관세음보살을 이르는 표현이다. 관세음보살은 말씀함이 없이 설하고 남순동자는 들음이 없이 들었다는 경문에서 유래한다. 즉 무설전은 관음전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무설전 앞 한 그루 소나무는 눈 푸른 선승 같다. 말하지 않고 말한다는 무설의 의미가 푸른 소나무 향기로 퍼지고 있다. 문득 일주문의 대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담장에 대를 심어 선가의 푸른 계율을 표현하고, 가람 안뜰에 솔을 심어 말하지 않고 말하는 무설의 선풍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소나무 아래에 돌확이 있고, 약수가 흘러내린다. 무염국사가 제자 덕원스님의 불치병을 낫게 했다는 그 약수를 한 모금 들이켠다. 시원하고 달다.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하기도 하는 소나무 아래서 샘솟는 약수. 지난주 생사를 넘나드는 큰 수술을 받고 병상에서 금식 중인 어머니도 어서 이 물 드시고 쾌유하시기를! 우리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도 이 물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흘러넘치는 약수를 향해 나는 간절한 마음 담아 합장 반배를 한다.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고요한 밤 산골짜기 집에 말없이 앉고 보니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적적하고 고요한 것이 자연의 본 모습이구나.

    하사서풍동림야(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은 나무숲을 흔드는가?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長天)

    기러기 싸늘히 울며 끝없이 멀고 넓은 하늘 날아가네.



    조사전 주련에 새겨진 선시를 읽는다.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야보도천(冶父道川)의 게송이다. 하고서풍동림야(何故西風動林野)로 된 원문이 이 주련에는 하사서풍동림야로 바뀌어 있다. 적막한 산골짜기 집의 풍경이 흔들리는 나무숲과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로 이어지면서 시의 흐름이 정(靜)에서 동(動)으로 움직여 역동성을 가진다. 존재의 본성을 꿰뚫으려는 선가의 강렬한 기운에 온몸 전율이 인다.

    약사전 벽화는 부모은중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눠 설한 경전이다. 한 폭 한 폭 그림을 둘러보다 울컥 가슴 밑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뜨거움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핵가족화됐고, 독거노인 문제 또한 심각해졌다. 벌써 연말. 이웃을 둘러보고 따뜻한 손길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장춘사를 뒤로하고 산길을 내려오며 수선리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을 생각한다. 물은 온갖 것들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것들과 다투는 일이 없다고 했던 삶의 방식을 마음에 담는다. 뒤돌아본다. 휘어진 길 끝으로 아득한 하늘이 열려 있다. 장춘사 입구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 영동마을에 들어서면 500살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9호)를 만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며 매년 음력 10월에 동제를 지낸다.

    며칠 전에는 첫눈이 내렸고, 곧 동지다. 동지는 작은 설날. 하지만 올해는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동지팥죽을 먹을 수 없다. 오늘 여행을 하며 나는 내내 어머니 생각을 했다.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불효자인 나를 돌아봤다. 겨울이 깊어졌다. 불치병을 낫게 했다는 장춘사 약수 한 통을 품에 안고 어머니 얼굴을 동그랗게 네모지게 그려본 날이었다.

    글·사진= 배한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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