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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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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합천 옥전고분군

잊혀졌던 가야, 묻혀 있던 다라국을 만나다
6가야 외 새 왕국 존재 증명
총 26기서 유물 쏟아져나와

  • 기사입력 : 2012-12-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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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옥전고분군. 고대 가야왕국의 하나였던 다라국의 지배자들이 묻힌 곳이다.
     
    합천박물관



    마음을 비우려는 자 무덤 앞에 서라. 욕심 많은 인생사 내려놓고 싶다면 고분군 앞에 서라. 아옹다옹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세월을 감수해야 한다면 1500년 이상을 거슬러 오르는 거대 고분군의 세월 앞에 내 마음을 맡겨보세.

    미운 놈, 고운 놈, 죽일 놈, 살릴 놈,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약 2000년의 세월 앞에 한갓 한단지몽(邯鄲之夢)처럼 초라하기만 하다. 이처럼 온갖 잡념들이 고분군 앞에서는 모두 지워지고 다양한 생각들로 각색된다.

    이렇게 큰 무덤에 누운 자 누구인가. 무슨 권력으로 어떻게 권세를 휘둘렀는가. 죽음을 왜 맞이했는가. 죽기 전 권력의 삶을 얼마나 부여잡으려 했는가.

    절대권력자의 죽음을 어깨에 메고 고분군을 오르는 백성들은 무슨 생각이었는가. 짚신을 아니면 가죽신발을 신고 상여가 행여 흔들릴까봐 조심조심 긴장 속에 발걸음을 옮기고, 자신들은 한 평의 땅 속에 묻힐지언정 절대권력자의 죽음을 소중히 하며, 또 이어지는 절대권력자의 눈초리 속에 한 발짝 내디뎠으리라.

    동원된 백성들의 어려움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곳이자, 권력도, 부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곳이 바로 고분군이다. 고분군에는 인생의 허망함과 함께 그 흔적들이 서려 있다.

    그래서 그곳에 가고 싶다.

    가야국을 형성했던 경남북은 고분군이 많다. 금관가야의 김해 대성동고분, 아라가야의 함안 도항리고분, 소가야의 고성 송학동고분, 비화가야라 불리는 창녕의 교동고분, 대가야인 경북 고령의 지산동고분 등 무척 많은 고분군이 있다. 모두가 마음을 내려놓으며 둘러볼 만한 곳이다.

    합천의 옥전고분군을 찾았을 때 평일이라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왜 여기에 무덤을 썼을까, 다라국은 어떤 나라인가 등 내력을 알기에 충분했다.

    옥전고분군은 금관가야를 비롯한 6가야에 속해 있지 않은 곳이다. 뒤늦게 가야는 6가야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가야 ‘다라국’이 있었다는 사실이 옥전고분군으로 인해 알려졌다.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옥전고분군에는 26기의 봉분이 남아 있다. 지난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115기의 유구에 대한 발굴조사를 마쳤으며, 발굴조사단은 이곳에 1000여 기의 고분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26기의 봉분만 볼 수 있지만, 인근에 아직 발굴하지 않은 1000여 기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다라국은 서기 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합천에 국가가 형성된 것은 고구려 대군의 침공에 쫓긴 금관가야의 지배집단의 일부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이곳에 정착하면서 다라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옥전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가야사를 새로 연구할 정도로 방대하다.

    특히 M3호분은 고분의 내부가 최대로 크고 부장 유물의 양과 질에서 옥전고분군뿐만 아니라, 전체 가야고분을 대표하는 고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M3호분에서는 용봉문양 2점, 봉황문양 1점, 용문장식 1점 등 장식고리자루 큰칼이 한꺼번에 4자루나 발견되고, 금동장식 투구, 11벌의 갑옷 등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또 옥전고분군은 화려한 장신구로 유명하다. 출토된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가락지 등은 지금까지 조사된 어느 가야고분보다 많은 양일 뿐만 아니라,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세공기술은 당대의 백제나 신라에 비견될 정도의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M2호분에서는 한꺼번에 2000여 개가 넘는 구슬이 발견되기도 했다.

    가장 아픈 현실은 일부 고분에서 일제시대에 도굴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고, 부장품의 일부가 일본 도쿄박물관에서 발견돼 약탈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예산 문제로 1000기가 되는 고분을 발굴하지 못한 채 산속에 내팽개쳐 놓고 있는 사실도 아쉬움을 남긴다.

    옥전고분군 아래에는 합천박물관이 있다. 합천박물관은 사적 제326호로 지정돼 있는 고대 다라국 지배자들의 묘역인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정문에 들어서면 광장 중앙에 있는 분수대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합천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이자 상징물인 옥전 M3호분에서 출토된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의 칼자루를 형상화했다.

    옥전고분군과 합천박물관은 다라국 시대 지배자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시공간을 이동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교육, 탐방, 인격 수양 등 찾는 이의 성격은 다양하지만, 이곳을 찾아 시간여행을 즐기는 인원만 연간 2만3000명에 달하고 있다.

    글·사진= 전강준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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