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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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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수박- 진서윤

  • 기사입력 : 2013-01-0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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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밭에는 여물지 않은 태양들이 숨어있었다.



    햇빛 줄기가 연결된 곳엔 푸르스름한 심장이 떠있고 폭염이 몰려들고 있었다.

    양말 목 풀린 실밥처럼

    몸이 헐 것 같은 날

    거꾸로 자라는 덩굴의 비린 향이 꼼지락거렸다.



    직선의 나이에 곡선의 통증이 붉다

    모래밭 이랑마다 층층이 쌓이는 바람말이를 먹었다

    누군가 손등으로 통통 두드려보고 갔다

    그때 문득, 통증에 씨앗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음(音)은 보이지 않는 발자국처럼 익어가고 서리라는 말을 들으면 붉은 당도(糖度)가 끈적거렸다.



    달의 필라멘트가 끊어진 밤

    고양이가 지나갈 때마다 감지 등(燈)이 켜지고

    닿기만 해도 탁!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만월(滿月)

    수박 속에는 검은 별들이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푸른 굴절무늬로 온몸을 묶어 놓은 여름, 허벅지 아래로 붉은 씨앗 한 점(點) 떨어졌다.

    이후 모든 웃음을

    손으로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들판 너머 여름이 이불 홑청 끝자락처럼 가벼워졌다

    마르지도 젖지도 않은 이파리를 허리에 감고

    수박들이 붉은 속셈으로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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