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우리의 고구려, 지킬 수 있을까?- 이주언(시인)

  • 기사입력 : 2013-01-18 01:00:00
  •   



  • 새해 첫 일요일 아침, ‘피스보트’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가 대담하는 TV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황석영, 중국의 류전원, 일본의 시마다 마사히코, 이렇게 세 작가가 참석하였다.

    일본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는 상당히 신중한 편이었고, 말을 아꼈다.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가해자의 입장이었으므로 더욱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중 인상적인 작가는 중국의 류전원이었다. 그는 신사실주의 소설가라고 했으나 그 대담에서는 상당히 이상주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국적을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정치가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그저 인간과 인간이라는 면에서 진솔하게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류전원은 온순한 아나키스트임과 동시에 평화주의자로 보였다.

    한·중·일 세 나라의 사람들은 과거에 상처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서로를 대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잘 알기 전에는 상대방 국적을 가슴으로 먼저 받아들인다. 류진원은 그런 점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동네에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동네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국적을 의식하며 생활하는 것이 아니며, 방문객들을 인간적으로 반길 것이라 했다. 나도 잠시 그의 말에 매혹당했다. 실제로 우리는 늘 국가를 의식하며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만 한국인이 되고 한국을 지지하고 경쟁국에 대해 날을 세우게 된다. 그러니 일상이 정치적 상황보다 더 중요하고 삶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할 때 그의 말은 옳아 보였다.

    시대와 정치에 대해 민감한 황석영 작가는 현실적이었다. 그는 현재 쟁점화되어 있는 역사왜곡 문제를 짚고 넘어갔다. 특히 중국에서 ‘삼국사기’를 출판하려 했더니 중국 당국에서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그 시대에 한국은 삼국이 아니라 신라와 백제, 두 나라만 있었다는 게 출판거부의 이유였다고 한다. 즉 ‘삼국’이라는 용어 자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참으로 놀랍게 피부에 와 닿았다. 중국 작가 류전원의 말에 꿈처럼 매혹당했다가 찬물을 덮어쓴 듯 정신이 들었다. 물론 류전원 작가의 진솔함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국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 옳기 때문이다. 그러나 옳음만으로 국제관계에서 대처할 수는 없다.

    몇 개월 전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다녀왔는데 이런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 전성기의 유물이 옛 국내성 지역에 산재해 있었다. 고구려를 버젓이 자기네 역사로 만들어서 전면에 부각시키고, 방문객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행을 했지만 어처구니없고 한심하고 답답했다. 만약 북한이 무너지면 역으로, 평양까지도 고구려의 역사이니 자신의 영토라 우기면 어쩌나 싶었다. 국제법을 이용해 우리의 것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중국은 반드시 북한의 정치적 실세를 이용해 동북공정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이제는 중국 땅에 있는 고구려 역사의 왜곡만이 문제가 아니다. 북한 땅에 있는 고구려 유적에 대해서도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한다면 우리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유네스코에 등재된 ‘아리랑’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리랑’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을 다룬 다큐를 보니 결국 중국의 소수 민족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도 그들의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조선족은 이미 중국인이며 고스란히 우리의 것이었던 문화는 합법적으로 중국문화의 일부가 되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역사, 문화, 영토, 그리고 민족이 서로 뒤엉켜 있을 때는 주사위가 어느 쪽으로 넘어갈지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오랫동안 철저하게 동북공정을 준비해온 중국과 세부적인 대책 없이 명분만 내세우는 한국이 함께 링에 올랐을 때 누구의 펀치가 셀 것인지, 누가 잘 치고 빠질 것인지, 예측 가능할 뿐이다.

    이주언(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