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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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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43) 시인 김이듬

문학, 영원한 나의 사랑

  • 기사입력 : 2013-01-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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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듬 시인이 진주 경상대학교 교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이듬(45) 시인을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그는 등단 10년을 넘기던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레지던스 파견작가로 선정돼 베를린 자유대학을 거점으로 한 학기 동안 독일에 체류한 뒤 몇 달 전 한국에 돌아왔다. 1월 초 녹지 않은 눈이 곳곳에 쌓인 진주 경상대학교 교정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강사처럼 보였다.

    노골적이고 과격한 성적 표현으로 독자를 당혹스럽게 하던 모습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낯을 가리고 수줍음을 탔다. 하지만 인터뷰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차츰 명랑해졌다.

    “문학은 한 번 사랑하게 되면 영원히 사랑하게 되는 모양이다.”

    김이듬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은 중학교 3학년 때, 백일장 수상을 축하한다며 담임이자 국어과 담당이었던 ‘도왕자’ 선생님이 준 책 한 권을 펼쳐본 순간이었다. ‘파우스트’라는 책이었는데 맨 앞장에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다울지니…’라고 적혀 있었다. 그 선생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치며 학생들과 시를 쓰고 연극을 하는 키팅 선생과 흡사한 분이셨다.

    중·고교 시절에는 문예부 활동을 하며 다수의 교내외 문학상을 받았다. 대학시절 문학 동아리에 들어갔으나 그 동아리는 곧 학생운동의 주축이 됐다.

    학교 옥상에서 투신한 시인 지망생과 함께한 대학생활은 문학과 실존에 대한 깊은 회의와 상흔을 남겼다. 그는 몇 권의 습작노트를 불태우고 창작을 포기한 채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었다.

    습작 원고는 탔지만 내면의 노래는 재가 되지 않고 되살아났다. 2000년 전후로 몇 차례 동아일보 등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으나 계속 고배를 마셨다. 2001년 원고를 묶어 출판사에 투고했고 그해 가을, 계간 ‘포에지’로 등단했다.


    ◆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천년의 시작, 2005)

    그는 첫 시집 자서에 이렇게 썼다. ‘누군가 바람이 불어 해가 진다고 말한다. 버려진 아이들, 갇힌 동물들과 병중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울어주지 못했다.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

    그의 첫 시집에 대해 문학평론가들은 ‘섹시한 은유와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경쾌감을 준다. 감정이입이라는 여성적 원리가 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그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특유의 냉소적 미소와 위악, 거침없는 성적 이미지로 변용되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첫 시집이 발간된 2005년에는 한국 시사(詩史)엔 ‘미래파 논쟁’이 한창이었다. 시 문법의 부정과 파괴를 통해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는 전위적 충동을 지닌 일군의 젊은 시인들을 미래파로 지칭한 논쟁이었는데 김이듬 또한 미래파 시인으로 분류돼 관심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 두 번째 시집, ‘명랑하라 팜파탈’ (문학과지성사, 2007)

    첫 시집 발간 이후 2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첫 시집이 부끄러워서 덮어버리려고 더 치열하게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시집도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시비 걸고 투덜거리는 시 말고 반성하고 감동하고 배려하는 시를 쓴다면 덜 부끄러울까? 아무튼 시는 시인을 참혹하게 한다. 시 앞에서는 뻔뻔스러워질 수가 없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로 나와/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은 배로 가자/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 물속으로 퐁당/ 물고기들은 몰려들지, 조금만 먹어볼래?/ 들리지? 내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 맞추게”(‘세이렌의 노래’ 전문)

    두 번째 시집에서 애착을 갖는 시 중의 하나다. 그는 “모든 시는 혁명 정신, 운동성을 갖고 있다. 누가 ‘저 새는 노래한다’고 할 때, 그 규정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해서 좋은 시인은 혁명가이고 선동가이다. 모던, 리얼리즘으로 나누는 건 천박한 이분법이라고 생각한다. 서정시를 쓰는 시인 중에 오히려 더 혁명에 가담한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세 번째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지성사, 2011)

    시집 제목 ‘말할 수 없는 애인’은 이중적인 의미로 읽힌다. ‘비밀스러운 애인’을 뜻하는 것인지, ‘벙어리 애인’을 뜻하는지. 하지만 정작 시인은 이 제목을 통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향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그 자명한 언어의 한계에 대한 비통함을 말하고자 했다고 한다. 주체의 중얼거림, 인간의 발화, 언어 이전의 세계에 대한 사유가 있었다고 한다.

    “뛰어난 궁수들은 과녁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될 때라야 비로소 과녁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저 또한 자아와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시기가 된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애인’은 ‘한국문화예술위 우수문학도서’와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상시집으로 선정됐다.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문학동네, 2011)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하는 청소년 계간 잡지 ‘풋’에 일 년 동안 연재했던 소설을 2011년에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학생운동이 그 정점으로 떠올랐던 1980년대 사회 변동의 시기다.

    그러나 정치나 이데올로기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그 사회상황에서 방황하는 청춘 개인의 복잡한 내면 관계의 불모성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독문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여울은 부모의 이혼, 남동생의 죽음으로 집을 나와 학교 선배인 지민의 자취방에서 함께 산다. 지민은 운동권 학생인데, 여울은 운동 자체보다 지민에 대한 호감 때문에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는다. 여울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선균이란 남자를 알게 된다. 어느 날 지민이 자살하고, 선균이 그녀를 강간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소설에는 동성애, 우정, 남녀 간의 사랑 등 다양한 관계가 등장하지만 어느 것도 서로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핍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시는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인간이란 뭐냐, 사랑이란 뭐야 하는 질문처럼 원초적 질문이다. 뭐라고 확정하면 위험하다. 유보적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시는 연극공연 ‘변태(變態)’의 텍스트로도 쓰였고 올해에는 미국에서 시선집이 나올 예정이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여행 계획이나 다른 출간 계획도 없다. 일주일에 한번 ‘문학과지성사 문화원 ‘사이’’에서 글쓰기 워크숍 강의를 할 뿐이다. 올해 봄 학기부터는 통영에 있는 경상대학교 분교에서만 강의를 하며 느릿하게 첫 번째 산문집 원고를 다듬으며 조용하게 다소 적적하게 지낼 계획이다. 그의 최근작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독수리 시간

    - 김이듬

    독수리는 일평생의 중반쯤 도달하면 최고의 맹수가 된다

    눈 감고도 쏜살같이 먹이를 낚아챈다

    그런 때가 오면 독수리는

    반평생 종횡무진 누비던 하늘에서 스스로 떨어져

    외진 벼랑이나 깊은 동굴로 사라진다

    거기서 제 부리로 자신을 쪼아댄다

    무시무시하게 자라버린 암갈색 날개 깃털을 뽑고

    뭉툭하게 두꺼워진 발톱을 하나씩하나씩 모조리 뽑아낸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며칠 동안 피를 흘린다

    숙달된 비행을 포기한 채 피투성이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이제는 무대에 오르지 않는

    아니

    캐스팅도 안 되고 오디션 보기도 어중간한 중년여자 연극배우가 술자리에서 내게 들려준 얘기다

    너무 취해서 헛소리를 했거나 내가 잘못 옮겼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확인해보지 않았다

    그냥 믿고 싶어서

    경사가 급한 어두운 골목길 끝에 있는 그녀의 방까지

    나는 바짝 마른 독수리 등에 업혀갔다


    글=이상규 기자, 사진=성민건 기자



    ◇김이듬=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해 세 권의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과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를 발간했다. 제1회 시와세계작품상(2010)과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2011)을 수상했다. 부산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경상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상대, 진주산업대 등에 출강했으며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작가로 선정돼 독일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학기간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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