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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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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마을 아, 본향! (3)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마을

700여 년 인재의 산실
빛나는 전통 이어간다

  • 기사입력 : 2013-01-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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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마을 입구에 있는 평광숲. 여기에 세계적인 화가 이우환이 고향을 그리는 시비가 있다./성민건 기자/
    인천이씨 재실인 도천재.
    명관야학터.
    이영부 씨가 부인과 함께 백이산 등산로에 쌓은 돌탑.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545호로 지정된 공룡발자국 화석.
    마을 입구에 있는 보호수.



    함안에서 마을 자랑을 하자면 결코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마을이 그곳으로, 인천이씨의 집성촌이다. 주민 60%가 인천이씨 일족이다. 군북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1029호선을 따라 가다 새로 생긴 군북역에서 우회전해 백이산 자락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평광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약 700년 전인 고려말 공민왕 때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50여 가구에 8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 마을에 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영부(63) 전 평광마을 이장을 통해 마을 내력을 전해 듣는다.


    ◆ 우국지사의 산실

    인천이씨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약 500년 전이라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특히 우국지사가 많았다. 이영부 씨를 따라 재실인 도천재 (道川齋)를 찾았다. 이곳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인 단서죽백(丹書竹帛)이 있다. 단서죽백은 공신 임명 문서로, 인조 2년(1624)에 이괄의 난을 평정한 이휴복(李休復, 1568~1624)에게 임금이 내린 것이다. 가로 198㎝, 세로 38㎝ 크기의 비단에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이휴복이 공신이 된 사연, 등급과 품계, 상으로 내려진 토지와 노비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공신임명 문서는 해당자에게만 발급되는 오직 하나뿐인 교서인 만큼 귀중한 유물이다. 도난을 우려해 진품은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다.

    동행한 이재환(80) 옹은 교지가 있는 건물을 열어 조상을 소개하며, 자랑한다.

    이 마을 출신으로 애국지사 이태준(李泰俊)을 들 수 있다. 1883년에 태어난 이태준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중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1914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동의의국’ 병원을 개원한다. 그는 몽골의 마지막 국왕인 보그드 칸의 주치의가 된다. 몽골에 만연했던 화류병(매독)을 치료한 공로로 몽골 최고훈장을 받았다. 1921년 러시아 백군의 침공으로 체포돼 3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그는 일제 때 비밀 결사조직인 신민회의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 활동을 했고, 중국과 몽골에서 독립운동 거점 역할과 활동자금을 조달했다. 이후 사회당과 의열단에 가입해 비밀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0년 대한민국 애족장이 추서되고, 2000년 울란바토르에 기념공원이 조성됐다. 함안군에는 이태준선생선양사업회가 결성돼 선생을 기리고 있다. 이 마을 출신 이창하 씨가 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독립운동가 이순근(李舜根)도 여기 출신이다. 그는 1900년에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를 졸업했다. 1932년 일제에 항거하는 운동을 전개하다가 주모자로 검거돼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같은 사실은 오랜 세월 묻혀 있다가 지난 2007년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유공을 인정받았다. 그의 아들이 마을에 기념비를 세워 그 뜻을 기렸다.

    이순근 기념비 바로 옆에는 명관야학터가 있다. 주민 이희근(75) 씨의 안내로 옛 야학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제 암흑기인 1927년 이 마을의 이삼룡(李三龍), 이수강(李壽崗)이 문맹퇴치의 일념으로 마을 중앙에 교사를 신축해 야학을 개설했다. 왜경의 감시하에서도 두 사람은 교가를 지어 수업 시작 전에 부르게 하고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것만이 살길임을 역설했다. 일제 말기 왜경은 불온분자를 양성한다는 구실로 개교 15년 만인 1941년에 강제폐교했다. 1945년 광복후 다시 야학을 개설해 오다 초등 의무교육이 되면서 군북초등교 명관분교로 활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교사터에 마을공동주택이 지어졌다. 옆에 조그마한 유허비를 남겨 그 뜻을 기리고 있다. 


    ◆ 평광숲 그리고 화가 이우환

    마을 입구에 있는 평광숲은 조선 성종 11년 (1480) 인천이씨 시조 이허겸의 17세손인 이계운이 벼슬을 버리고 여기에 정착하면서 숲을 조성했다. 그후 1592년 이휴복이 숲의 규모를 더욱 확장해 울창하게 했다. 하지만 일제 때 조선용으로 거목이 크게 훼손됐고, 6·25전쟁 때 폭격을 당해 극심한 수난을 겪었다. 지금은 약 1만1880㎡ 규모에 수령 200~500년 이상 나무 10여 그루, 200년 미만 나무 40여 그루가 숲을 이뤄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평광은 세계적인 화가 이우환(77)의 고향이기도 하다. 평광숲에 이우환이 고향을 그리는 시비가 있다. ‘고향이 하 보고파 양졸숲 찾아 왔더니/풀국새 우는 소리 깨닫는 바 또 있구나/부끄러워 꿈쫓아 다시 먼길 떠나노라.’ 그의 고향사랑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세계적 예술가를 만든 이 화백의 아버지 이인섭이 세웠다고 돼 있다. 이우환은 서울대 미술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도쿄의 타마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백남준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 번째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매년 고향을 방문해 일가들과 인사를 나눈다고 한다. 함안군은 이 화백의 생가복원사업을 추진중이다.


    ◆ 공룡발자국과 돌탑

    이 마을의 볼거리는 백이산(368m) 7부 능선에 산재한 공룡발자국 화석과 돌탑. 안내를 맡은 이영부 씨와 부인 마금자(61) 씨가 2004년 우연히 마을 뒷산에 올랐다가 화석을 발견했다.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545호로 지정됐다.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들의 발자국으로, 지표면 3군데와 큰 전석(굴러온 돌)에 보존되어 있다. 전체 산출 규모는 70여 개로, 2족 보행인 조각류와 4족 보행인 용각류 발자국이다. 발자국이 선명해 연구가치가 높다.

    이 씨 부부는 발자국 화석을 발견한 이후 마을을 알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화석만으로 관광상품이 부족하다고 판단, 돌탑을 쌓기로 했다. 2005년 초부터 7년간 돌탑을 쌓았다. 이 씨 부부와 함께 마을 뒷산 서재골 골짜기에 있는 돌탑과 공룡발자국 화석을 찾아갔다.

    “없이 살아도, 고향 발전을 위해서, 나 하나 희생하더라도 뭔가 하나는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못 배웠으니 몸이라도 때워서 남기자는 각오로 탑을 쌓았습니다. 남들이 미쳤다고 했지요. 지금은 마을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공룡발자국 화석지 주변에 크고 작은 탑 50여 개가 만들어졌다. 손재주가 뛰어난 이 씨는 목각전시관도 만들었다. 야외학습을 나오는 아이들에게,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우국지사를, 세계적 예술가를 배출한 평광마을. 고향 명물을 만들고 싶어 탑을 쌓았다는 그 후손. 700년을 내려온 마을은 또다시 천 년을 내다보고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글=이학수 기자·사진= 성민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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