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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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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마을 아, 본향! (4)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넓은 들 마당 삼고 낮은 산 병풍 두른 진양 하씨 집성촌

  • 기사입력 : 2013-01-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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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위치한 진양 하씨 판윤공파 집성촌.
    문회각에 보관된 송정 종택 소장 책판.
    진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300년 된 소나무.
    마을에 관해 설명하는 21대 종손 하병태(오른쪽) 씨.
    국보급 주자어류책판이 보관된 광명각.




    400년 전 판윤공파 하수일 선생 정착 후

    후손들 일가 이뤄 농사 짓고 살아


    종갓집 정원·연못서 명문세가 역사 숨쉬고

    앞마당엔 종택 소장 책판 보관하는 문회각

     
    마을 중심엔 300년 넘은 市 보호 소나무

    광명각에는 국보급 주자어류책판도



    백세청풍 선비의 고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도농복합도시가 되면서 진주시에 편입됐지만, 진주에서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오지 마을이다.

    진주~하동 국도를 따라가다 행정구역이 바뀐 사천시 곤명면 완사에서 다시 수곡면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타고 한참을 가면 수곡면사무소가 나오고, 여기에서도 8㎞를 더 가야 사곡마을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마을까지 가는 모든 길이 포장됐고, 진양호를 끼고 가다 진양호를 가로지르는 진수대교가 생겨 이곳을 통해서도 수곡면을 갈 수 있는 등 교통이 좋아졌다. 그래도 시가지에서 1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해 보면 진주에도 이런 아늑하고 정겨운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감이 먼저 느껴진다. 해발 300m의 높은 지역답게 궁금산, 중산골 등의 산지와 북쪽에 낙수암 등 급격한 산지가 많아 깊기도 하지만, 동네 전체가 넓은 들을 앞마당으로, 뒤로는 낮은 산들로 병풍을 두른 듯한 남향이어서 영하의 한파인데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밝고 아늑한 마을이다.

    고려시대부터 농사를 지어온 농토에 그대로 이어서 아직 농사를 지을 정도인 이곳 주민들은 동네에 고려답을 소유한 집이 상당수라고 자랑한다.


    ◆진양 하씨 판윤공파 집성촌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곧 보이는 마을회관에서 하씨가의 차종손 하동준(67) 씨를 비롯한 마을 원로들을 만났다.

    원로들은 마을 앞에 훤하게 펼쳐진 전답이 400여 년 동안 진양 하씨 판윤공파 후손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라며 마을 소개를 했다.

    이 마을에는 하씨 외에 다른 성이 없다.

    이들이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된 것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송정 하수일(1553~1612) 선생이 정착한 이후로, 400여 년 동안 일가가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진양 하씨 집안은 8대 선조부터 송정까지 9대가 연속 문과에 급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조선 중기 영남유학의 대표적 인물인 송정은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영남 제일의 누각인 촉석루 기문을 지을 정도로 문명이 뛰어났다. 송정의 뛰어난 문장은 한말 대학자이며 문장가로 이름난 희봉 하겸진에게 이어져 그 빛을 이어나갔고, 그의 손자인 하세용 또한 재주가 뛰어나고 견문이 넓은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한집안이 살아오다 보니 지금도 마을 전체가 촌수만 다른 일가인 것은 물론, 낯선 사람들과 사는 곳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마을사람들은 설명한다.

    마을에는 현재 총 45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지만, 한때는 115가구에 350여 명이 살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크지 않은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2~3명의 만석꾼을 비롯해 3000섬 이상을 가진 부자들이 많이 배출돼 타 지역에서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어떻게 그런 큰 부자가 나올 수 있느냐며 일부러 다녀가기도 했단다.

    하지만 급격한 세태의 변화에 이곳도 어쩔 수 없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마을 원로들의 아쉬움 섞인 설명이다.

    마을에서 가장 젊다는 차종손 하 씨가 67세.

    동네를 돌아보니 군데군데 빈집과 함께 이미 집은 온데간데없이 잡초가 자라 있는 집터만 덩그러니 남은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난 이 마을에서 아기 울음 소리를 들어본 지가 아주 오래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우리 마을같이 좋은 곳이 없는데, 이곳에서 나서 이곳에서 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며 마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마을 전체가 기와지붕의 고풍

    마을을 돌아보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집이 많지만, 신축이나 개축을 한 집도 모두가 기와지붕을 얹어 어색하지 않은 고풍스런 모습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듯 정겹고 포근한 인상을 준다.

    하동준 씨의 부친, 즉 21대 종손인 하병태(88) 씨의 집을 들어서니 종갓집답게 대문부터 시작해 한옥의 규모는 물론, 정원과 연못 등 가지런히 정돈돼 있는 모습이 수백 년을 이어온 명문세가의 역사를 느끼게 했다. 특히 앞마당에 있는 문회각(조그만 규모의 누각)은 경남도문화재 자료 제327호로 지정돼 있는 진양 하씨 송정 종택의 소장 책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112매의 책판은 400여 년 전 자료의 희귀성과 함께 목판을 남긴 인물들이 모두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학자들이어서 강우지역의 유림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인쇄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의 또 하나의 소중한 유산인 광명각과 수졸재가 있는 이산재를 보기 위해 마을 중심을 지나다 뜻밖의 풍경을 하나 더 만났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 봉긋하게 솟아 오른 작은 동산 같은 흙무더기였는데,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웅장한 소나무 두 그루, 그중 한 그루는 거의 누워 있다시피 했다. 수령 300년을 넘은 것으로, 바로 뒤 조선후기의 선비 하달중의 묘소를 지키는 수호목 역할을 하고 있다.

    진주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이 나무는 주기적인 관리를 받고 있지만, 지난해 태풍에 서 있던 한 그루마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 혹시 고사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들의 자랑거리인 광명각에 보관돼 있는 주자어류책판은 국보급에 속한다. 본래 송나라 여정덕이 주자와 그 문인들의 문답을 모아 편집한 50책이나 되는 방대한 양으로, 주자와 성리학 연구의 필독서다.

    선조 8년(1575년)에 처음 간행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 인조 때 다시 간행했다가 또 불타 영조 46년(1770년) 간행한 이후, 1904년 서부경남 선비들이 모여 산청 대원사에서 간행한 2076매가 보관돼 있다.


    ◆마을의 지명과 선대의 가르침

    살쾡이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식실 또는 이곡으로 불렸다가 우곡 정온 선생이 동리를 사기만곡이라고 부른 것에서 사(士)자와 곡(谷)자를 따서 사곡으로 불렀다고 한다.

    예부터 이 집안의 정신적 기치는 충효와 예를 근본으로 한 집안의 화목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아직까지 마을에서 큰소리 한 번 나오지 않은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밴 선조들의 정신적 가르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던 사곡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씨의 형 이병각 씨의 처가이며,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의 처가이기도 하다.

    종택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지키고 있는 종손 하병태 씨는 서울과 부산에서 해운회사를 경영하다 은퇴하고 10여 년 전 종손으로서 문중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짐 때문에 돌아왔고, 차종손 수일 씨 역시 수년 전 대를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종손 하 씨는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고, 옛 관습이 없어지면서 마을이 쇠락해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마을이 단일성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세상풍류에 따라 어른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릴 때 모습이 그립다”고 회상한다.
     

    글=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사진= 성민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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