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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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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33) 배한봉 시인이 찾은 하동 최참판댁

문학의 향기, 나를 치유하다

  • 기사입력 : 2013-01-3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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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참판댁 솟을대문 앞에 서면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이 훤히 보인다.
    ‘토지’ 주인공 서희가 머물렀던 별당. 연못 한가운데 소나무가 이채롭다.
    평사리 문학관 입구 대숲이 지리산의 바람소리를 품었다가 풀어낸다.
    중문채에서 본 안채.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이다.
    평사리 들판 복판에 있는 부부소나무. 서희소나무와 길상소나무라 불린다.
    안채 벽에 달린 메주, 시래기, 조, 수수 등의 곡물들.
    하동포구엔 하춘화가 노래한 ‘하동포구’ 노래비가 있다.




    깊은 자기 내면의 힐링을 원하는 사람은 삶의 조건과 본질에 대해, 그리고 인간 존엄과 평등에 대해 진지하고 철저한 성찰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을 하는 일이다. 혼자 고독을 느끼며 떠나는 길은 몹시 쓸쓸한 여정이지만 자기를 가장 따뜻하게 위로하고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한겨울 혼자 여행을 떠나 사색에 잠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섬진강 근처에 있는 하동의 최참판댁이 제격이다. 지리산 능선의 완만한 자락 위에 자리한 최참판댁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넓은 평야를 앞마당 삼는 넉넉함이 아름다운 곳. 무엇보다 한옥체험관이 있어 숙박을 하면서 소설 <토지>의 작품 속 이미지를 사진을 펼쳐보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다. 문학의 향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사색할 수 있는 곳. 그야말로 온전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며 힐링(healing)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최참판댁이다.


    섬진강 풍경을 보느라 느릿느릿 왔는데도 어느새 평사리 동구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최참판댁”을 찾아든 “괴나리봇짐을 든 남루한 차림의 젊은 사내”(<토지> 제1권 1부, 60쪽)처럼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동구에 세워진 ‘박경리토지문학비’를 지나 골목을 걸어 올라간다.

    길옆 좌판이 눈길을 끈다. 말린 취나물, 고사리, 곶감 등의 농산물과 누름나무, 겨우살이, 산청목 등 약재들을 팔고 있다. 좀 더 올라가자 호떡집, 찻집, 관광상품이나 특산품을 파는 가게도 줄지어 있다. 삼삼오오 관광객들이 시끌벅적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평사리는 이제 최참판댁과 함께 전국적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 됐다.

    나는 최참판댁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형제봉 오르는 길로 향한다. 상당히 가파른 곳까지 다 밭이다. 힘이 부친 마을 노인들은 이곳 비탈밭농사 대신 소일거리 삼아 산나물 같은 것을 채취해 저 아래 동구에 좌판을 펼쳤을 것이다.

    산길을 한참 올라 불쑥 솟은 바위 위에 선다. 최참판댁과 평사리 들판, 그리고 지리산을 휘어 돌아가는 섬진강이 거대한 한 폭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시퍼렇게 물들 것만 같은 새파란 하늘과 넉넉한 대지, 풍부한 물, 자연조건이 잘 갖춰진 풍요로운 저 풍경이 바로 소설 <토지>의 주 무대이자 배경이다.

    <토지>의 주 무대로 평사리를 선택한 것에 대해 박경리 선생은 많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생명을 거둬들이는 모신과도 같은 지리산의 포용력”(한겨레신문, 1994년 8월 24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모신은 인간의 제도와 불화한 자들을 안아들이는 존재다.

    대하소설 <토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대서사시이자 우리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토지>는 19세기 말에서 시작해 해방 공간까지 끌어안는 시간적 배경과 경상도 하동의 평사리에서 시작해 만주, 서울, 도쿄 등지로 방사선형으로 뻗어나가는 공간적 배경을 아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인들의 파란과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선생은 <토지>로 우리 문학사의 큰 봉우리로 우뚝 솟아올랐다. 이 소설은 1969년 집필을 시작해 1994년까지 25년에 걸쳐 16권으로 완성됐다. 소설 속의 시간도 동학혁명에서 8·15광복까지 집필기간 만큼이나 길다. 평사리는 그중 소설 1부의 무대로 등장한다.

    천천히 산길을 내려와 전통 한옥인 최참판댁 솟을대문 앞에 선다. 주인공 서희와 길상의 어린 시절 배경이 되는 집이다.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이 훤히 보인다. 안채를 중심으로 별당, 뒤채, 사랑채, 중문채, 사당 등 건물 14동이 좌우전후로 배치돼 있고, <토지> 속의 인물들이 거처했던 공간 설명을 담은 액자가 건물들 마루에 놓여 있다. 또 각 건물에 알맞은 농기구며 세간 등이 잘 배치돼 있어 어른들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안겨주고, 청소년들에게는 학습 현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중문채와 사랑채 등 이곳저곳을 둘러보고는 별당으로 간다. <토지>의 주인공 서희가 머물렀던 곳이다. 연못 한가운데의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별당 담 너머로 안채가 보인다. 안채 벽에 달아놓은 메주와 조, 수수, 시래기 등 농산물이 바람에 일렁거리고 있다. 고향집 마당에 선 기분이다.

    안채 마루에 앉아 잠시 볕을 쬐며 “한은 생명의 핵”이라 했던 박경리 선생을 생각한다. “한은 원한이나 퇴영적 정서가 아니라 생명이 그 생명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강렬한 소망”이라는 말로 소설 미학론을 펼쳤던 선생에게서 나는 시인 기질을 읽는다. 그러고 보니 선생은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인이기도 하다. 시집만 해도 <못 떠나는 배> 등 4권을 펴냈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 중에서, 박경리


    평사리문학관 입구 대숲이 지리산의 청량한 바람소리를 품었다가 풀어내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동 토박이 시인인 최영욱 평사리문학관장에게 전화를 넣는다. 오늘따라 출타 중이다. 문학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박경리 선생의 생애와 <토지>의 작품세계가 잘 소개돼 있다.

    한옥체험관을 휘돌아 나와 마을을 굽어본다. 왼쪽에 토지마을 장터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칠성이네, 막딸네 등 <토지> 속 인물들의 집들이 다닥다닥 몸을 맞대고 있다. 이 초가 마을은 드라마 촬영장으로 만들어진 최참판댁과 함께 2002년 완성됐다.

    귀갓길에 평사리 들판으로 간다. 텅 빈 겨울 들판 한가운데 두 그루 소나무가 세찬 바람을 견디고 있다. 일명 부부소나무. <토지>의 주인공 이름을 빌려 길상소나무와 서희소나무라 부르는 사람도 많다. 이 소나무를 보러 갈 때는 차를 타고 가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 나 있지만, 이 소나무만큼 아름다운 곳이 소나무를 만나러 들어가는 평사리 들판길이기 때문이다.

    휑한 겨울 들판 한복판에서 한파를 견디는 두 그루 소나무를 보며 나는 마음이 쓸쓸해지고 적막해지고 숙연해진다. 꿈꾸는 자들은 대체로 길 위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어느 날 세상이 더 이상 줄 게 없다고 할 때까지 저 소나무처럼 풍찬 노숙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주의 달콤함에 잘 매혹당하는 사람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 도피하기도 했던 나약한 한 인간. 그래 어쩌면 현실에 파묻혀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것이 진짜 삶인지도 모른다.

    겨울 섬진강은 매화향 날리고 벚꽃 휘날리는 봄날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하동포구에 들러 강바람 쐬며 몇 장 사진을 찍고는 귀갓길에 오른다. 욕심 내며 어깨 위에 얹어놓았던 짐을 내려놓은 듯 몸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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