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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5) 함양 지안재에서 오도재 오르는 길

뱀처럼 내달리는 지리산 붉은 핏줄

  • 기사입력 : 2013-01-3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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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인 오도재.
    지리산제일문
    함양군 함양읍 조동마을에서 지리산제일문으로 가는 곳의 시작점인 지안재의 야경. 차량들이 붉은 궤적을 남기며 굽이굽이 이어지는 지안재를 오르고 있다. 니콘 D4카메라로 감도 100, 조리개 11로 10분간 촬영.


    누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어느 부잣집 기와지붕 한쪽에서 자리 잡고 살았는지 통통하게 살을 찌운 황구렁이.

    함양군 함양읍 조동마을에서 기어올라온 구렁이의 머리가 지리산 오도재의 시작점인 지안재를 넘어가고 있다. 이 황구렁이는 오도재 너머 우뚝 솟아 있는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을 향해 냅다 달리고 있다. 길이가 얼마나 길던지 꼬리는 아직 조동마을을 벗어나지 못한 채 길게 뻗었고, 머리를 쭉 내밀고 있는 긴 목은 당차 보인다.

    계사년 뱀의 해를 맞아 가지가지 뻗은 도로가 뱀의 형상과 기상을 많이 닮았다고 하는 함양군 오도재를 찾았다. 추운 겨울 눈과 비를 뿌려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는 그곳. 지난 24일 함양 일대에는 눈발이 날렸지만 25일 취재진의 방문은 허용했다. 한겨울 오도재의 날씨는 변화무쌍해 눈이 조금만 내려도 차량 진입이 어렵다.

    오도재를 찾은 이날도 도로 곳곳에 잔설이 남아 통행이 쉽지 않았지만 조심조심 길을 달려 오도재 곳곳을 취재노트에 담았다. 한겨울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냉바람에 눈물이 주룩주룩 저절로 흐른다. 볼펜을 쥔 손은 냉동고에서 갓 꺼낸 동태처럼 딱딱하고 차가워졌다.

    그래도 뱀띠 해, 뱀의 기상을 쏙 빼닮은 오도재에서, 뱀띠 기자가 취재한다는 의미 부여로 오도재 들머리 ‘지안재’와 오도재 정상인 ‘지리산제일문’을 수차례 돌아보는 기운이 생겼다. 차가운 냉바람도 뱀의 콧바람인 양 간들간들 느껴졌다.

    오도재(773m)라는 이름은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靑梅) 인오조사(印悟祖師·서산대사의 제자)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득도한 연유로 붙여졌다.

    오도재는 삼봉산(1187m)과 법화산(991m)이 만나는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이다.

    예로부터 영남학파 종조인 김종직 선생을 비롯, 정여창·유호인 선생, 서산대사, 인오조사 등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걸음을 멈추며 지리산을 노래한 곳이다.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온 남해·하동 등지의 해산물이 이 고개를 지나 전라북도, 경상북도, 충청도 지방으로 운송된 육상 교역로이기도 했다.

    1888년(고종 25년)까지 오도재 아래에 제한역(蹄閑驛·현재 함양읍 구룡리 조동)을 둬 이곳을 통행하는 사람과 말, 산물을 관장하게 했던 것으로 보아 오도재를 통행한 교통량이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현재의 오도재는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주민들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만남의 광장이 되기도 하고, 삼봉산을 찾는 사람들을 품어안는 쉼터로 애용되고 있다.

    오도재 정상을 오르면 웅장한 모습의 ‘지리산제일문’을 만난다. 함양군이 지난 2006년 11월 1일 준공했다. 지리산제일문은 주변 사업을 포함해 총 52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갔다. 규모는 성곽 길이 38.7m, 높이 8m, 너비 7.7m이다. 특히 이 문에는 함양 출신 명필 정주상 선생의 글을 서각가 송문영 선생이 전각한 현판이 걸려 있다. 지리산제일문은 삼봉산과 법화산이 만나는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로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고산준령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이곳에는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방장 제1문이 2개 있었지만 나무로 된 문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졌고, 돌로 만든 문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2005년에 오도재 옆 금대산에서 돌로 만든 방장 제1문의 표지석과 바위에 새겨진 방장 제1문에 관한 칠언시를 찾아냄으로써 지리산 제1문의 역사성이 비로소 증명됐다.

    조동마을~지안재~지리산제일문~지리산조망공원 등 오도재 일대는 정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돼 있다.

    오도재에는 재미있는 설화도 있다. 흥부전과 춘향전 등 판소리 열두마당의 하나인 변강쇠전(가루지기타령)의 지리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전국을 떠돌던 변강쇠와 옹녀가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곳을 골라 찾아다니다 결국 지리산 오도재에 살게 됐다는 이야기. 변강쇠전에서 변강쇠는 옹녀가 나무를 해오라고 하자 나무하러 갔다가 산에서 등구·마천 나무꾼들과 어울려 놀다가 날이 저물어지자 그냥 빈 지게로 집에 가면 마누라 바가지가 극심할 것이라며 걱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변강쇠전 원문에 “사면을 둘러보니 등구·마천 가는 길에 우뚝 서 있는 장승을 발견하고 뽑아다가 불 때는…”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등구·마천 가는 길’은 오도재 길과 일치한다. ‘등구’는 마천면 등구마을 일대를 지칭하고, ‘마천’은 마천면 덕전리와 가흥리, 군자리 일대를 말한다.

    변강쇠타령을 기록한 성두본 원문에 ‘소장(小將)은 경상도 함양군에 산로(山路)를 지킨 장승’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어 오도재 일대가 변강쇠타령의 무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전북 남원시는 함경도 출신 변강쇠가 남원시 산내면에 살다가 함양군 마천면으로 가는 장면이 변강쇠타령에 나오는 점을 들며 ‘산내면’이 무대라고 맞서고 있다.

    오도재와 변강쇠·옹녀 설화의 영향으로 오도재 일대에는 기묘하고 음란하게 생긴 장승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오도재를 넘어서 마천면 방면으로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면 지리산 조망공원을 만난다.

    조망공원에서는 지리산의 하봉과 중봉, 천왕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세석평원, 벽소령, 반야봉까지의 지리산 주능선도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휴게소도 있어 길 탐방에 지친 육신을 달래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조망공원 망루에는 500원을 넣으면 지리산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망원경이 비치돼 있다. 주차장 곳곳에는 마고할매 비석과 장승들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망공원을 뒤로하고 내려가면 지리산 추성계곡 입구가 나오고, 차를 마천면소재지 방향으로 돌리면 뱀사골을 지나 노고단으로 가는 길을 만난다.

    굽이굽이 황구렁이 형상으로 계사년 뱀의 기운을 한껏 뿜어내는 오도재. 고개를 넘어서면 만나는 또 다른 산의 정렬. 저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천왕봉과 지리산 주능선의 위용. 올해 한 번이라도 오도재를 올라가 본다면 산천초목 소리 없이 잘 가는 뱀의 거동처럼 연초에 세운 다짐과 수많은 일들이 술술 잘 풀릴 것만 같다.

    글= 조윤제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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