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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달팽이 풍화(風化)- 최형일(시인·옥포성지중 교사)

  • 기사입력 : 2013-02-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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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이 차 세(歲)를 더하는 하늘엔 눈썹 이미지 하나, 거제 그믐 바다는 바람으로 말을 건다. 푸른 갈기로 다투거나 돌 틈 이끼를 건드려 놓고 돌아보면 금세 잠잠히 딴청이니 영락없이 촌스러운 가시네 짓이다. 겉멋으로 연지 바르고 질겅질겅 껌 씹는 행세는 미역 냄새로 물큰 들통 나 초를 친 대구(大口)탕 한 그릇거리다.

    섣달큰애기란 말이 있다. 쓸데기없이 물만 오른 엉덩이로 떡대같이 덮쳐오는 거친 파도라면 헤벌레 널브러지는 과년한 처자의 해(年)갈이를 이른 말이다. 때가 돼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식솔이 도란도란 꿈을 키우는 생애주기별 주거문화(住居文化)는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라지만 근자에 들어 주거문화가 위기를 맞고 있으니 저 큰애기 안달 난 시집타령도 욕 좀 보겠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저성장 실업문제나 무리한 주택담보 대출의 이자 부담 때문에 하우스 푸어(House Poor)란 말까지 생겨났으니 서민들의 작은 행복을 옭아매는 덫이요 짐이 된 신세로 한낱 달팽이와 다를 바 무엇인가. 은행 빚에 평생을 잡혀 겨우 꾸려온 집 한 칸이 세월이 다해 원금조차 갚지 못할 껍데기로 남았으니 “희망이 벼름박이여”란 맥 빠진 넋두리만 나돌지 않는가.

    다행이 새 정부가 주거문제를 분배와 복지 차원에서 덜어준다 하니 지켜 볼 일이지만 성장에 따른 성과가 골고루 나눠질 수 있도록 공정한 시장 감시와 경쟁, 합리적인 세정(稅政)으로 양극화를 메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인적자원이 큰 자산인 우리네 복지 정책은 먼 미래를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다뤄져야하며 육아나 교육복지는 우선적이고 보편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사교육 차등에 따른 선민적 인재육성이 아이들의 사회경제적지위(Social & Economic States)마저 고착화, 세습화시키는 부(富)의 역기능은 없는지 헤아려야 할 것이다. 가난하지만 당당한 젊음이라면 개천 용꿈도 꿀 수 있는 미래가 살아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 않다. 수월성(秀越性)을 위한 조기 영재교육, 특성화고, 국제고, 과학고, 로스쿨 등 국가적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했건만 가난한 학생은 재능이 뛰어나도 밑천 문제로 기회마저 잃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교육은 사회 계층간 역동성 문제를 풀어야 하는 미래상 제시에 위기를 초래했으며 가난한 그 수레의 진창은 다른 한쪽의 그늘마저 나서 해결해야만 하는 빌미를 낳고 말았다.

    굼벵이는 구르는 재주라도 있어 산다지만 요사이 달팽이들은 제집에 덜미 잡힌 어름사니로 산다 한다. 살 판 죽을 판 모르고 아슬아슬한 줄에 올라 매운 세상 소리를 메기고 받는 것이다. 하긴 너나없이 줄잡아 몇 날을 산다고 실랑이하는 짓이 장터 거간꾼 손짓마냥 무담시 짠하지만 그래도 풍화(風化)된 길 위의 잠을 더듬어 따옴표(‘ ’)만한 따뜻한 인정이면 댓바람에 조붓해진 촉수를 다시 세워 살아 볼 일이다. 하찮은 옹기도 그릇의 쓸모를 다하려면 그 안을 채울 여유로움이 있어야 하거늘 집인들 더하지 않겠는가. 편하게 사는 날을 즐기다 보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란 사람 사는 이치에 들지 않겠는가.

    들고 난 인연으로 보채는 밤바다에 짙어가는 눈썹 이미지 하나 이른 봄 마중으로 청승이다.

    다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한다(變則通)했거늘 달이 쇠면 해가 돋듯 저 문턱 그믐이 동트는 기별이면 좋겠다. 출출하다. 물메기탕에 식은밥 한술 풀어먹고 넉넉한 설 기운 챙기시라.

    최형일(시인·옥포성지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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