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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기능한국인 제1호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

“나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픈 기능인입니다”

  • 기사입력 : 2013-02-1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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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병현 동구기업 대표가 자신이 국가대표 시절에 제작한 목형 제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류병현 대표가 세탁기 튜브 금형 샘플과 관련해 연구소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공(成功)이 있다. 그것이 권력일 수도, 명예일 수도, 돈일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건강하고 현재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것을 성공이라 여길 수도 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오랜 세월, 지금도 그 길을 후회하지 않고 행복하게 걷고 있는 것도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크나큰 성공이다. 류병현(57) 동구기업 대표는 기업인이다. 하지만 기업인보다, 기능인으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스스로가 기능을 선택했고, 기능으로 행복을 맛봤고,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한국인 1호… 기능한국인회 초대 회장

    류병현 대표는 기능한국인 제1호다. 기능한국인은 한 분야 최고의 기술을 가진 명장(名匠)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지난 2006년 8월 첫 제정돼 매월 1명씩을 엄선한다. 기능인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기능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를 위해 시행됐다.

    기능한국인은 국내 이공계 출신, 공업계 고교, 직업전문학교 출신 중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해당 분야에서 성공한, 후배들이 롤모델 삼기에 적합한 기능인 중 선발된다.

    국제기능경기대회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기능인들이 주축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72명이 선정됐다.

    류 대표는 지난해 8월 이들 기능한국인을 규합한 기능한국인회를 발족시키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류 대표는 “기능한국인 개개인들의 활동을 하나로 뭉쳐 보다 큰 일을 하려는 목적이다”며 “기능인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장학사업과 기술전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어 “회원 중 상당수가 기업을 경영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재능기부뿐 아니라 후배들의 미래를 위한 일자리 창출 등 기능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꿋꿋하게 나아가도록 지원할 것이다”며 “기능인의 길을 먼저 걸었던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데 회원들이 뜻을 같이했다”고 덧붙였다.



    ▲14살 시골 소년, 배가 고파 기술을 택하다

    류 대표는 철이 들 때까지 한 번도 배가 불러 본 적이 없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농사일을 하는 홀어머니에 딸린 2남4녀 중 막내. 자신에게 돌아올 여유가 없었다. 류 대표는 71년 고향 합천의 한 중학교를 마치고 주저없이 진주기계공고를 택했다.

    교사가 꿈이었지만, 배불리 먹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워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기계과로 진학한 그는 남보다 빨리 기술을 익히기 위해 정상수업이 끝나고 곧장 실습동으로 직행하는 부지런을 떨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목형(木型)으로. 주물제품의 기본이 되는 형틀을 제작하는 과정이다.

    류 대표는 “어릴 때부터 나무를 만지작거리며 자랐다. 나름 손재주도 있었고, 나무가 전하는 따뜻한 질감이 무엇보다 좋아 목형을 택했다”고 말했다.

    학생신문을 팔아 학자금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탓에 도내 공업계고 실기대회서 금·은메달을 따냈다.

    내심 전국 최고의 목형제조 기능인이 돼 좋은 직장에 취직하리라는 계산도 있었으리라.

    류 대표는 3학년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한 실습과 전국대회 출전을 위한 기술연마를 병행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 부산 동래구에 있던 금성사(현 LG전자)에 취업, 생산라인에서 일을 하고 밤이면 주물실에서 땀을 쏟았다.

    류 대표는 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그간의 땀과 눈물을 보상받는다. 목형부문 금메달,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목형 기능인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기능경기대회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티켓까지 손에 넣게 된다.



    ▲국제대회 출전… 하지만 초라한 귀국

    6년. 류 대표는 최고 기능인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그 기나긴 터널을 지나 빛을 마주할 일만 남았다.

    그는 77년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제23회 국제기능경기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고, 스스로도, 누구도 그의 입상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당일 갑자기 과제가 바뀌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낭패였다. 눈앞이 캄캄하고,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류 대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할 것도 없었다. 정보전에서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너무 억울해 과제와 다른 제품을 만들어 제출하긴 했지만, 입상은 이미 멀어진 것이었다”며 당시 참담했던 심정을 회고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 모두 26명이 출전, 24명이 입상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류 대표는 한마디로 ‘풍년거지’가 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선진국 진입을 위해 기술을 중시하던 시절이었고, 국제대회 종합우승은 나라 전체의 경사였다.

    카퍼레이드와 환영행사가 한동안 계속됐고, 입상자에게는 각종 위로금과 취업, 병역혜택과 아파트 우선 입주권 등이 주어졌다.

    류 대표는 “김포공항이 보이는 순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개선장군들 속에 홀로 패잔병이 된 기막힌 신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메달 없이 선수단 맨 뒤에 따라다녀야 하는 참담함에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방황의 끝에서 희망을 찾다

    딱 2년을 방황했다. 회사(금성사)는 다녔지만 마음도 몸도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입상한 친구들의 뒤만 쫓아야 될까. 기능인으로, 그것도 한국에 살기 위해서는 내 앞에 가로막힌 벽(壁)을 뛰어넘어야 한다.”

    류 대표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10년, 20년 뒤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들과 나란히, 아니 한발 앞서 있으리라.

    그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 기능이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뤄보자는 결심을 했다.

    다행히 회사는 목형을 공식 훈련종목으로 선정해 인재를 육성하고 있었고, 그는 이들의 지도강사로 변신했다.

    사내 훈련도 모자라, 큰 대회가 있을 때면 자신의 반지하방에 실습장을 만들어 합숙훈련을 시켰고 금·은메달 수상소식이 이어졌다. 기능인을 만드는 기능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것이다.

    아울러 93년도 전국기능경기대회 목형 심사장, 95년 최연소 국제대회 심사위원이 됐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니 당시 입상한 친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먼저 정상(頂上)에 올랐다는 희열을 만끽했다”며 “조금 늦었지만, 꾸준하게 정진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기능인에서 기업인으로

    류 대표는 이후 각종 국제대회는 물론 국내대회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한국 기능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륜이 쌓이면서 ‘후배 기능인들을 위해 보다 큰 일은 없을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해답은 창업이었다. 93년 동기들과 중고 기계 몇 대로 자신의 회사를 꾸렸다.

    그는 “기능의 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으로서,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다”며 “이를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후배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탄탄한 기능이 있었기에 98년 창원 팔룡동으로, 2009년 현재의 성주동 시대를 열며 성장했다.

    현재 회사는 해외법인을 거느리고, 단순 금형제조에서 부품 양산체제가 가능한 연매출 200억 원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류 대표는 “기능인으로서 욕을 먹지 않으려고, 기능인도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최선을 다했다. 향후 회사를 설계·가공·조립라인을 갖춘 완성업체로 키워 나갈 것이다”는 계획을 밝혔다.



    ▲영원한 기능인으로 살아갈 것

    류 대표는 “기능인의 길을 선택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잠시 아픔도 있었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게 기능이다. 또 미래의 꿈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도 다름 아닌 기능이다”고 말했다.

    그의 행복과 좌절, 또 삶과 꿈 모두에 기능이 녹아 있다는 얘기다.

    류 대표의 마음은 안타깝고도 바쁘다. 산업사회에 있어 기능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기능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팽배해 있고 이로 인해 우수한 인적자원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기능인에 대한 인식전환도 시급하고, 젊은 기능인을 배출하기 위한 선배 기능인의 역할과 책임도 막중하다.

    류 대표는 “기능은 절대 스스로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앞으로 기능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다”며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기능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글= 이문재 기자 mjlee@knnews.co.kr

    사진= 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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