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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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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시(詩)와 사람(人)- 최석균(시인)

  • 기사입력 : 2013-02-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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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물(事物)을 만났을 때 그 느낌을 표현한 글은 사람마다 다르다. 성정(性情)이 다르고 인식과 태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글은 그 사람과 닮았다는 말을 한다. 문인들에게 자주 회자되는 황선하 선생님은 생전에 한 권의 시집 ‘이슬처럼’을 남기셨는데 그렇게 시집 속의 시처럼 살다가 가셨다고 한다.

    창원은 공업 도시로의 웅대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 원동력인 공장의 기계는 윤활유가 있어야 잘 돌아간다. 기계와 같이 돌아가는 현실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문화예술이다. 그런 취지의 일환으로 창원시는 지역 예술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작고 문인을 대상으로 한 시비(詩碑) 건립 사업을 추진하면서 첫 번째 시인으로 황선하 선생님을 선정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작고 10주기에 즈음하여 ‘시(詩)가 흐르는 도시 창원’ 조성의 서막을 열었다. 많은 시민들이 사계절 찾아와 심신의 건강을 찾는 곳, 창원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용지못에 선생님의 대표시 ‘이슬처럼’을 새긴 시비를 세움으로써 잔잔한 호수의 물과 함께 시민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실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할 것이다. 선생님의 생전의 모습과 그 뜻을 다시 한 번 기리며 그날 ‘시비 제막식’을 스케치해 본다.

    축복이 내리듯 봄 물결이 행사장 주변을 덮고 있었다. 시비건립위원회 위원장 이광석 시인의 “한분 한분이 봄을 가지고 참석해 날씨가 이렇게 좋은가 봅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12년 동안 늘 거닐며 시상을 구상하셨던 뜻깊은 장소에서 시비(詩碑)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인사말과 내빈 소개에 이어 배경민 창원시문화예술과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창원시는 이번을 계기로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훌륭한 시인의 시비(詩碑) 건립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라는 취지가 가슴에 들어왔다.

    김일태 시인이 선생님 작고 20일 전 직접 녹취한 육성 자료를 정리해 틀어주었다.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1992년 5월에 발병한 다음에 언제라도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려고 진작부터 마음의 훈련을 해왔습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70입니다. 더 욕심을 낼 수도 없습니다. 되살아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고 싶습니다. 성격이 고지식해서 본의 아니게 마음 상하게 한 일이 있으면 용서를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감추는 모습이 보이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혜연 시인의 시낭송과 이달균 시인의 약력 소개사가 이어졌다. “아름다운 시 정신을 남긴 용지못 명당 자리에 영원한 시의 꽃으로 자리매김하셨습니다. 돌아가셨어도 고문의 역할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간명하면서도 깊은 시인의 길 하나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정일근 시인은 회고사에서 “경화역까지 동행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셨던 분, 평생 한 권의 시집이면 족하다고 하셨던 분, ‘이슬처럼’ 사셨던 분, 늘 먼저 술값을 내셨던 분, ‘종이 아껴 써라, 문장부호도 시다.’ 가르치셨던 분, 학예서림에서 ‘현대문학’을 사 보시던 분” 등으로 선생님을 추억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인 ‘가자! 아름다운 나라로’를 합창단이 교복을 입고 부른 후 드디어 제막(除幕), 시비(詩碑)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예가 윤판기 선생님의 동심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시(詩)는 우리의 생각과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장르로 취급받으며 일상에서 동떨어진 채 존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시인(詩人) 또한 숨 막히는 삶의 질곡과 모순된 현실의 굴레 속에서 미래의 작은 등불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한 시와 시인이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일상 속에 한 걸음 다가온 듯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족을 대표하는 글 속에는 민족혼이 살아 숨 쉬고 지역을 대표하는 글은 지역민의 의식을 이끌 수 있다. ‘시(詩)가 흐르는 도시 창원’에 정말 시의 물결이 쉼 없이 흐르고 출렁이기를 바라며 ‘이슬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들로 넘쳐나기를 소망해 본다.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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