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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45) 시인 박서영

집착을 버렸다 언어로 즐겼다 나만의 시 세계를 찾아

  • 기사입력 : 2013-02-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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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영 시인이 창원 의창구 용호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창원에 사는 박서영(45) 시인은 가난한 어부의 딸이었다. 고향은 고성군 삼산면 대동리 독실마을. 바다가 인접한 산골에서 외딴집 3채만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마당에 서면 보이는 맞은편 산에 공동묘지가 많이 있었다. 어린 시절 100% 자연만 있은 곳에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거기서 살았고,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 반가량 걸어야 했다. 엄마는 농부였고 아버지는 어부였다. 고기잡이 하는 아버지는 집을 비워 자주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학시험을 보고난 뒤 부모님에게 말도 하지 않고 부산으로 공장생활을 하러 갔다. 2남1녀의 장녀. 집안 형편으로는 대학을 보내 줄 수 없다고 생각해 돈을 벌기 위해 가출, 두 달간 공장생활을 하다 부모님에게 붙잡혀 돌아왔다고 했다. 4년제 대학의 국문과에 합격했지만 포기하고 결국 창원전문대 도서관학과로 진학했다.

    장래 희망으로 시인을 꿈꾼 적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시골에서 시인이란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자신은 퍽 내성적이고 평범한 시골아이였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때 그림을 그렸고 소가야문화제에서 1등도 해보곤 했다고 말했다.

    “시골서 자연만 보고 자라 몸도 의식도 멀리 가보지 못했다.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달리 멘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학교 때 혼자 운동장 한구석에 앉아 ‘풀밭에서’란 시를 쓴 기억이 있다. 고교 때는 교지 편집위원으로 시를 쓴 적 있다. 하지만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썼다.”

    시에 눈을 뜬 건 20살 무렵이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시절. 옛 마산 합성동의 먼지 가득한 헌책방에서 청아출판사에서 나온 ‘현대시 세계’란 책을 보았다. 그 책에서 80년대 우리 문단을 주름잡던 최승호 이성복 황지우 김혜순 이하섭 시인들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시골 학교의 교과서에서 접해보지 못한 전혀 차원이 다른 시를 만났다. 그녀는 최승호의 ‘북어’란 작품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고백했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일렬로 꿴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을 가진 북어를 보고 시인은 죽음과 부패한 사회를 이야기했고, 그러면서도 연민을 느끼게 하며 ‘거봐, 너도 말린 북어지’라며 되물었다. 문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북어가 ‘너도 북어에 불과하다’고 얘기할 수 있구나. 내가 바라보는 대상도 나에게 뭔가 얘기해 줄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최승호의 ‘북어’는 그녀에게 첫사랑과 같은 시였다. 시를 쓰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그녀는,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최승호 시인을 따라 그 잡지에 투고하고 여러 시 잡지를 사보고 공부했다. 24살 결혼한 뒤 시에 매달렸다.

    “시 잡지를 20개 정도 정기구독했다. 열정적으로 시를 가르친 고영조 선생님 등 많은 시인을 만났다. 당시 월세 사는 형편에 아기를 돈 주고 맡기고 시 공부하러 다녔다. 죽기 살기로 공부하듯이 시를 배우고 썼다.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했고 벽에도 메모했다.”

    그리고 1995년 7월 27세 때, 그녀는 최승호 시인처럼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심사위원은 정진규, 김종해, 이근배 시인이었고, ‘산문시인데도 리듬이 살아 있고 모국어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관념어에 육체성을 잘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등단 이후 잡지사의 원고 청탁이 잇따랐고 ‘현대문학’, ‘시와 반시’ 등에도 시를 발표했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고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천년의 시학)’란 제목의 첫 시집을 냈다. 등단한 지 10년이 지나서다. 등단 이후 대략 200여 편을 여러 잡지에 발표했다. 시집으로 묶으면 세 권은 될 분량이었지만 시집을 꼭 내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다고 했다.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의 제2부는 ‘무덤 박물관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23편의 연작시로 되어 있다. 설명을 부탁하자, 그녀는 당시 김해고분박물관을 6개월간 1주일에 한 번꼴로 갔으며 박물관이 자신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어린 시절 공동묘지에서 뛰어놀았던 것처럼 어른이 되어서 훌훌 던지고 고분박물관에서 편하게 쉬었다고 했다.

    “내 유년시절이 박물관 속에 유적이 되어 있더라. 거기서 어떤 집착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언어로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 그 전엔 너무 심각했는데, 편하게 진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을 묶을 용기도 생겼다. 그때 발표한 것만 120편이 넘었다.”

    한때는 나도 무덤 위를/ 마구 뛰어다니며 놀았지요/ 힘껏 무덤을 밟으며 뛰어놀 때는/ 생이 봉긋한 무덤처럼/ 아름다울 거라 기대했었지요 (‘봄의 幻 - 무덤 박물관’ 중에서)

    그녀는 시집 ‘自序’에 ‘죽음은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불멸이다./ 김해고분박물관을 어슬렁거리며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곳에서 줄곧 아름다운 시간의 복원에 대해 생각했다./ 사라지지 않는 죽음.’이라고 적었다.

    “무덤은 둥글고 모나지 않아 편하다. 고분박물관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의 흐름을 보면 위로가 된다. 죽음은 두렵지만 인간이 작고 나약한 존재라는 걸 긍정하면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신이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믿으면 오만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때 훨씬 겸손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작품을 쓰는 시간은 조금 특이하다.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를 ‘근무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직장인이 매일 출근하듯 하루 근무시간을 지킨다고 했다. 해서 오전 10시나 11시쯤 기상한다.

    “그 시간이 가장 조용하고 집중도 잘된다. 습관이 되어 근무시간에는 잠도 안 온다. 글 쓰고 책 읽고 생각하는데 침해받지 않는다. 시인이 직업이 될 수 없겠지만 하루 몇 시간은 시간을 지켜 근무하려 한다.”

    ‘좋은 시, 좋은 시인이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좋은 시라고 말하는 게 사실 웃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의 어떤 시는 좋은데 어떤 시는 아니다고 하는 말도 오류다. 누구도 100% 다 잘 쓸 수 없다. 지역의 경우 잘 쓴 시에 대한 집착, 백일장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있다. 이 판을 넓게 봐야 한다. 좋은 시는 남과 다른 시다. 차별화가 어렵다.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형상화하는 게 어렵다. 남이 하지 않은 걸 할 때 우리는 열광한다.” 그러면서 도내서 다르게 시를 쓰는 사람으로 김이듬, 이제니 시인을 꼽았다.

    그녀는 시 쓰는 사람이 문명이나 세속의 삶에서 동떨어져 포장되거나 보통 사람과 차별화되어 특별하게 비쳐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인도 욕망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그녀는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영화를 보는데 평일 오후 영화관 맨 뒷자리서 혼자 앉아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가 가진 사치라면 책, 영화, 커피뿐 그 외는 관심 없단다. 그리고 ‘시인은 스스로 궁핍 속으로 걸어간 자’라는 말이 있다며, 자신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진 에너지가 적어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해 서울문화재단 ‘2012 예술창작지원-문학’ 지원사업의 시 부문 대상자로 선정돼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을 받았다. 이 지원금으로 올해 두 번째 시집을 낼 예정이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 기다려진다.

    ◇박서영 시인= 1968년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부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1200만 원, 2010년 제2회 요산기금 500만 원을 받았다. 시집으로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2006)가 있다. 지난해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을 받았다.

    글= 이상규 기자 sklee@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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