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7일 (수)
전체메뉴

[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36) 배한봉 시인이 찾은 창녕 남지철교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친구, 누군가에겐 역사

  • 기사입력 : 2013-02-28 01:00:00
  •   












  •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적되는 것이다. 누적된 시간의 방식이나 형태 등에 따라 우리는 화석이니, 유물이니, 유산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 남지철교도 그중 하나다.

    남지철교는 일제 강점기인 1931년 가설 공사를 시작해 1932년 겨울 완공됐고, 그 이듬해 2월 개통했다.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교량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6·25전쟁 때 중간 부분 25m가 폭파됐다가 복구되는 아픈 역사를 겪기도 했다. 1993년 차량 통행이 금지됐고, 새 남지교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남지철교는 근대문화유산 제145호(2004년 12월 31일)로 등록됐다.

    남지철교 쪽으로 가다가 나는 낙동강 둔치에 마련된 공원을 한 바퀴 휘둘러본다. 몇 년 전만 해도 감자밭 무밭 등이 즐비하던 땅이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4월 중순에는 온통 유채꽃이 피어 축제장이 되는 곳이다.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볕 좋은 곳에 강홍운 시비가 있다. 강홍운은 1939년 동인지 ‘초원’에 시를 발표하였고, 1941년에 시집 ‘노방초’, 1973년에 ‘노방초후집’을 발간했다.



    아침엔/ 안개 감돌아 오르고/ 저녁엔/ 노을이 피어 잦아지는 곳//

    천만년 흐르는/ 푸른 물줄기/억만겁 우뚝 솟은/ 저 절벽//

    이 언덕/ 저 들에서/ 아버지도 살으셨고/ 할아버지도 살으셨다//

    내 서 있는 곳/ 흙 냄새 그윽하고/ 뺨을 스치는 바람/ 이다지도 화사한고//

    산이여/ 들이여/ 내 이 땅에서 살고지고/ 우리 다 함께/ 여기서 살고지고

    -강홍운, ‘낙동강’ 전문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가로질러 창녕 남지와 함안 칠서를 잇는 철교 2개가 나란히 보인다. 파란색은 등록문화재인 옛 남지철교, 주황색은 새 남지교다. 새로 생긴 남지교도 철교이지만 사람들은 남지철교라 부르지 않는다. 남지철교 하면 여전히 옛 철교를 말한다. 아무리 새 철교가 들어서도 옛 남지철교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남지철교 입구에 서자 노거수(老巨樹) 세 그루가 길 양쪽에 수문장처럼 서 있다. 철교의 창녕 쪽 강변 둔치에는 넓은 녹지가 조성되고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반면 함안 쪽 강변은 가파른 절벽의 끝이 낙동강에 담겨 있다. 나는 천천히 남지철교를 걷는다. 철교 상판 위로 콘크리트를 덮어놓아 이 길은 이제 사람과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다. 내가 어릴 때는 남지로 가려면 웃개나루에서 배를 타거나 이 철교를 건너야 했다. 어머니나 할아버지 옷자락을 잡고 남지철교를 건너던 생각이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떠오른다.

    철교 아래로 시퍼런 낙동강 물살이 일렁이며 흐르고, 센 강바람 때문인지 다리도 강물따라 일렁이는 것만 같다. 나는 철교를 걸으며 소통을 생각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소통이라 해도 별 무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소통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단절과 불통의 징후가 더 심화되어 나타나는 듯하다.

    한때는 ‘명박산성’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또 한때는 ‘희망버스’를 겨냥한 물대포로 단절과 불통을 보여주더니 얼마 전에는 부정과 비리로 복역 중인 측근과 인척을 특별 사면하는 부조리한 ‘소통’으로,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 없는, 돌파구 없는 불통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말하기 싫은 것은 회피하는 일방적 소통, 소통의 다른 한 축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한갓 선전이나 기만의 도구로 전락시켜버리는 단절과 불통의 시대는 이제 이쯤에서 막을 내리고, 두 번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란다.

    가끔씩 운동 삼아 교량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고, 자전거 여행객이 어쩌다 지나기도 한다. 지금이야 남지철교를 오가는 사람이 몇 안 되지만 옛날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철교를 건너 다녔을까. 그들에게 남지철교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추억이며 친구이며, 역사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지워진다고 여기지만, 기억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잠재되는 것. 현재적 진술기억이 잠재적 기억으로 몸을 바꿀 뿐이다. 그렇다. 남지철교는 우리의 삶의 현장이며, 온몸의 시간이 기록되고 집적된 화석이다.

    남지 쪽에서 철교를 3분의 2쯤 걸어와서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쪽을 보면 풍경이 장관이다. 낙동강물이 병풍처럼 펼쳐진 용화산 암벽을 거대한 팔로 감싼 듯하다. 그 암벽 위 평지에 능가사가 고요하고 평화롭게 앉아 있다. 능가사에는 문화재 자료(396호)로 등록된 칠성탱화가 있다. 이 절터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용왕제를 지내던 용담터였다. 그리고 이곳 남지철교로부터 8㎞쯤 하류에 ‘창녕함안보’가 있다.



    저 강, 참 오래 절벽 끌어안고 있다
    절벽을 끌어안고 절벽이 새겨 놓은 문장을 읽고 또 읽느라 팔이 1,300리나 길어졌다, 길어진 팔로 이제 산이며 들판까지 죄다 끌어안고 있다

    강물이 끌어안고 있는 시간의 푸른 멀미들은, 늙어도 여전히, 아직 힘줄 팽팽하다

    윗녘 아랫녘 곳곳,
    없애버린 무수한 것들로 배를 채운 콘크리트 괴물이 명물로 등장했다는 풍문을 안개가 전해주었지만, 그것은
    장물아비들이 성급히 처리하느라 미처 의심의 꼬리를 확인하지 못한 인조 도마뱀 같은 것

    저 강이 수천만 년 절벽과 주고받은 수작은
    얼마나 아름다운 뿌리인가

    천년만년 오로지, 끝까지 1,300리 외길의 시간을 시퍼렇게 늙어가는 강

    -필자 拙詩, ‘외길의 시간을 안고 있는 강’ 전문, <현대시학> 2012.



    함안 칠서 쪽에 도착해 교량 표지석을 보니 ‘단기 4267년 12월 준공’이라 음각되어 있다. 교량 입구에는 “이 시설물은 창녕과 함안 사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설치한 근대식 트러스 구조의 철교이다. 철근콘크리트 T형 다리로 상부 철골트러스교의 트러스는 교각부분을 더 높게 설치하여 마치 물결이 치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이 시기에 제작한 철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우수한 다리로 평가받고 있다”는 문화재 안내문이 서 있다.

    우측 용화산 기슭에 홍포서원유허비가 있다. 다리 입구 조그마한 가게를 지키는 노인은 능가사 절 뒤 평평한 곳에 홍포서원이 있었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없어졌다고 전해준다.

    남지철교 옆 강변에 밑동이 썩어 동공이 생긴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함안군 보호수(12-00-52호)로 지정된 500살 먹은 노거수이다. 노거수는 그 자체로 한 그루 역사다. 집적된 시간의 깊은 마음으로 제행무상의 강물을 오늘도 바라보고 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웃개마을이 나온다.

    웃개는 나루가 있던 곳. 웃개나루는 마산과 대구를 잇던 큰 나루였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지장을 갔다. 어머니 손을 잡고 멀미를 앓으며 강을 건너곤 했던 웃개나루. 황량한 모래밭에 갈대며 물억새가 돋아 쓸쓸하게 쓸리며 휘어질 뿐. 나루터 마을인 웃개를 한 바퀴 돌아보고, 이번에는 새 남지교를 걸어 다시 남지로 간다.

    글·사진= 배한봉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