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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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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박충근 김해야학 교장

“배우지 못한 아픔 보듬고 희망 키워주죠”

  • 기사입력 : 2013-03-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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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충근 김해야학 교장은 김해중앙여중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여중에서는 수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야학에서는 사회 과목을 맡아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해야학 박충근 교장(왼쪽부터), 박병진 교사, 김성철 교사가 부원동 김해야학 교실에서 교무회의를 하던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녘 바람 속에 한 자락 봄 기운이 묻어난다. 졸업과 입학으로 들뜬 이때, 배움에 대한 한을 풀어주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복지 실천가를 찾아 나섰다.

    김해야학 박충근(53·김해중앙여중 교감) 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월 27일 오후 김해시 부원동 김해시청 인근 김해시다문화센터(옛 김해시보건소)에 마련된 김해야학 임시교실에서 박 교장으로부터 야학과의 인연과 야학의 의미 등을 들었다.


    ◆야학의 의미는

    “야학은 시대가 낳은 아픔입니다.” 박 교장은 우리 사회 야학의 형태는 일제 강점기부터 산업화시대까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 왔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50~70대는 해방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배움에 대한 한을 풀고, 낮은 학력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열등감에서 벗어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게 야학입니다.”

    또 “10~20대 청소년들에게는 가정적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규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교육의 기회를 줌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처럼 배우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복지를 실천해 이들이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 자아를 실현하도록 돕고 있는 기관이 야학이라고 박 교장은 설명한다.



    ◆야학과의 인연

    박 교장이 야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의 한 대학 사범대학에 입학하면서 가르침에 호기심을 갖게 된 그는 마침 대학 내 지하교실를 빌려 운영되고 있던 야학에 들어가 교사로 활동하면서 야학과 평생 인연이 됐다.

    당시인 1980년대 초반은 지금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들에 대한 국가적 복지 혜택은 거의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곳은 아주 열악한 환경의 소규모 가공공장, 가내 의류공장뿐이었다.

    당시 야학생들은 남녀 비율이 3:7 정도로, 주로 20대가 주축을 이루고 10대, 40~50대, 드물게 60대도 있었다. 대부분 농·산·어촌에서 대구로 일하러 왔거나 도시 빈민촌 자녀들이었다. 이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야학에 다니는 주경야독의 어려움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세상 어떤 학생들보다 강했다. 6만~7만 원 내외의 월급은 고향에 절반 정도 송금하고 나머지 남은 돈으로 방세를 내고 나면 식사는 라면이나 국수가 주식이었다.

    “못 먹어서 얼굴은 창백하고 부은 상태고 위장장애 등으로 수업 중에도 끄~억 끄~억 하는 소리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박 교장은 난방비를 마련하기 위한 일일 찻집을 열고, 학생 모집을 위해 수업을 마치고 어두운 골목길을 다니면서 전봇대나 담벽에 전단을 붙이고 다니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같은 또래의 야학생들과의 생활은 때론 친구같이 때론 형·아우같이 때론 교사로서 함께한 대학생활이 졸업 후 교단에서의 학생교육에 든든한 바탕이 되고 있다.


    ◆김해야학과 인연은

    박 교장은 1989년 김해중앙여자중학교(사립)에 부임해 교직생활을 하던 중 김해의 야학에 발을 디뎠다. 1998년 원불교 서김해교당에서 개교한 삼동야학이 교당 사정으로 폐교되자 당시 교사로 활동했던 김두규, 하해숙 선생과 함께 야학생들의 애절함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새로운 야학 설립을 물색했다. 마침 인제대학교가 위탁운영을 하게 된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이 개관해 초대 관장인 이성기 관장의 배려로 교실을 확보하고 1개월여 만에 교사와 학생을 모집해 김해야학을 운영했다.

    초대 김해야학 교감으로 참여한 그는 교감을 물려주고 수업교사로서 활동하던 중 이성기 초대 교장의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2010년부터 교장을 맡고 있다.



    ◆김해야학은 어떤 곳

    김해야학은 100% 무료이며 무보수로 재능기부를 하는 24명의 자원교사는 모두 사회인으로 구성돼 있다. 현직교사, 퇴직교사, 전문직, 회사원, 학원강사, 가정주부 등 다양하다.

    2011년부터 5870부대원 중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병사를 대상으로 고졸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부대로 찾아가서 수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다수의 학생이 합격해 제대 후 새로운 출발을 하는 데 작은 뒷받침이 됐다.

    또 1999년부터 ‘김해야학 교육봉사단’을 운영, 지난 2011년에는 자원봉사대축제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 야학교장의 보람과 바람

    박 교장이 김해야학을 만든 뒤 모두 222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졸업했으며, 수료생은 6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그는 매 시간 열정적인 학생들과 더불어 수업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또 학생들이 목적을 달성해 졸업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보람이다.

    그는 김해야학이 김해종합사회복지관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고 현재는 공사 관계로 더 열악한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학생들이 안정되고 쾌적한 환경에서 수업받을 수 있는 교실과 교사들이 수업준비를 할 수 있는 교무실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야학을 모르거나 용기가 없어서 배움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움에는 때가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배움의 출발점입니다. 또 진정한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으로 노력해 주는 전·현직 야학 선생님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모두들 복지를 외치지만 남다른 열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묵묵히 교육복지를 실현하는 박 교장과 같은 야학교사들이 있어 사회는 한층 더 따뜻해 보인다.


    ☞박충근 김해야학 교장은

    1960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창원대 대학원(교육철학)을 졸업했다. 초등학교 교편을 잡아 평생을 학생들을 위해 노력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교직을 택했으며, 1998년부터 김해야학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독서, 여행을 즐기며 등산과 유도로 체력을 다진다. 가족은 부인 한근옥(이룸발달상당소 운영) 씨와 1남1녀가 있다.


    글= 김진호 기자 kimjh@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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