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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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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9) 산청 신등면 정취암에서 바라보는 풍경

아스라이 출렁이는 능선의 선율

  • 기사입력 : 2013-03-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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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대성산의 정취암 위쪽 바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겹겹이 겹쳐친 산 능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기암절벽 아래 자리 잡은 정취암.
    정취암이 있는 대성산을 휘감아 올라오는 꼬불꼬불한 도로는 오도재를 연상하게 한다.


    산청군의 비경은 ‘산천(山川)’이다.

    산과 천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 자리는 당연 지리산이다. 지리산 등반이 힘들다면 황매산도 좋다. 이마저 힘들다면 딱 한 곳 명당이 있다. 산청 9경 중 8경에 속하는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에 있는 정취암이다.

    기암절벽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풍광을 찾아 지난 4일 정취암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에 ‘정취암’을 입력하고 안내를 따라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 정취암은 지난 2010년쯤에 도로가 만들어져 사찰 바로 옆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다.

    이날은 운이 나빴다. 공사 중인 굴착기에 막혀 더 이상 차량이 들어갈 수 없었다. 도로 자체를 모두 뜯어내는 공사라 도보로 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정취암을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 할 처지였다.

    “정취암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공사 관계자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정취암으로 가는 길은 사실 두 곳이다.

    차량으로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에서 둔철산로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정취암 첫 안내판이 나온다. 이 표지판을 무시하고 5분 정도 더 가면 또 하나의 안내판이 나온다. 그러나 두 번째 안내판을 따라 정취암으로 가려면 차량을 세워두고 가파른 산길과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15분 정도 산을 오르자 정취암의 한 지붕 처마가 소나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다. 막바지 돌계단을 5분 정도 오르자 기암절벽 아래 고요하게 자리 잡은 정취암 사찰이 눈에 들어온다.

    ‘절벽 위에 핀 연꽃’이라 불리는 정취암은 사찰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볼거리다. 하지만 사찰 감상은 일단 제쳐두고 기암절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보기 위해 사찰 뒤안길로 5분 정도를 더 오르니 큼직한 너럭바위가 나온다.

    너럭바위 끝에 서자 그제서야 기다렸던 산천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앞 반경 180도가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산 능선 넘어 여러 개의 산 능선이 차곡차곡 모여 선율을 만들어낸다. 산 능선이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끝이 없다.

    진주로 향하는 앞쪽과 합천으로 향하는 왼쪽, 지리산을 향하는 오른쪽으로 이름 모를 산들의 능선이 빼곡히 늘어서 퍼런 하늘과 뚜렷한 경계선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산세 절경은 마치 지리산 중턱에 올라 서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날씨가 더없이 맑다면 지리산 천왕봉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럭바위 위 돌탑과 고사목은 멀리 보이는 산 능선들과 어우러져 정취를 더해준다. 비 오는 날 정취암을 찾으면 구름과 산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운치에 또 한 번 감탄한다고 한다.

    아래를 보니 4~5개 마을의 대지와 작은 산들이 또 하나의 비경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정취암이 있는 대성산을 휘감아 올라오는 꼬불꼬불한 도로는 마치 지리산 오도재를 연상하게 한다. 한 마리 뱀이 산을 휘감아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다.

    이처럼 탁 트인 시원함을 느끼고 나면 적막함과 고요함이 한없이 몰려온다. 소리 없는 산세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산 능선에 둘러싸여 한참을 너럭바위에 앉아 있다 보면 한없이 초라해졌던 나의 존재감이 오히려 부각되는 듯 기운이 솟는다.

    이 같은 상반된 매력이 정취암 조망을 산청의 9경 중 하나로 선정하게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이런 비경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정취암 창건 설화를 보면 대성산에 정취암이 창건된 때는 686년(신라 신문왕6)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췄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圓通庵)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淨趣寺)를 창건했다. 정취사는 조선 효종 때 소실됐다가 봉성당 치헌선사가 중건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옛 단성현(丹城縣) 북방 40리에 위치한 대성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정취암은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 해 예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고 있다.

    산청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정취암 바위 끝에 서서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천장 만장 높은 곳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는 시원함과 함께 적막과 고요 속에 속세를 벗어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정취암의 전경도 감탄을 자아낸다. 차로 둔철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이는 정취암은 절벽에 매달린 사찰처럼 보인다. 절벽에 큰 구멍을 파 사찰을 넣은 듯한 형상이다. 날카로운 절벽에 자리한 온화한 사찰은 ‘절벽 위에 핀 연꽃’이란 별칭을 얻기에 손색이 없다.

    정취암을 떠나기 전 사찰 내 문화재도 둘러보자. 정취암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 산신탱화와 제314호 목조관음보살 좌상이 보존돼 있다.

    산신탱화는 가로와 세로 각기 1.5m의 불화로 1833년(순조33)에 제작됐다.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행차하는 것을 협시동자(挾侍童子)가 받들고 있다. 또 목조관음보살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50㎝ 크기의 불상으로, 안정감이 있고 단아한 인상을 준다.

    글= 김호철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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