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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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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81) 황강 29 합천 화양리 묵와고가~오도산자연휴양림

노란 꽃망울·집주인의 고운 마음…봄길서 행복을 만나다
묘산면 화양리 조선 중기 문신 박소 신도비
‘파리장서’ 참여 윤중수 생가 ‘묵와고가’도

  • 기사입력 : 2013-03-1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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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천 박소 신도비.
    야천 박소 재실.
    묵와고가의 솟을대문.
    묵와고가의 사랑채.
    묵와고가 방문객용 긴 의자.
    오도산에서 바라본 풍경.
    천연기념물 화양리소나무.
    오도산 가는 길.
    오도산자연휴양림.
    오도산의 해맞이 장소.
    오도산 정상 주변의 돌탑.



    이른 아침 새벽길을 나서며 진정한 삶의 가치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삶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유년시절부터 종교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지오폰티는 그의 저서 ‘건축예찬’에서 성직자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간을 형성하고 인간에 대해 예언한다고 했다. 성직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첫 번째 직업이라는 뜻이다. 종교에 대한 의문은 우리 땅 순례를 하다 우연히 경북 선산에 있는 작은 산사에서 풀었다. 그곳에는 오갈 데 없는 무의탁 노인들이 생활을 의탁하고 있었다. 비구니 스님께서 병든 노인을 수발하며 던진 말은 “어느 종교를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교로 인하여 마음에 평화가 오고 그 평화로 인하여 행복하다면 진정한 종교가 아닌가?”라고 했다. 스님의 진정한 행복은 종교가 아니라 병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심어 주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야천신도비, 박소 재실

    주말 아침 합천으로 가는 발걸음을 잠시 머뭇거렸다. 오늘 찾아가는 합천 묵와고가는 지도상으로 보면 창원에서 사다리꼴 모양이다. 거리로 측정을 해보니 국도와 지방도로를 이용하면 거리는 가깝지만 시간적으로 오래 걸리고 중부고속도로와 올림픽고속도로 이용하여 대구를 거쳐 고령 나들목으로 가면 거리는 멀지만 시간은 30분 정도 빠르다. 나는 늘 후자를 택한다.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경북 고령 땅으로 들어서니 이른 아침인데도 도로변에 친환경, 무공해라고 즐비하게 간판을 내건 특산품 딸기 판매점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여행길에 구입한 물건이 집에서 별로 칭찬을 받은 경험이 없어 그냥 지나칠까 하다 농촌 경제를 살린다는 거창한 구호는 아니어도 무공해라고 하는 말에 딸기를 샀다. 딸기를 사면서도 정말 무공해일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늘 정직이라는 가치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천불산 아래 청량사에서 지방도로 1084번을 따라 가야면과 야로면을 지나면 묘산면 묵와고가로 가는 길이다. 고령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분기 삼거리에서 국도 26번을 따라 거창 방면으로 3.5km쯤 가면 버스정류장에 묵와고가와 야천신도비, 화양리소나무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깊숙한 계곡 같은 길로 들어서면 보이지 않던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초입에서 보면 오른쪽 낮은 언덕에 야천 박소를 기리는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는 옆에는 봄까치 꽃이 자줏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급하게 겨울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왔던 개구리 한 마리가 추운 날씨에 버둥대고 있었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록해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소(1493∼1534)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박소는 학문에 뛰어난 사람으로 중종 14년(1519) 대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홍문관의 부수찬, 사간원의 사간 등을 지냈으나 훈구파의 미움을 사서 1530년 파직당하고 고향인 합천에 내려와 학문에 전념했다. 신도비는 높이 210㎝, 너비 90㎝, 두께 30㎝로 비문은 박순이 짓고, 한호가 글을 써서 1590년(선조 23년)에 건립했다. 그의 묘지는 서쪽으로 600m에 있고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신도비에서 내려서면 박소의 영정이 있는 재실이 있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인근 양파 밭에서 젊은 농부가 동력 분무기를 이용하여 긴 줄을 끌어가며 액체를 뿌리고 있었다. 농약인가 싶어 궁금해서 물었더니 발효미생물이라고 했다. 농부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친환경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와 감독을 받는다고 하며 친환경 표지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농산물에 대해 막연한 농약 불안감이 있었는데 봄날 들판에서 땀 흘리는 성실한 농부를 만나고 나니 조금은 이해되었다.



    ▲화양리 묵와고가. 화양리소나무

    묵와고가는 야천 신도비와 가까운 묘산면 화양리 485에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마을회관 부근에 오석으로 된 애국지사 윤중수의 비석이 있고 생가 묵와고가는 마을 끝자락에 있었다. 고가 대문 앞에 서니 산수유에서 금방이라도 노란 꽃망울이 터질 것처럼 피고 있었다. 계단 위에 솟을대문이 있고 문설주에는 ‘독립유공자의 집’이란 작은 명패가 있었다. 1919년 유림에서 일으킨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했던 만송 윤중수의 생가임을 알리는 표지이다. 묵와고가가 처음 지어진 것은 조선 인조 때 만송의 10대조 윤사성에 의해서라고 전한다. 한창때는 담장 안에 여덟 채의 기와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솟을대문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채, 안채, 사랑채만 남아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이다. 사랑채 처마에 ‘고요하고 초라한 집’이란 뜻의 默窩古家 현판이 있다. 담장이 있는 마당에는 방문객을 위해 나무를 다듬어 긴 의자를 만들어 놓아 앉아 고택을 감상하게 배려한 주인의 마음이 곱다. 사랑채는 마당보다 훨씬 높게 기단을 쌓고 ‘ㄱ’자형으로 지었는데,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내루가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내루에 앉으면 자연을 고택으로 끌어들인 집주인의 안목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채의 오른쪽으로 중 행랑채가 이어지고 거기에 중문이 있어 안마당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집주인을 만나지 못했는데 안채에서 사람소리가 들려 대문을 두드려 인기척을 했다. 안주인 황정아(☏932-6403) 씨가 나오며 연락을 하고 오면 좋겠다고 했다. 고색창연한 안채 마루에 앉아 들판에서 따서 만들었다는 국화차를 마시며 고가를 지키는 어려움을 들었다. 안채는 행랑채보다 한 단 높은 기단 위에 있으며 ‘ㄱ’자형이었다. 안마당 오른쪽에는 창고가 있으며 창고로 가는 길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싶었다. 안채 왼쪽 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당이 있다. 고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루를 묵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묵와고가에서 5리쯤 되는 곳에 있는, 5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289호 화양리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목이라고도 부른다.



    ▲오도산, 자연휴양림

    묵와고가를 나와 거창 방향으로 여정을 잡아 국도 26번으로 들어서는데 앞서 가던 승용차에서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직장 정년을 앞둔 부부가 귀농을 하려고 한다며 묵와마을이 있는 화양리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고 했다. 고택을 소개해주고 바쁜 길을 재촉하다 흙사랑이라고 하는 청담도예에 잠시 들렀다. 형형색색 수량도 많지만 손으로 빚어낸 아름다움을 내 실력으로는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묘산면 사무소를 지나면 오도산으로 가는 콘크리트 좁은 산길이 나타난다. 오도산을 등산해본 사람이라면 해발 1134m를 가볍게 여길 것이다. 1982년 한국통신이 오도산 정상에 중계소를 세우면서 굽이굽이 콘크리트 포장길을 닦았다. 자동차로 도로를 이용하면 약 9km인데 30분쯤 걸린다. 비록 정상은 중계소로 막혔지만,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하다. 중계소 마당을 개방해 두었고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풍경이 가장 좋은 곳은 정상에 조금 못 미치는 곳이다. 사방이 탁 트여 일출 촬영에 그만이다. 지금 같으면 환경을 파괴한다고 중계탑 세우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군데군데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고 해맞이 비석도 세워져 있었다.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염원을 담은 막돌탑이 오도산을 지키고 있었다. 오도산휴양림은 묘산면 소재지에서 거창 방향으로 3km를 가면 커다란 이정표를 만난다. 휴양림은 사람의 생체 리듬과 신체활동이 가장 이상적인 높이라고 하는 해발 700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깊고 깊은 계곡을 끼고 있어 물길을 따라 걷거나, 계곡 옆에 앉아 맑은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무릉도원이라 할 만하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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