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금요칼럼] 보육료 놓고 싸우는 정부와 지자체- 박현오(논설실장)

앞다투어 출산장려금 주더니 보육료를 못 주겠다니 무슨 소린가…

  • 기사입력 : 2013-03-15 01:00:00
  •   



  •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결혼을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취급했을까. 농업국가인 조선에서는 결혼을 장려하고, 결혼 문제를 지금의 국무회의와 같은 의정부(議政府)에서 논의하기도 했다.

    1478년, 성종이 예조에 지시를 내렸다. “요즘 장마가 몇 달째 계속되고 있으니 아마도 가난한 집의 처녀와 총각들이 제때 혼례를 올리지 못해 원광(怨曠)의 한이 혹 화기(和氣)를 범한 듯하다. 한양과 지방의 관리들은 관내의 가난한 처녀와 총각들에게 혼숫감을 넉넉히 주어 혼례를 올리게 하라.” 원광은 홀어미를 뜻하는 원부(怨婦)와 홀아비를 뜻하는 광부(曠夫)의 줄임말이다. 성종은 그칠 줄 모르는 장마가 혼례를 치르지 못하거나 홀로 독수공방을 하면서 한을 품은 이들의 분노 때문으로 생각했다. 기상이변을 음양의 조화가 깨져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종은 28살 먹은 노처녀를 시집보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태웠던 일화도 전해진다. 자나 깨나 걱정하며 관리들을 닦달했던 모양인데 결국 31살 먹은 노총각과 백년가약을 맺는데 성공하고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1426년, 세종대왕은 평안도로 귀양 간 귀화한 왜인 평도전의 딸이 가난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해당 지역의 수령에게 세종대왕은 혼숫감을 주어 시집보내라고 한다. 귀양을 간 죄인의 가족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세종대왕 때 조선의 인구는 600만~700만 명으로 추정된다. 곧 인구가 국력이었던 시절, 결혼과 출산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과제였다.

    베이비부머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웠던 시절, 결혼은 차치하고 우리 정부는 출산율을 줄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언론에서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캠페인에 열을 올렸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젊은 장정들을 대상으로 공짜로 정관수술을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셋째 아이를 낳으면 의료보험도 적용하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5000만 명을 돌파하고, 끝 간 데 없이 인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 우려도 잠시, 지금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낳지 않아 어느 시점에서는 한민족의 대가 끊길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실감케 하고 있다.

    출산율 줄이기에 나섰던 보건당국은 급격하게 떨어지는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80~90년대 공직자들이 자리 보전을 위해 방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 중 최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지난해 1.3명의 출산율을 보였고, 48만 명이 태어나 연 출산아가 5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출산율 높이기 대책의 결과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보육비와 교육비로 인해 젊은 부부들은 아이 갖기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린이 보육료 지원 배분을 놓고 티격태격 싸웠다. 또 젊은 부모들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시·군의 각 자치단체들이 줄어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앞다투어 인가 증가에 동참한 바 있다. 특히 군단위의 경우 첫째를 낳으면 몇 십만 원에서부터 셋째 아이의 경우는 500만 원까지 지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치단체는 어린이 보육료 지원에 국비가 90% 이상 지원되어야 하며, 국비가 지원되지 않으면 보육료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최근 일부에서는 보육료 중단 주장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출산장려금을 줄 때는 언제고, 보육료를 못 주겠다고 하는 것은 무슨 소린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입장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얼마 되지 않는 보육료를 받는 부모의 입장은 간데없다는 것인가.

    조선시대에도 결혼을 장려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걱정을 했다고 한다. 살기 좋아졌다는 현대사회에서 보육료 분담을 두고 싸우고 있는 꼴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박현오(논설실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박현오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