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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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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눈물 힐링(Crying Healing)- 성명남(시인)

  • 기사입력 : 2013-03-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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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이 끝나 가는 지난 2월 말경 친정어머니는 1차 검진기관에서 암 판정을 받았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거쳐 갖가지 검사를 하며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울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여든넷의 연세로 힘든 수술과 치료를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힘들지?” 묻는 친구의 한마디에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며 펑펑 울었다. 그제야 밥이 목으로 넘어갔다. 마음을 추슬러 어머니를 정성껏 지켰다.

    요즘 힐링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힐링(healing)은 치유하다, 고치다, 화해시키다 등의 의미로 지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자연 치유를 말한다.

    힐링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 눈물이 자가 심리 치유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시원하게 한바탕 울고 나면 어떤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우리는 눈물에 그리 관대하지 않다. 울 일이 있어도 주위에 괜한 걱정을 끼칠까 꾹 참고 본다. 하지만 다리를 쭉 뻗고 울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억지로 참기만 하면 심인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 같은 영화를 두 번씩 보면서 실컷 운 적이 있다. 지난해 관객 천만을 넘은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8년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 이르다”라는 한 줄의 글귀에서 역사 속에서 사라진 15일간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픽션 사극이다.

    권력 다툼으로 독살 위기에 놓인 광해를 대신해 천출 하선이 왕의 대역을 하면서 왕 노릇에만 그치지 않고 점점 정의로운 왕이 되어 가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독이 들어 있는 사탕을 입에 물고 대신 죽어간 어린 기미 상궁, 뒤늦게 가짜 왕임을 알고도 목숨을 바쳐 끝까지 왕을 지키려 했던 호위무사 도부장, 다시 천민으로 돌아가야 하는 하선을 먼발치에서 보내며 공손히 절을 올리던 도승지 허균의 촉촉하게 젖던 눈시울. 곳곳에 배치된 음악이 눈물을 부추겼다.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안의 응어리가 씻긴 듯 후련했다.

    한참 대선 기간에 일정이 빡빡했을 대통령 후보들 또한 이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정치적인 활용가치를 먼저 계산한 나들이였더라도 정작 ‘눈물 힐링’은 그들에게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늑대 소년’을 보러 갔던 날은 대입 수능을 마친 청소년들이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야생에서 자라 금수나 다름없는 소년에게 인간의 생활방식이며 말을 가르치지만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소녀도 마을을 떠나 결혼하고 자식도 낳고 어느덧 부유한 백발 할머니가 되어 돌아와 보니 그녀가 남긴 ‘기다려…’라는 쪽지 하나를 품고 무려 47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눈물이 넘실거렸다. 시험을 보고 난 뒤의 아쉬움과 후련함, 그간의 고생이 떠오른 탓도 있겠지만 안타까운 결말에 봇물처럼 감정이 터진 듯했다.

    쌓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일부 청소년들의 충동적 행동으로 학교폭력, 자살 등 청소년사회문제가 심각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어쩔 수 없는 학교라는 틀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기회는 많지 않다. 웃고 떠들고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는 그들에게도 어른들 못지않게 힐링이 절실하다.

    한 편의 영화에 눈물샤워를 한 건강한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출입구를 빠져나갔다.

    울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자고 일어나면 상상도 못할 사건사고가 생긴다. 그래서 함께 아프다. 아프면 치료를 해야 한다. 슬프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며 눈물바다에 풍덩 빠져 보자. 눈물은 신이 내린 자연 치유제다.

    성명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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