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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12) 사천 선진리성 벚꽃길

봄 깊숙이 들어가는 길

  • 기사입력 : 2013-04-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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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성 입구에 만개한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옛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鑑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鑑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일상에 쫓기는 오늘,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 2일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위치한 ‘선진리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천IC를 나와 사천대로를 타고 남해 방면으로 5분 남짓 달리면 선진사거리가 나온다. 표지판의 안내를 따라 우회전하면 선진리성까지 이어진 약 2㎞의 왕벚나무 가로수길을 만날 수 있다.

    왕벚나무 가로수의 수령은 20~30년, 선진리성 내부의 왕벚나무의 수령은 40~50년 정도다. 일대 총 10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소금을 얹은 듯 만개했다.

    왕벚나무 가로수길을 걸으면 많은 연인들을 만날 수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도 아름답지만 그중 일품은 50대 이상 초로의 부부다.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이야기하는 모습이 젊은 연인들 못지않게 다정하다. 이들을 시샘하듯 길가에 늘어선 왕벚나무도 10m가량 떨어진 도로 맞은편으로 가지를 뻗어 손(나뭇가지)을 맞잡고 있다. 선진리성에 가까워질수록 왕벚나무 가지는 더욱 울창하게 뻗어 벚꽃터널을 형성한다. 2㎞ 남짓한 이 거리가 부담스럽다면 선진리성에 차량을 주차하고 왕벚나무 가로수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선진리성 입구 주차장에는 여느 행사장처럼 노점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평일 낮인데도 100여 명의 관광객들이 노점에서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관광객들은 커피와 먹거리를 사들고 벚나무 아래 앉아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운다. 노점에서 흘러나오는 분주한 ‘트로트’ 가락조차 여유롭게 느껴진다.

    지난 1998년 11월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74호에 지정된 선진리성의 면적은 약 9만㎡로 현재 1㎞ 정도의 성곽만 남아 있다. 문이 섰던 자리인 문지(門址)와 장군이 올라서서 명령하던 장대지(將臺址)로 추정되는 구조물만 남고 대부분의 석루(石壘)는 붕괴됐다. 암석이 귀한 장소였기 때문에 흙과 돌을 혼합해 축조한 토석혼용(土石混用)의 성곽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성곽의 정상은 동서로 약 18m, 남북으로 약 20m의 아성(牙城, 주요 장수의 처소)과 그보다 한층 낮은 언덕에 날개처럼 펼쳐진 사각형의 딸림성곽(동서 약 18m, 남북 약 40m)을 두고 있다. 축조 당시 선진항의 북쪽에 위치해 서·남·북 3면은 바다에 접하고 동쪽만 육지에 접해 군사적 요충지였지만, 현재는 간척사업으로 서면만 바다에 접해 있다.

    성곽을 축조한 주체에 대해서는 우리 선조가 지었다는 설과 왜군이 지었다는 설로 나뉜다. ‘동국여지지’·‘사천현여지승람’ 등 고려시대 고서(古書)에는 선진리의 옛 지명인 ‘통양포’에 조세창고인 ‘고통양창’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명시돼 있고, 조선 선조 25년(1592) 이순신 장군의 제2차 사천해전 당시에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반면 선조 30년(1597) 왜군 모리(毛利吉城)가 퇴군의 거점으로 급히 축성한 것을 이듬해 왜장 시마즈(島津義弘)가 보수·완공했다는 설도 있다.

    주차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작은 벚꽃동산이 펼쳐진다. 바로 선진리성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격전지였지만, 낮은 언덕에는 벚꽃이 만개해 느긋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마침 선진리성을 오르던 한 꼬마가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끌며 “솜사탕 나무에서 솜사탕 비가 내린다”고 감탄했다. 아이다운 상상력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언덕을 오르면 오른쪽에는 성문이 있고, 왼쪽에는 야외공연장이 있다. 현재의 성문은 지난 2005~2006년 발굴조사와 성벽 보수공사를 거쳐 나타난 4개의 기둥받침돌과 2곳의 기둥구멍을 토대로 일본 ‘히메지성’의 성문을 본따 복원한 것이다.

    성문을 지나면 넓은 공원이 보이고 그 한편에 천수각터가 있다. 보수된 천수각터는 일본식 성곽의 가장 핵심이 되는 건물로 일본 전국시대에는 전망대·사령탑 등으로 이용됐고, 에도시대 이후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건물로 변모했다.

    천수각터를 지나 성곽의 끝으로 가면 사천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이곳은 선조 25년(1592) 5월 29일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해전 사상 최초로 거북선을 이끌고 출격한 곳으로 유명하다. 제2차 사천해전을 치렀던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함선 23척을 이끌고 거북선을 앞세워 왜적과 격전을 벌였다. 적선 13척을 완파하고 왜군의 수군과 육군이 전라도 방면으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했던 전과를 올린 의미 있는 곳이다.

    성곽을 한 바퀴 돌면 20~30m 정도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거리는 대나무 노랫소리를 들으며 빠져나온 곳은 야외공연장이다. 이곳에서는 벚꽃이 만개한 봄철을 포함, 매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 4일간은 사천시 ‘제18회 와룡문화제’가 개최된다. 문화제는 공연, 전시, 경연, 체험 등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벚꽃 길 보물찾기’, ‘소망 용(龍) 만들기 체험’, ‘와룡가요제’ 등의 행사가 치러질 예정이다.

    잠시 쉴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봄 소풍을 와서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 돗자리를 펴고 누운 연인들,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의 머리 위로 벚꽃잎이 떨어진다. ‘힐링(healing)’이 시대정신이 된 오늘날의 숨 막힘도 이곳에서만큼은 예외다. 편안함과 여유가 생기자 문득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화두가 떠오른다. 신영복 선생의 ‘감어인(鑑於人)’. 벚꽃 날리는 선진리성은 이 봄에 나를 돌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글= 정치섭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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