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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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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돈키호테를 기다리며- 이훈호(극단 장자번덕 대표)

삭막한 현실일지라도 그 안에 숨겨진 가치·희망·아름다움 찾아야

  • 기사입력 : 2013-04-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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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사는지? 곧 정체성의 문제가 오늘날 같은 혼란시대에 가장 현대적인 시의성을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21세기의 초입, 경쟁과 대결구도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는 예상했던 것보다 휠씬 더 많은 혼란과 혼돈으로 가득합니다. 가치 혼돈의 시대, 길을 잃었지만 길을 묻는 사람도 없는 시대, 물질이 신이고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갈등과 대립이 더 심화되었고 상생의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문제는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입니다. 경제가 좋아지는데도 자살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불편한 진실을 보게 됩니다. 자살의 근원은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우울증은 자기가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데서 생기는 불쾌감인데 자기 정체성의 부재입니다. 이상이나 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 꿈은 곧 생명입니다.

    돈키호테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꿈을 일깨우는 힘이 있는 인물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항상 이상과 현실 가운데서 갈등하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을 따라갑니다. 그저 세상이 하라는 대로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면서 삽니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취직하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우리의 모든 것을 맞춰 삽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룬 세상이 참다운 세상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상적인 삶을 위해 꿈꾸며 사는 부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돈키호테 소설이 씌어진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살던 시대는 산초의 한탕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스페인의 국민성은 근면과 인내라는 평범한 덕목을 저버리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가 기승을 부렸고, 그리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 극단 간의 골을 메워줄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이 없어졌습니다. 중산층은 방향을 상실한 사회의 잘못된 가치에 유혹되어 비생산적인 상류층에 편승하였습니다. 게으른 자가 잘살고 부지런히 일하는 자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데도 총신정치는 나라 전체가 간절히 원하는 대개혁이나 쇄신운동을 위한 청사진은 전혀 제시하지 못한 채, 유력계층의 미움을 살 만한 조치들을 회피하는 데만 유능했습니다. 그들은 면세혜택을 누리는 부유층과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빈곤층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재정정책은 주도면밀하게 회피했습니다. 자기 집안을 부자로 만들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세르반테스는 미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스페인을 일깨우고자 세상의 모든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에 목숨을 바칠 각오로 싸움을 하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은 돈키호테를 탄생시킵니다. 돈키호테가 달려들었던 풍차는 미래의 거대한 적이며 현실의 적입니다. 꿈꾸는 자가 처참하게 깨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을 조롱하듯 대단한 위용을 갖추고 오늘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키아노 돈키호테가 그 풍차에 몰두하고 좌절했다면 이제는 이 시대의 많은 돈키호테가 그 풍차 앞에 서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16세기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현실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사람들이 꾸는 꿈속에 삶의 진실과 사회 정의와 사람다움의 참 살림이 있음을,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현실은 그 꿈에 대한 믿음과 신념에 의해 변형된다는 것을, 역사는 이렇게 변해 왔음을.

    삭막하고 별 볼일 없고 초라한 현실일지라도 그 안에 숨겨진 가치, 희망, 아름다움, 고귀함을 찾아 세상이 살 만한 곳임을 일깨워주는 돈키호테를 기다려 봅니다.

    이훈호(극단 장자번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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