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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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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마을 아, 본향! (12)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

가야·신라 역사와 문화예술 향기 간직한 강변 마을

  • 기사입력 : 2013-04-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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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민 사랑방인 도요마을회관.
    마을 앞에 재배 중인 특산품 모래밭감자.
    연출가 이윤택씨가 조성한 ‘도요창작스튜디오’.
    도요창작스튜디오에 마련된 배우의 집.
    강변을 따라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고 있는 관광객.
    가야·신라시대 어업으로 번창했던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 마을 앞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어업으로 성시 이루던 곳

    가락국 시대 3000가구 넘게 살 정도로 번성

    지금은 감자·무·배추·쌀 등 농업으로 생계

     
    연출가 이윤택씨 ‘도요창작스튜디오’ 조성

    70석 소극장·도서관·문화체험장 등 갖춰

    극단·시인·소설가 등 창작활동 활발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에 먼 옛날 가야, 신라시대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 바로 도요마을이다.

    김해시 북쪽에서 밀양과 양산을 마주보고 있는 도요마을은 강과 산과 모래밭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강촌(江村)이다. 김해와 밀양 삼랑진을 잇는 철교와 오래된 기찻길이 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가야, 신라시대 3000가구 넘을 정도로 번성

    마을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가야, 신라시대 때는 이 강을 따라 배가 드나들면서 3000가구가 넘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강가에 도요새가 많이 날아와 ‘도요’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1000가구 이상이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도요저(都要渚)’, 또는 ‘도요진(都要津)’으로 불렸다. 이름에 ‘要‘가 들어간 것으로 봐서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 문신이었던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남긴 ‘도요저(都要渚)’라는 글에는 “김해와 밀양이 경계선에 있다. 이곳 주민 수백 호는 대대로 생선 파는 것을 업으로 살고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설명이 있는 것으로 봐 바닷가에서 고기를 받아서 육지에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마을 뒤 무척산 천지에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전설이 내려온다. 무척산 정상 바로 밑에 천지못이 하나 있는데 이 연못은 김수로왕이 마을의 물줄기를 잡기 위해 조성했다는 설화다.



    어업으로 잇던 생계 농업이 대신

    도요마을은 김해시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몇 안 되는 청정지역이다. 오지라서 그런지 공장이나 그 흔한 상점 하나 없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어업으로 성시를 이루던 마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이곳은 현재 56가구에 260여 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여느 마을과 같이 젊은이들은 외지로 나가고 부모들이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 마을은 언젠가부터 감자, 무, 배추, 쌀이 생업을 대신했다. 특히 도요마을에서 생산되는 모래밭감자는 맛이 좋기로 전국에서도 유명하다.

    도요 모래밭감자는 2월 말에서 3월 초에 파종을 해서 6월 중순께 수확한다.

    마침 감자밭을 둘러보러 나온 주민 이원열(60) 씨는 “주로 쪄먹는 ‘수미감자’를 키우고 있다”며 “700여 평에 감자를 키우고 있지만 종자 값, 비료값, 비닐 값 등을 빼고 나면 200만원이 채 안 남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 씨는 “조용하고 공기 좋고 강변이 있어 산책하기도 좋다. 사람 살기에 이만한 동네도 없다”고 마을 자랑을 했다.

    도요마을의 상징이던 넓은 감자밭은 4대강 사업으로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 강변에 조성된 수변공원은 마을주민과 이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이 마을을 가끔 찾는다는 윤영산(37·부산시 해운대구·요리사) 씨는 “무척산과 강, 철길, 철교, 자전거길이 있어 취미인 사진찍기에 안성맞춤이다”며 “도심 속에 살다 보면 이처럼 한적한 풍경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창작스튜디오 등 문화예술마을로

    조용하던 이 마을에 ‘도요창작스튜디오’가 만들어지면서 생기가 돌고 있다.

    ‘문화게릴라’로 잘 알려진 연출가 이윤택 씨는 2009년 이 마을 옛 도요분교 자리에 ‘도요창작스튜디오’를 만들었다. 1999년 밀양에 ‘밀양연극촌’을 만들었던 이윤택 씨는 우연히 이 마을을 찾게 되면서 “바로 이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도요창작스튜디오는 70석 규모의 소극장과 장서 5000여 권을 소장한 도서관과 문화체험장을 갖춘 종합문화공간이자 ‘연희단거리패’ 단원과 시인, 작가 60여 명이 활동하는 창작공간이다.

    이윤택 씨와 1980년대 초반부터 알고 지내던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소설가 부부는 2011년 가을 부산에서 이곳 창작촌에 이주했다.

    최 시인은 “강과 산에 가로막혀 굉장히 막다른 동네다. 마을사람들의 성품이 도시사람과 같지 않아 순수하다. 창작촌으로 들어올 때도 별다른 문제 없이 반겨서 고마웠다”며 만족해 했다.

    그는 “(마을주민들이) 연극연습 때문에 때론 시끄럽기도 할 텐데 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확한 농산물을 단원이나 식구 먹으라고 갖다준다”며 훈훈한 마을 인심을 전했다.

    연희단거리패는 외지로 공연을 떠나기 전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무료로 첫 공연을 하는 것으로 답례를 한다.

    창작촌이 생기면서 도요마을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작촌은 웹진도요(www.doyoart.com), 도서출판 도요 등을 운영하고 있다. 창작의 결과물이 매월 열리는 ‘맛있는 책읽기’와 ‘도요가족극장’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지난해 여름에는 창작촌 문화예술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도요마을 강변축제’를 처음으로 열어 관심을 끌었다.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깨끗하고 조용한 도요마을이 문화예술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수변공간에 유채·코스모스 심었으면”

    낙동강 사업으로 삶의 터전 일부가 사라진 데 대해 마을주민들의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 아직은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휑한 수변공간을 바라보면 더욱 그러하다.

    도요마을 정해윤(62) 이장은 ‘낙동강 살리기’에 이은 ‘마을 살리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생겨난 강변 자전거 도로 양쪽에 코스모스나 유채를 심어 꽃단지로 조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진호 기자 kimjh@knnews.co.kr

    사진= 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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