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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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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송교술 악기 제작·수리 장인

통 제작부터 도장·나무 무늬까지 ‘척척’
“나에게 악기 수리는 종합예술 작업이죠”

  • 기사입력 : 2013-04-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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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기 제작·수리 장인인 송교술 씨가 창원시 의창구 중앙동 개나리상가 1층 악기점 ‘현악기 수리실’에서 기타를 수리하고 있다.
    송교술 씨가 직접 제작한 미니어처 악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송교술(58) 씨의 작업장은 창원시 의창구 중앙동 개나리상가 1층 개나리악기점 옆에 있다. ‘현악기 수리실’이라는 소박한 현판이 달린 5㎡ 남짓한 좁은 공간. 언뜻 초라해 보이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그의 손을 거친 악기들은 마법처럼 새것으로 되살아난다.

    그는 악기 ‘장인’이다. 수리는 물론이고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그가 다루는 악기는 셀 수 없이 많다. 통기타와 클래식기타, 전자기타 등 각종 기타부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까지. 나무로 만들어진 현악기라면 무엇이든지 모두 수리하고 만든다. 가야금과 거문고도 고칠 수 있다. 경남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현악기 수리에 관해서라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전문가다.



    ◆악기에 관심 없던 고졸 청년

    송 씨가 악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40년 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원 도계동에서 태어난 그는 창원 토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에 있던 악기공장 ‘오아시스 악기’에 들어갔다. 평소 그의 손재주를 눈여겨보았던 친척 어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악기를 고쳐보기는커녕 통기타도 한 번 쳐보지 않았고 음악에 심취하지도 않았었다.

    그는 처음 접하는 곳에서 악기 조립하는 공정에서 일을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그의 기술을 인정한 공장에 다시 들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당시 악기공장은 모두 수작업 공정이긴 했지만 분업화돼 있었다. 기타의 통을 만드는 곳은 통만, 넥(neck)을 만드는 곳은 또 넥만을 만들었다. 송 씨는 조립반에 들어가 5년을 일했다.

    악기 제작에 흥미를 느낀 그는 좀 더 배워야겠다는 욕심에 일부러 다른 공정으로 옮기길 희망했고, 결국 모든 공정의 일을 다 해보게 된다. 어떤 악기라도 새것처럼 고쳐내는 능력은 악기에 대한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전 공정을 모두 거치고 남다른 열정으로 일했던 그는 작업반장까지 하고는 25년을 일했고, 독립해 지금의 악기점 수리실에 둥지를 튼다.

    수리실에 있는 작업대, 공구 하나하나 모두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50여 개가 넘는 도구마다 그의 오랜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연주자의 마음으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수입된 기타를 상자째 가져다놓고는 포장을 뜯고 있었다. 새 악기를 왜 뜯어서 수리를 하는지 궁금했다.

    “요즘은 국내에 악기공장이 거의 없어 수입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몇달 동안 배를 타고 온 악기들은 뒤틀리거나 휘어서 줄이 떠 있습니다. 그러면 손만 아프고 연주하기도 어렵죠. 대부분 초보자들이 힘들어서 그만두는데 악기 탓입니다. 저는 새 악기가 오면 사람들이 치기 좋도록 다듬어서 내놓습니다.”

    악기공장에 다닐 때도 그랬다. 악기공장에 일한다고 모두 연주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분업화된 공정에서 딱히 연주능력까지는 필요 없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선배 작업자들에게 연주를 배웠고 지금은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자랑한다.

    “당장 자기 눈앞에 필요한 일만 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하나하나 배우면 나중에 반드시 쓸모가 있죠. 악기를 만들고 고치는 일도 연주자의 마음으로 해야 하기에 일부러 연주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달인

    악기공장에서 일을 배우고 독립해 악기를 제작·수리한 세월이 벌써 40년 가까이 됐다. 단순히 줄을 가는 수준이 아니다. 그는 수리를 부탁한 악기를 새것처럼 만들어낸다.

    악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수리를 부탁한 악기를 분해해서 다시 만드는 수준으로 작업한다. 악기에 색을 입히는 ‘도장’까지 할 수 있기에 헌 악기를 가져오면 그야말로 새것처럼 바꿔 놓는다.

    이 정도 능력을 가진 이는 사실 국내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클래식기타는 물론이고 억대의 첼로도 수리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이른바 ‘능력자’다.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 국내에 악기도매상가로 유명한 낙원상가에서도 그의 능력을 인정한다. 낙원상가 수리점에서도 못하는 어려운 수리는 송 씨에게 맡기러 올 정도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단골로 찾는다.

    고가의 클래식기타를 주문 제작하는 소규모 공방에서 자신들이 만든 악기를 수리를 못할 때 어김없이 송 씨를 찾아온다. 많게는 하루에 20개 정도의 악기가 수리 들어올 정도여서 쉴 틈이 없다.



    ◆종합예술인

    악기는 만드는 일보다 수리가 더 어렵다고 한다. 악기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의 손을 거치면 처음 산, 아니 처음보다 더 좋은 모습과 소리를 내는 악기로 변한다.

    “통 제작에서부터 도장도 해야 하고, 나무 무늬까지 그려 넣어야 하니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종합예술’입니다. 만능재주꾼이 되지 않으면 수리를 할 수 없죠. 제대로 배우려면 최소한 10년 이상 걸릴 텐데.”

    “간혹 배우러 오는 이들이 있지만, 칼 갈고, 끌 갈고, 대패 가는 것, 청소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지만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진 이가 없어 안타깝죠.”

    그는 요즘 짬을 내 미니어처 악기를 만든다. 작은 기타 하나 만드는데도 일주일 이상 걸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50여 점에 이른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단순히 작은 크기의 기타가 아니라 실물악기를 세밀한 부분까지 그대로 5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악기 자체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작은 노력인 셈이다.

    “조그만 작업장에 틀어박혀 악기나 수리하는 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손을 거친 악기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제 뒤를 이을 ‘종합예술인’이 나올 때까지 더 열심히 해야죠.”



    글=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사진=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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