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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당국, 성폭력 피해자에게 상처 덧입히지 말라- 허영희(한국국제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수사·재판과정서 피해자 인권보호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 기사입력 : 2013-04-1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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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과 장애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외상 후 스트레스(트라우마)를 남기기 때문에 범죄자에 대한 형량 강화와 사후 관리,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속속 마련되고 있다. 대법원의 양형위원회도 최근 성범죄에 대한 양형을 상향조정하는 기준안을 마련했다.

    또한 성범죄 신고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성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일련의 정부정책과 관련 기관의 조치는 환영할 일이다.

    성범죄 피해자는 피해에 대한 이해와 반응, 요구 사항이 다른 범죄 피해자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성폭력범죄 전담 사법경찰관과 검사를 지정해 피해자를 조사하도록 하고, 전담재판부를 지정해 재판을 하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범죄 전담부서가 없는 곳도 있어 현실은 법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더욱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법당국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더하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집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성기 크기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고, 피해자가 “작았다”라고 대답하자, 가해자의 성기 크기가 각각 몇cm인지 말해 달라”며 재차 요구한 경찰관이 있었다. 심지어 “성폭행당할 당시 느낌을 말해 달라”, “성기의 특징에 대해 말해 달라”, “처녀막은 터졌냐”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경찰관도 있었다.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아빠랑 사귄 게 아니냐”고 따져 물은 검사도 있었고, 장애인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사실, 피해자가 학교에 결석하지 않았다는 점을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해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도 있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나”, “밤 늦게 다닌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으며,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으려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상식 밖의 왜곡된 성인식을 가진 사법당국의 태도에 의하면, 가해자의 유죄를 밝히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유죄의 경우에도 양형기준이 제대로 지켜질 리 없어서 결국 피해자에게 상처를 덧입히는 2차 피해를 유발하게 된다.

    성폭력 사건의 신고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용기 내어 신고한 피해자는 가해자의 유·무죄를 떠나 수사과정에서부터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피해를 입증받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처음에는 “왜 일찍 신고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다가 신고 후에는 “왜 내가 신고를 했을까”하고 후회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성폭력의 신고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모색하고 있다.

    90%의 숨은 범죄자의 재범을 막아 내기 위해서는 신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부터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로서 보호받기는커녕 2차 피해를 경험할 수도 있는 현실에서 과연 신고율을 높이는 정책이 효과가 있을까?

    형사 절차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폭력사건의 경우 실체적 진실 발견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성폭력은 성별 차이에 대한 감수성, 즉 성 인지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어투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성 인지적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법당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해 본다.

    허영희(한국국제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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