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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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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44) 송창우 시인이 찾은 창원 진전 거락마을과 적석산

왕버들 가지 끝에선 연둣빛 봄 피어나고
구름다리 아래에선 빛나는 봄 펼쳐지고

  • 기사입력 : 2013-04-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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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락마을 왕버들
    거락마을 푸조나무
    적석산 구름다리
    적석산의 신록과 일암 풍경
    글·사진=송창우


    #1 거락마을 왕버들 진전천의 봄은 거락마을 왕버들 잎사귀에서 가장 빛난다. 물관을 타고 늙은 나무의 가지 끝까지 올라온 봄은 투명한 연둣빛이다. 봄날, 마음이 좀 심란하고 아플 때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왕버들 그늘에서 한참을 머물러 산다. 연둣빛의 밝은 생기 때문일까? 아니면 왕버들 잎사귀가 품고 있다는 아스피린 때문일까? 신기하게도 심란하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왕버들은 버드나무계의 왕이다. 버드나무 중에서도 가장 웅장하게 자라고 오래 사는 나무다. 진전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십 그루 왕버들은 족히 200살은 살았을 고목들이다. 이 나무들이 뿌리내리고 사는 거락은 한자 그대로 큰물 지는 땅이어서, 큰비가 오면 둑이 터져 물바다가 되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왕버들이 둑을 튼튼히 지키고 있어 물난리를 겪지 않는다.

    왕버들이 둑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촘촘한 뿌리 때문이다. 거락에는 물가에 뿌리를 반쯤 드러내고 있는 나무가 있는데, 가느다란 잔뿌리들이 엉켜 있는 모습이 마치 수세미 같다. 한 아름에 안기지도 않을 만큼 둥치가 큰 나무인데도 뿌리는 실처럼이나 가늘다. 물속으로 촉수처럼 뻗어 나온 검은 실뿌리들이 물살에 하늘거린다. 피라미 한 마리가 살짝 뿌리를 건드리고 가는데도 가지 끝에 난 새잎들이 흔들거린다. 200살을 넘게 살았어도 여전히 예민한 감각을 잃지 않고 사는 왕버들의 삶이 그저 놀랍고 부럽다.

    거락마을 왕버들은 모두 물가 쪽으로 비늘 진 몸통을 살짝 비틀고, 물가 쪽으로 검은 가지를 늘어뜨리고 산다. 보통의 나무들은 햇빛 쪽으로 가지를 뻗는데, 왕버들은 물 쪽으로 가지를 뻗는다. 그래서 왕버들 아래의 물은 늘 맑고 차다. 왕버들은 버드나무의 왕답게 뭇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데, 물고기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며 산란을 하는 곳도 왕버들 그늘이고, 물새들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곳도 왕버들 그늘이다. 그리고 여름이면 이 왕버들 그늘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또 불러 모은다.

    거락마을의 한쪽 제방이 왕버들 영토라면 맞은편 제방은 푸조나무 영토다. 왕버들 영토에는 봄이 벌써 깊었고, 푸조나무 영토에는 이제 봄이 시작된다. 왕버들 나무가 여성적이라면 푸조나무는 남성적이다. 연한 잿빛의 가지 끝에 파르라니 봄빛이 감돌고 있는 푸조나무는 우람하고 씩씩하다. 마치 잘 단련된 이두박근 같은 근육질의 몸매에,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단아한 가지들. 푸조나무는 참으로 멋진 기품을 지녔다.

    푸조나무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다. 내 고향 마을 한가운데에도 500년쯤 된 한 그루 큰 푸조나무가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한 절반쯤은 이 나무 그늘에 있는데, 동네 아이들과 푸조나무 아래에서 해가 지도록 딱지를 치고 구슬을 굴리며 놀았다. 여름날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푸조나무 아래엔 건포도 같은 새까만 열매들이 떨어져 있었는데, 달짝지근 맛이 좋았다. 사춘기 무렵 여자 친구를 불러내어 풋사랑의 편지를 처음 전했던 곳도 푸조나무 아래다. 그런데 고향엔 이제 푸조나무가 없다. 20여 년 전 동네 아이들의 불장난에 나무는 밑동까지 불타버렸다.

    그런 아쉬움과 그리움이 있는 까닭에 어디서든 푸조나무를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는데, 거락마을에는 내가 그리워하는 푸조나무가 무려 23그루나 있다. 1993년 보호수로 지정된 푸조나무들은 수령 400년에 높이가 20여m에 이르는 거목들이다. 그러니 그 나무들이 만들어 낼 푸른 그늘은 얼마나 넉넉하게 넓을 것인가? 행여 그대의 고향에도 푸조나무가 있었고, 어느 날 문득 푸조나무가 그리워진다면 거락마을로 한번 오시라. 푸조나무 그늘은 어디나 고향 같다.



    #2 적석산 거락을 지나온 진전천은 어디를 파도 물이 펑펑 솟는다는 대정마을을 지나 일암마을로 이어진다. 일암의 들녘은 푸른 호밀밭이다. 바람이 불면 호밀들은 마치 물결처럼 일렁거린다. 나는 이제 호밀밭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 적석산으로 간다.

    적석산은 내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본 몇 되지 않는 산이다. 나는 산을 좋아하지만 등산을 즐기지는 않는다. 함께 등산을 가다가도 종종 빠져서 산기슭이나 돌다가, 계곡에서 놀다가 한다. 또는 산 아래 다방이라도 있으면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물끄러미 산이나 본다. 그런 나를 적석산 꼭대기로 유혹한 것은 적석산의 전설이다.

    적석산의 두 봉우리는 칼봉과 적삼봉이다. 옛날 옛적 대홍수가 나서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을 때에도 이 두 봉우리의 끝만은 물에 잠기지 않았다. 그 까닭인즉 두 봉우리의 중앙에는 물에 잠길 땐 물을 빨아들이고, 물이 말랐을 땐 물을 내뿜는 구멍이 있다는 것. 이 구멍은 남해 바다로 이어져 있어 구멍에 신발을 빠트리면 진해만 괭이 바다에서 신발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적석산의 그 물구멍이 보고 싶어졌다. 그 물구멍에 내 신발 한 짝을 빠트려 보고 싶었다.

    적석산은 이름 그대로 곳곳에 돌을 첩첩 쌓아놓았다. 마치 오래된 삼층 석탑 같은 돌도 있고, 수평으로 가지런히 붉은 줄무늬를 새겨 넣은 돌들도 있다. 정상부로 올라갈수록 돌은 더 첩첩이 쌓여 아스라한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바윗돌에 오래된 굴껍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적석산이 물에 잠겼다던 그 먼먼 옛날의 흔적이리라. 진달래꽃이 점점이 뿌려져 있던 비탈길은 바위 절벽에 내어놓은 철제 계단을 돌아 통천문으로 이어진다.

    통천문은 바위틈 사이로 난 네모진 구멍인데, 아래에서 보면 혼자 살아보고 싶을 만큼의 작은 하늘이 보인다. 산길을 오르느라 약간은 몽롱해진 정신에도 맑은 하늘빛이 스민다. 통천문을 지나니 칼봉의 꼭대기다. 나는 칼봉의 바위를 탐색하며 물구멍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다만 며칠 전 내린 빗물이 네모진 바위틈에 드문드문 고여 있었다. 그 옆에 앉아서 물 한 잔을 마신다. 물구멍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칼봉에서 적삼봉으로 가는 길엔 50m 길이의 하늘색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아래는 아득한 골짜기다. 나는 천천히 떨며 구름다리를 걷는다. 바람이 분다. 다리는 중간으로 갈수록 더 흔들거린다.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구름다리 위를 지탱하고 있는 쇠줄에 출렁 앉는다. 이놈의 망할 까마귀. 난간을 살짝 움켜쥔다.

    아무튼 그래서 살짝만 잡았는데도 달아나려던 정신이 돌아와 구름다리 아래 빛나는 풍경들이 눈에 들었다. 진달래 핀 바위 절벽 아래로 펼쳐진 파스텔 톤의 연둣빛 숲. 산 아래 저수지와 일암 마을의 푸른 호밀밭과 새하얀 길들. 산자락은 보드라운 활엽수림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신록은 따뜻하고 푹신해서, 혹 구름다리에서 떨어진다 해도 하나도 아플 것 같지가 않다.

    적삼봉은 구름다리 건너편에 있다. 거대한 암반이 불쑥 솟아오른 것인데 꼭대기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앉히고도 넉넉할 만큼 널찍하다. 여기가 해발 497m 적석산의 정상이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물구멍을 찾아다녔지만 끝끝내 찾지 못했다. 대신 이곳의 물구멍과 통해 있었을 옥수골 푸른 저수지와 당항포와 괭이바다를 오래오래 보았다. 괭이 바다 너머 내 고향 가덕도도 보았다. 아마 어릴 적 우리 집 옆에 있었던 그 깊고 푸른 우물도 여기와 통했을 것이다. 물구멍을 찾게 되었다면,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깊고 푸른 우물 속에 닿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글·사진=송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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